brunch

나는 공부 대신 땜질을 택했다

작은 세상에서의 자부심

by 기록습관쟁이

중학교 때부터 슬슬 눈치를 챘다. 아, 나는 공부랑 잘 안 맞는 인간이구나. 한 시간 동안 수학 문제를 붙잡고 있으면 이상하게 머릿속에 멍해졌다. 눈은 교과서를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운동장 끝자락에서 피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집에서는 어김없이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고, 부모님은 진심 어린 경고를 날리셨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공장 간다."


그 말이 뼈가 되고 살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걸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정말로 공장에 갔다.


일단 일반고는 안 될 것 같았다. 공부는 질색이고, 남들 다 가는 대학교에 대한 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손으로 먹고살겠다'는 마음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로.


공고는 '기술 배우는 학교'라더니, 진짜였다. 전기회로, 전자부품, 납땜, 기판... 머리로는 몰라도 손으로는 외워졌다. 손에 전선이 닿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집중이 잘 됐다. 시험 볼 때보다 실습할 때 눈빛이 살아났다. 물론 '지금 이게 뭐에 쓰이는 걸까' 하는 의문은 늘 있었지만.


고3 되니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누구는 특성화고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돈 번다 하고, 누구는 수시로 대학 붙어서 발을 빼더라. 난 어중간했다. 내신은 밥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돈 벌러 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때 친구 하나가 말했다.

"야, 너도 공장 갈래? 나 LG전자 하청 들어간다."

고민도 안 했다.

"오케이, 고!"

그렇게 나는 전설의 공장 알바생이 된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부품을 넣고, 납땜을 해 고정하는 일. 매일 3,000개씩 만든다. 진짜로.

하루 종일 앉아서 손목만 움직인다. 심지어 점심시간 이후엔 손목이 내 손목이 아닌 것처럼 뻣뻣했다.


초반엔 힘들었다. 옆자리 이모들은 시간당 400개도 거뜬히 해치우셨다. 나는 땜 하나 붙이는데 20초도 걸리고, 땜질 자국 지우느라 또 10초.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야, 너 이거 다시 해'라는 지적이 날아온다. 그 와중에도 이모들은 농담을 던진다.

"학생, 너 손재주는 없는데 엉덩이 힘은 좋다야. 안 일어나네."

처음엔 민망했지만, 나도 웃으며 버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500개를 찍었다.


공장장 아저씨가 박수를 쳤다.

"이 정도면 정직원 감인데?"

칭찬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했다.


나는 납땜이 좋았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경험. 내 첫 번째 자존감 충전이었다. 공부로는 한 번도 못 느껴본 감정이었다.


공장에서 첫 연애도 했다. 옆라인에 있던 또래 여자애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왜 이렇게 진지하게 납땜해?"

그 말이 시작이었다.


커피 하나 사서 반 나눠 마시고, 퇴근길에 분식집에서 떡볶이 먹고. 그 시절에는 그게 다였다. 데이트라는 것도, 사귀는 것도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그 사람과 마주 앉아 납땜 얘기하는 게 좋았다.


웃긴 얘기지만, 난 그때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여기 계속 일하면 이 사람이랑 결혼도 할 수 있겠지?'

그만큼 공장은 내 세계였고, 납땜은 내 전부였다. 근데, 세 달쯤 지나니까 슬슬 생각이 들더라.

'이게... 맞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납땜. 이걸 5년, 10년, 20년 반복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다른 건 하나도 안 늘고, 납땜 실력만 99렙 찍는 건 아닐까?


당시에 등록해 놨던 전문대 입학이 예정돼 있었고, 어느 날 출근하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이거 경험해 봤으니 됐다. 이제 나가보자.'

마지막 날, 이모들이 음료수를 하나씩 건넸다.

"학생,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고 어디 가서 납땜 잘한다고 자랑하진 마~"

그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납땜으로 얻은 건 단지 기술이 아니었다. 땀과 시간으로 만들어낸 자존감의 조각이었다. 공장 경험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거기서 난 처음으로 '노력'이란걸 해봤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잘하고 싶어서.


요즘은 퇴근 후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린다. 납땜 대신 글을 붙이고, 문장을 조립하고, 의미를 납으로 녹인다. 손은 덜 아프지만, 마음은 더 아플 때가 많다. 그래도 납땜이든 글쓰기든, 뭔가를 '만든다'는 건 같다.


가끔 납땜 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새는 힘든 날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도 쓸만한 인간'이라는 걸 처음 느꼈던 순간의 냄새이기도 하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납땜 잘하는 고등학생이, 언젠가 글 쓰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만들고 있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2화남들 공부할 때, 나는 백사장에서 치킨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