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답은 결국, 잠이었다
대중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에,
우리 대다수는 잠이 얼마나 경이로운 만병통치약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매슈 워커
나는 치매가 두렵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게 가장 무섭다. 기억을 잃고, 몸마저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행복할 수 없다. 피해를 준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두려움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한다.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붙잡아야 했던 건 ‘잠’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책으로 이론도 알고, 몸으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10여 년을 방치했다. 이제야 단추구멍의 제자리를 다시 꿰매듯, 불편함을 감수하고 노력할 마음이 생겼다.
몇 년째 재활 PT를 받았지만 근육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PT 선생님은 늘 말했다.
“잘 드시고, 잘 주무셔야 합니다.”
알고 있었지만, 지키지 못했다. ‘운동은 하니까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큰 결심을 했다. 7시간 이상 잠 사수.
‘나 홀로 카페인 프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작년 첫 시도 때는 두통 같은 금단 현상이 심했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번에는 훨씬 수월했다. 한 달간 커피, 밀크티, 말차라테까지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 운동과 식사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골격근량이 무려 1.4kg 늘어난 것.
4년 동안 제자리였던 근육이,
잠을 7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지키자 늘어난 것이다.
'정말 잠이었구나. 정답은 잠이었구나.'
내 몸이 분명히 말했다.
“답은 잠이다. 근육을 만들고 회복하려면 잠이 먼저다.”
근육량이 늘자, 오랜 숙원이었던 ‘보통의 근육량’에 다가설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이 찾아왔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다시 수면이 흐트러지자, 여지없이 근육량은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정직한 몸. 정직해도 너무 정직해서 속상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또 다른 시련이 나에게 왔다.
또 한 번 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였다.
나는 대상포진에 걸렸다.
체력이 조금 늘자, 잠을 줄여도 예전만큼 몸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그 방심이 화근이었다.
한 번 무너진 수면은 다시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다. 몇 주 동안 6시간도 채 못 자고, 어떤 날은 4시간 남짓한 잠에 그쳤다.
잠을 설친 어느 날 아침, PT 중 덤벨을 드는데 겨드랑이가 찌릿했다. ‘괜찮겠지?’ 하고 넘겼지만, 불길한 예감은 늘 현실이 된다. 그날 저녁부터 전기가 오듯 가슴과 겨드랑이로 통증이 퍼졌다. 다음 날에는 겨드랑이와 가슴, 팔까지 수포가 번졌다. 진단은 대상포진.
의사는 말했다.
“면역이 무너지면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깨어납니다.”
그 말에 불현듯 30대가 떠올랐다. 독박육아로 지쳐 있을 때, 바이러스성 편평 사마귀가 온몸에 번졌던 기억. 그때도 의사는 말했다.
“면역이 많이 떨어져서 바이러스가 퍼진 겁니다.”
‘그놈의 면역!’
내 몸은 또 한 번 신호를 보냈다.
“잠 좀 충분히 자라고!!!”
매슈 워커는 그의 책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룻밤 4시간 수면만으로도 자연 살해 세포가 70% 줄어듭니다.”
몸은 잔혹할 만큼 정직하다. 잠을 빼앗으면,
그 대가를 반드시 청구한다.
나는 직접 내 몸으로 임상실험을 이어갔다. 스마트워치로 수면 점수를 기록하고, 식사·운동·카페인 섭취·스트레스까지 매일 일지에 적었다. 원래 P 끝판왕이라 기록 같은 건 질색이었는데, 절박함이 사람을 바꾸었다.
기록을 해보니 패턴은 분명했다. 카페인을 끊으면 깊이 자고 점수가 올랐다.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지고, 하루가 덜 피곤했다. 반대로 오후 늦게 말차라테를 마신 날은 자정 넘어까지 뒤척였고, 점수는 곧장 70점대로 떨어졌다. 물론 커피보다는 말차라테가 덜했지만, 덜할 뿐이지 ‘영향 없음’은 아니었다.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에게 커피는 빚과 같았다. 매슈 워커의 말처럼,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해 뇌가 피곤하다는 신호를 못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카페인이 사라지는 순간, 억눌렸던 피로가 몰려와 더 큰 피로가 찾아옵니다.”
커피 한 잔은 잠시 깨어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빚을 내어 쓰는 셈이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잠을 지키려면, 특히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끊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수십 년간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끊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때로는 삶의 작은 재미를 잃는 듯했고, 카페인의 즉각적인 각성은 늘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카페인과 씨름 중이다.
그러나 결국, 수면을 지키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인생은 불공평해 보이지만, 결국 정직하다. 씨앗을 뿌려야 꽃도 핀다. 운이야 늘 섞여 있지만, 결국 내가 심은 씨앗이 내 삶을 만든다.
또 하나 눈여겨본 지표가 있었다. HRV, 심박 변이도.
정희원 교수님도 “스마트워치로 확인하는 중요한 수치가 바로 HRV”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자율신경계 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니까.
HRV란, 심장 박동 사이의 아주 미세한 간격 차이를 측정한 값이다. 심장이 일정한 박자로만 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변동이 있는데, 이 변동이 클수록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회복할 힘이 있다는 뜻이다.
내 경험으로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잠이 부족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안했는데, 그럴 때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면 HRV 수치가 실제로 낮아져 있었다. 특히 대상포진이 찾아오기 전, 수치가 확 떨어지면서 심각한 불균형이 나타났었다. 점수는 32점.
몸이 먼저 위험 신호를 보낸 것이다.
HRV가 높을 때 → 부교감신경(휴식·회복)이 잘 작동 → 회복력 ↑
HRV가 낮을 때 → 교감신경(긴장·각성)이 과도하게 켜짐 → 피로·질병 위험 ↑
저녁 늦게 카페인을 마시거나, 야식으로 배를 채운 날, 혹은 스트레스 때문에 뒤척인 날이면 HRV는 금세 떨어졌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유 없는 두근거림과 불안이 몸을 휘감았으니까.
반대로 저속노화식으로 가볍게 먹고, 운동을 하고, 7시간 숙면을 지킨 날은 HRV가 안정적으로 균형을 보여주었고, 몸도 확실히 편안했다.
내 몸을 관찰해 보니 악순환의 고리는 명확했다.
가속노화식을 먹으면 또 가속노화식이 당긴다.
야식은 숙면을 방해한다.
잠을 설친 다음 날은 피곤해 단 것이 당기고, 결국 다시 카페인에 손이 간다.
카페인으로 억지 각성을 하면 밤에 또 잠을 못 잔다.
피로는 다음 날로 이어지고, 다시 가속노화식이 당긴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나 역시 그렇게 매일 “피곤해, 피곤해”를 외치며 살았다. 그리고 만성 피로를 당연한 일상이라 여겼다.
정희원 교수님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잠을 보름 정도 평소보다 1시간 덜 자면, 아침에 소주 한 병을 원샷한 뇌 상태가 된다.”
그 말은 내 경험과 딱 맞아떨어졌다. 며칠만 잠을 줄여도 머리가 둔해지고, 충동이 커지고, 괜히 화가 늘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수면 부족은 전두엽 기능을 떨어뜨려 기억력과 감정 조절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렘수면 동안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청소된다. 이 단백질이 쌓이면 알츠하이머 위험이 높아진다고 뇌과학자 리사 제노바는 경고한다. 결국 숙면은 치매를 막는 가장 강력한 예방법이다.
정희원 교수님은 또 이렇게 강조했다.
“수면의 목적은 회복과 재생입니다. 뇌와 몸의 노폐물을 씻어내고, 죽은 세포를 새 세포로 교체하는 시간이지요.”
나는 돌고 돌아 깨달았다.
잠·식사·운동·스트레스 관리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세트라는 것을.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도 무너지고, 하나를 지키면 다른 것도 선순환이 시작된다.
잠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잃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크다.
오늘 내가 지킨 잠이, 내일의 나를 치매 없이 건강하게 지켜줄 것이다.
수면일지를 쓰며 스스로 확인한 사실들은 이렇다.
카페인을 끊으면 숙면이 깊어진다.
오후 늦게 마신 카페인은 밤잠을 흐트러뜨리고 아침을 무겁게 만든다.
수면 부족은 HRV를 무너뜨리고, 몸은 불안과 피로로 반응한다.
저속노화식·운동·숙면을 지킨 날은 HRV가 회복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피곤할수록 단 것·카페인이 당기고, 그것이 다시 불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잠은 근육을 키우는 필수 조건이다.
이 경험들 속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카페인은 피로의 빚이다.
야식과 자극적인 음식은 숙면을 방해한다.
HRV는 몸의 스트레스와 회복을 보여주는 정직한 지표다.
잠·식사·운동·마음 챙김은 따로가 아니라 세트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내 몸은 언제나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잠이었다.
정희원 교수님의 말처럼, 수면은 옵션이 아니라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오늘의 작은 습관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그 습관의 핵심은 단 하나였다.
오늘 내가 지킨 잠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