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라, 함께어서 가능했던 변화
내가 매일 먹는 하루 세끼가 누적되어 내 몸의 모든 특성을 만든다. 식사를 개선하는 것은 삶에서 경험하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많은 문제를 개선 혹은 예방하는 강력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정희원
정희원 교수님을 알게 된 후, 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으로.
10여 년의 경험 끝에 얻은 깨달음은 이거였다. 좋은 깨달음은 늘 고통 뒤에 찾아온다.
저속노화식을 삶에 들인 지도 어느덧 1년 반. 이제는 가속노화식을 먹으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만약 그 ‘선순환의 경험’을 알지 못했다면, 여전히 예전처럼 살았을 거다.
나는 내 몸이 예민해서 늘 불만이었다. “왜 나는 이렇게 HSP일까? 왜 이렇게 사소한 자극에도 금방 지치고 피곤해질까?” 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예민함이 꼭 단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몸이 작은 변화를 바로 알려주니까. 내 몸은 실험실 삼아 테스트 할 수 있었다. 반응이 빠르니까 확인이 더 쉽고, 그래서 변화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도 그 사실을 다시 느꼈다. 호텔 조식에 푸른 잎채소가 거의 없었다. 며칠 지나자 몸이 스스로 신호를 보냈다. “채소 좀 먹자.” 예전 같으면 느끼지도 못했을 감각이다.
몸은 정말 바뀐다. 다만 그 변화를 알아차리려면 먼저 작은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나는 저속노화식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완벽을 추구하면 애초에 시작도 어렵고, 설사 시작해도 오래 못 간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장치를 걸었다. 부담감 대신 성취감을 주기 위한 장치.
1일 1식은 저속노화식.
세끼를 다 바꾸려니 막막하지만, 한 끼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끼가 나를 지탱해 준다. 밖에서 약속이 있거나 외식을 할 땐 굳이 억지로 지키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겼다. 대신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했다. 말차라떼가 먹고 싶으면 시럽을 빼고 두유로 바꿔 마셨고, 콜라가 당기면 그냥 물을 마셨다.
그것도 충분히 저속노화식이 었다. 상대적 저속노화식은 늘 가능하다. 완벽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기록들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물어왔다.
“저도 저속노화식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엘린님, 챌린지 안 여세요? 같이 하고 싶어요.”
그런 댓글들을 보고 깨달았다. 사람들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 하지만 혼자는 힘들다는 것.
나도 챌린지를 열어볼까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수년간의 고민과 시행착오, 저속노화식을 하며 얻은 긍정적인 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덜 힘들길, 그리고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에너지 레벨이 낮은 나의 체력 때문에 망설여졌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선 내 체력이 먼저 버텨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제 살 깎아먹기가 될 테니까.
그런 망설임 속에서 몇 달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속에서 직은 결단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해보자.”
그렇게 2025년 3월, 엘린과 함께 저속노화 챌린지가 시작됐다. 이름을 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저속노화식’만 강조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만으로는 선순환이 완성되지 않는다. 잠, 운동, 마음 챙김이 함께 가야 한다. 특히 잠이 부족하면 아무리 잘 먹어도 금세 가속노화식으로 이어진다.
"수면부족은 가속노화식을 부른다. 가속노화식은 가속노화식을 부른다."
그리고 ‘챌린지’라는 말도 마음에 걸렸다. 내 몸을 위해 차리는 음식을 도전 과제처럼 느끼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삶을 나누고, 더불어 가는 동행 같은 이름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다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처음엔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처음 공지글을 올렸을 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하셔서 놀랐다. 그만큼 저속노화식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반증이었겠지?
그렇게 엘린과 함께 저속노화 톡방에 60명이 모였다. 톡방은 처음부터 활력이 넘쳤다. 하루 세끼가 모두 소재가 되니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보가 풍성해서 좋다”라고 했지만, 어떤 이는 “톡을 따라잡느라 벽 타기 스트레스가 온다”라고 했다. 예쁘게 찍어 올려야 한다는 부담, 완벽히 지켜야 한다는 강박도 드러났다.
그때 나는 말했다. “저속노화식은 완벽주의가 아니라 완료주의입니다. 하루 한 끼라도 바꾸면,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완벽하려고 하면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그냥 대충 저속노화식을 한다 생각하고 조금씩 만들어 가요” 그 말에 참가자들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시는 듯했다.
작은 실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 오히려 더 지속 가능한 힘이 된다.
챌린지에 올라온 사진들은 그 자체로 자극이자 힐링이었다. 컬러풀한 채소, 소박하지만 정직한 한 끼, 누군가의 도시락등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칼라 세러피'처럼.
어떤 이는 “연근 샐러드를 처음 해봤는데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귀찮아서 잊고 살던 병아리콩을 다시 삶아 먹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누군가는 색색의 채소가 담긴 접시 사진만 봐도 힐링이 된다며, “오늘은 나도 이렇게 챙겨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변화는 분명했고 많은 분들이 후기를 올려주셨다.
“일주일 만에 단 게 덜 당기고, 빵 생각이 줄었어요. 늦은 밤에도 물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주일 아침 준비할 때 늘 화를 냈는데, 이번엔 화를 안 냈습니다. 남편이 ‘초식동물이 온순하다’며 웃더군요."
“쾌변이 일상이 됐어요."
“밤마다 술과 안주를 줄이니 아침이 훨씬 가볍습니다. 변비도 개선됐고, 수면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텐데, 함께하니 꾸준히 이어갈 힘이 생겼습니다. 2주 만에 3kg이 빠졌고, 음식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습니다.”
“암 환자인 저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챌린지 덕분에 더 다양한 식재료를 챙기게 되었고, 피부와 혈색이 좋아져서 ‘예뻐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편은 ‘30대 같다’고 하더군요. 저속노화식은 곧 항암 식단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늘 피곤하고 예민했는데, 요즘은 작은 일에도 감사가 생깁니다. 몸이 달라지니 마음도 달라지네요.”
"습관적으로 마시던 술의 횟수를 줄었어요."
“확실한 건, 내 몸 안에 들어가는 것 하나하나를 신경 쓰게 되었다는 거예요."
충실히 저속노화식을 실천한 분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같았다. "음식을 바꾸니 몸이 바뀐다"
나 역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임신기간부터 철분 결핍성 빈혈을 가지고 살고 있다. 저속노화식을 하고부터 렌틸콩, 병아리콩, 채소와 과일을 의도적으로 더 챙겨 먹다 보니 이번 피검사에서, 늘 문제였던 철 결핍성 빈혈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몸은 정말 정직하다. 내가 먹은 대로 반응한다. 그리고 바뀔 수 있다.
챌린지를 운영하면서 느낀 참가자분들의 가장 큰 벽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완벽주의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행히 함께라서 그런 마음을 다스리고 흘려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 “오늘은 가속노화식을 세끼 다 먹었어요”라고 하면, 다른 이들이 “나도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내일 다시 해봐요”라고 공감과 위로로 응원했다.
혼자였다면 ‘그럼 그렇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책하고 포기했을 일도, 함께라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달간의 여정은 내게 다시 확신을 주었다.
건강은 거창한 게 아니다. 작은 한 끼를 바꾸는 것.
혼자였다면 작심삼일로 끝났을 일이, 함께였기에 조금이나마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저속노화 라이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 강력하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쉬 지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가면 멀리 계속 갈 수 있다.
저속노화의 길도 마찬가지다. 작은 한 끼에서 시작해도, 결국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
60일간의 챌린지는 어찌보면 짧았지만, 많은 참가자들이 선순환의 시작점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기쁜 건, 사람들이 ‘좋은 변화의 경험’을 했다는 사실 자체다. 한 번 좋은 걸 경험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이 챌린지의 목표는 완벽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작은 수고로움으로 나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곧 내 건강을 돌보는 일이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었다.
시작을 망설였지만, 해보길 참 잘했다.
누군가의 선순환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김주환 교수님의 말이 맞았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줘야 내가 행복해집니다.”
-김주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