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행복도, 아이의 웃음도 결국 잠에서 시작된다
모든 선순환의 시작은 잠이었다.
나는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그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돌이켜보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온갖 부작용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잠의 소중함을 이토록 절실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준비 안 된 초보 엄마는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육아’라는 뜨거운 맛을 실감했다.
첫째는 나를 닮아서인지 너무나도 섬세하고 자극에 예민한 아이였다.
(참 신기하다. 꼭 안 닮았으면 하는 걸 아이는 기어이 닮는다.)
물론 잠도 예민했다.
어릴 때 통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나 역시 통잠을 잔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육아의 가장 큰 고충은 단연 수면 부족이었다.
쌓인 수면 부채는 저질 체력인 내 면역을 무너뜨렸고, 급기야 몸 곳곳에서 아픔이 시작됐다.
그런데 30대 시절의 나는 그 모든 것을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수면 통장은 이미 마이너스였지만, 나는 계속 인출만 했다.
아이를 재우고 아이와 함께 자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려 했다.
잠이 들어버릴까 봐 급기야 알람까지 맞춰놓고 일어나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하루 종일 독박육아를 하고 그냥 잠들어 버리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면 함께 야식을 시켜 먹었다. 떡볶이, 순대 같은 가속노화식이 힐링인 줄 알았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자려고 누우면 어김없이 아이가 깼다.
이 악순환은 수년간 이어졌다.
몸은 수없이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알아차려주지 않았다. 아니, 무시했다.
두통, 근육통, 소화불량이 끊이지 않았고, 만성 피로와 무기력, 우울감까지 이어졌다. 카페인으로 각성을 시키고, 통증이 오면 진통제를 비타민처럼 삼켰다. 근본을 외면한 채 임시방편만 찾았다.
잠 부족은 내 심리까지 무너뜨렸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금세 지쳤고, 삶은 늘 힘겨웠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불안정한 심리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는 사실이다.
김주환 교수님의 <그릿>에 따르면, 임신과 육아 시기의 엄마 정서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란다. 그래서 엄마의 행복은 ‘의무’라고 강조하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1호를 키울 때 늘 불안했고 체력 고갈로 심리 상태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평온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감정은 결국 ‘몸’의 문제였다. 몸이 피곤하니 좋은 감정으로 아이를 품을 수 없었다.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영향이 1호에게도 고스란히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둘째보다 예민하고, 걱정과 불안을 자주 느낀다. 생각이 많을 때는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며칠간 불면이 이어지면 입에 담기 싫은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는 건 너무나 마음 아프다.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 역시 같은 과정을 겪어왔으니까. 그래서 더 미안하다. 고스란히 내 그림자를 물려준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방법을 찾고, 몸에 직접 적용해 봤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고, 동시에 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잘 자려면 잘 먹고(저속노화식),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
나는 원래 잠자리 환경에도, 작은 소리와 빛에도 쉽게 깨어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걱정이 많아 잠드는 것도 자주 힘들었다. 신랑은 어디서든 금세 곯아떨어지는데, 나는 늘 뒤척였다. 잠 잘 자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그러나 부러워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잘 자기 위한 노력’을 따로 세워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과제는 카페인 줄이기였다. 내 몸은 특히 카페인에 예민했기에, 그걸 다루는 방식이 곧 수면의 질을 좌우했다.
잠을 잘 자면 기분이 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고, 면역도 올라간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덜 아프다. 잠의 효과를 너무 느꼈기에 수년 전부터 나는 “기승전 잠”을 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잠 전도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웃음)
그런데 정희원 교수님과 김주환 교수님의 연구와 강연을 접하며, “내가 느낀 게 맞는구나” 하는 확신이 더 커졌다. 이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늘 감사하다.
나는 이제 안다.
어떤 목표를 위해 잠을 줄여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괜찮아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나는 30대 내내 그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아직도 적정한 수면 시간을 지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계속 노력해야 한다.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건강하게,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잠이다.”
정희원 교수님의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에 의하면, 잠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은 치솟고 전두엽 기능은 떨어진다. 자기 조절력과 집중력이 무너지고, 결국 먹는 것과 생활 습관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수면은 인슐린 저항성, 대사질환, 고혈압, 만성 염증, 암, 노화 등 모든 건강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잠든 동안, 몸과 뇌는 쉼 없이 일한다.
하루 동안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고, 닳은 세포를 고쳐주며, 다음 날을 버틸 힘을 차곡차곡 준비한다.
마이클 브루스는 그의 책 <노화는 나이가 아니라 습관이 결정한다>에서 이렇게 비유했다.
“잠은 매일 밤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겨 긁힌 자국과 흠집을 없애고, 세포에서 나온 노폐물과 독소를 청소한 뒤, 아침이 되면 안팎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자동차를 돌려받는 것과 같다.”
잠은 정말이지 보약이다.
잠은 만병통치약이다.
그리고 오늘 밤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