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도, 배움도 결국은 체력
덕질로 잠깐의 활력을 얻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함은 여전했다. 단순히 재미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결핍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자존감은 떨어지고 자기 효용감은 바닥을 쳤다. 특별히 큰 성취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나를 충전할, 나만의 시간, 이른바 미타임이 절실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배움이었다. 놀기 위해 시간을 쓰는 건 스스로 정당화되지 않았다. 떳떳하지 않았기에 아이 키우며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숙대 YL 테솔 과정을 듣고 영어 동화책 읽기 지도자 과정도 수강했다.
하지만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움을 더하니 몸은 점점 지쳐 갔다. 배우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이후 몰려오는 피곤은 결국 아이에게 향한 화가 되었다. 나의 못남이 나를 괴롭히는 악순환이었다. 나는 더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2015년, 베프의 권유로 K-pop 댄스를 시작했다. 운동다운 운동은 그게 처음이었다. 몸치였지만 음악 듣기를 좋아했기에 용기를 냈다. 일주일에 세 번, 꾸준히 2년을 다녔다. 아쉽게도 미국으로 가야 하는 바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이어갔을 것이다.
가요를 들으며 안무를 배우고 외우고 땀을 흘리는 과정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활력이 생겼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며 느끼는 설렘과는 차원이 달랐다.
몸을 움직이며 흘린 땀이 주는 활력은 전혀 달랐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땀을 흘리며 운동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두통이었다. 매일같이 괴롭히던 두통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혈액순환 때문인지, 행복 호르몬 덕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통이 사라지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활력이 생기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더 건강해지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찾아왔다.
결국 깨달았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체력이었다. 체력이 있어야 덕질도, 배움도 가능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체력이었다. 마음조차도 체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새로운 욕구가 자라났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생기 있게. 엣지 있게.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