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중독자에서 저속노화식 실천자로
저속노화식
정희원 교수님을 통해 처음 접한 단어였다.
말 그대로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한 식사다.
나는 100세 시대에 생노병병병병사가 되지 않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죽고 싶다. 그러려면 결국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 그냥 되는 건 없다는 걸 40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게 곧 나다.”
정희원 교수님의 책과 강의에서 반복된 이 문장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운동만으로는 답이 아니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건 잘 자고, 잘 먹는 기본이었다. 생활은 그대로 두고 운동으로만 만회하려 했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약에 기대어 살았다. 위가 더부룩하면 위연동제를, 속이 쓰리면 위진경제를, 두통이 오면 진통제를, 목이 붓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소염제를, 오후에 피곤하면 카페인을 들이켰다. 순간은 괜찮아졌지만 결국 남은 건 더 예민해진 위와 더 약해진 몸뿐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으니까. 인위적인 것은 결국 병을 키운다. 지금 당장 티가 나지 않을 뿐, 차곡차곡 쌓여간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애써 무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건강 염려증이 더 심해졌다. 아픈데가 계속되자 건강에 대한 불안감으로 온갖 건강보조제를 사들였다.
불편한 건 감수하기 싫으면서, 편하게 몸이 좋아지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언감생심,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인플루언서 공동구매를 보며 지갑을 열었고, 찬장은 각종 영양제로 가득 찼다. 그러나 정작 꾸준히 챙기지도 못한 채, 유통기한 지난 약봉투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어느 날은 20리터 봉투 여섯 개 분량을 버리며 깊은 허무감이 몰려왔다.
“이 돈으로 운동을 했더라면…” 뒤늦은 후회만 남았다.
나는 먹는 일이 귀찮은 사람이었다. 식탐도 크지 않아서 “영양소 다 갖춘 알약 하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였다. 하지만 진짜 효과 있는 건 성실히 챙기는 한끼였다. 약에 의존하려 했던 건 결국 식사를 소홀히 하고 싶었던 내 태도의 반영이었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따라붙던 진단명이 있었다. 바로 악성 철결핍성 빈혈. 임신 때도 늘 철분 주사를 맞아야 했고, 몇 해 전에는 이유 없이 다리에 붉은 자국이 멍처럼 올라왔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자국이 계속 남아 있으니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혈액 순환의 문제일까? 대체 뭐지?’ 어쨌든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임은 분명했다.
피부과와 내과를 거쳐 결국 큰 병원 종양외과로 진료 의뢰서를 들고 갔다. 정밀 피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낮긴 했지만 다행히 혈액 응고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부과 진료를 함께 보도록 연결해 주었다.
피부과에서는 외관상으로는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심각해 보이진 않는다며 우선 피부 질환 연고를 발라보라고 권했다.
종양외과에서는 3개월간 철분제를 꾸준히 먹어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빈속에 먹는 철분제를 며칠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위가 금세 쓰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방 3개월이 흘렀고, 재검에서는 철결핍성 빈혈 수치가 오히려 더 떨어져 있었다.
그때 남편이 농담처럼 내게 말했다.
“철 좀 들어라!”
그 순간은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내 몸을 좀 더 돌보라는 뼈 있는 충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저속노화식을 알게 되면서 처음 바꾼 건 밥이었다.
정희원 교수님은 강조했다.
“밥만 바꿔도 늙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평생 흰쌀밥만 먹고 콩은 질색하던 내가 렌틸콩, 현미, 귀리, 백미를 4:2:2:2 비율로 섞은 저속노화밥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렌틸콩은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었고, 소화도 잘됐다. “생각이 바뀌니 맛도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밥 하나 바꿨을 뿐인데, 놀랍게도 ‘당 떨어짐’이 확 줄었다.
예전에는 빵이나 흰밥을 먹고 나면 금세 허기와 짜증이 밀려왔는데, 잡곡밥을 먹으니 포만감이 오래가고 혈당이 안정되는 걸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탄수화물과 밀가루에 중독되어 김밥, 떡볶이, 칼국수, 수제비 같은 음식이 주식이었다.
하지만 저속노화식을 실천하면서 억지로라도 채소와 과일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귀찮았지만, 하루 한 끼라도 챙겨 먹자는 마음으로 아침 식사부터 바꿔 나갔다. 아침 한 끼를 제대로 챙기면 하루 혈당이 안정되고, 무엇보다 아침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끼니였다.
그렇게 정성 들여 차린 한 끼를 앞에 두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찮지만 나를 위해 준비한 이 한 끼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구나.”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덜 피곤했고, 오후의 졸음도 줄었다. 감정 기복도 한결 덜했다. 늘 밥을 먹고 나서도 허기와 짜증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허기짐이 사라졌다.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변화가 바로 화장실이었다.
예전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살았다. 잦은 설사를 겪었고 변비도 있었다. 어떤 날은 토끼똥처럼 딱딱했고, 어떤 날은 너무 묽었다. 늘 배가 불편하고 가스가 찼다.
그러나 저속노화식을 꾸준히 하면서 아침마다 따뜻한 물 한 컵을 마신 뒤, 규칙적으로 ‘바나나똥’을 누게 되었다. 닦을 필요가 거의 없을 만큼 매끈하고 깨끗했다. 정상 대변은 점액층이 있어 항문에 묻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다 알 거다. 아침마다 아이 기저귀를 보며 “오늘은 잘 먹었구나, 속은 괜찮구나” 판단하듯이, 똥은 그만큼 중요한 건강의 지표다. 먹는 대로, 사는 대로, 몸의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똥이다.
반대로 채소나 과일을 먹지 않고 밀가루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날에는 다시 묽거나 딱딱해지고, 가스가 차는 걸 몸이 바로 알려주었다. 민망하지만, 이 변화야말로 내 몸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인바디 수치에서도 확실한 변화가 나타났다.
2024년 5월과 7월을 비교했을 때, 체중은 1.9kg, 체지방은 1.4kg 줄었고 내장지방 레벨도 6에서 5로 낮아졌다. 이어 7월에서 8월 사이에는 체중 1kg, 체지방 1kg이 추가로 줄었으며, 내장지방 레벨은 4까지 내려왔다.
나는 체중은 적게 나갔지만 마른 비만이었는데, 내장 지방이 빠지자 눈에 띄게 배가 들어갔고 복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운동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이 변화는 분명 식단의 힘이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단 음료, 특히 밀크티를 끊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살던 시절,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도시 전체가 락다운 되었을 때, 나의 하루 낙은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서 사 마시는 아이스 캐러멜 마끼아또였다. 하루 한 잔의 달콤한 음료가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위로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아지트 카페의 아이스 밀크티는 내 일상의 작은 위로였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밀크티에는 액상과당이 들어가 있었다.
정희원 교수님은 책과 강의에서 늘 강조하셨다. 저속노화식을 하려면 가장 먼저 정제곡물과 액상과당을 줄여야 한다고.
저속노화식을 지향하면서도 매일 밀크티를 마시는 내 모습은 모순 그 자체였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나는 절대 못 끊어!”라며 반발했다. 밀크티가 없으면 우울해질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그 갈등이 몇 주간 이어졌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딱 5일만 끊어보자.’ 그리고 X(트위터) 커뮤니티에 인증 글을 올리며 스스로를 붙들었다. 카페인을 끊은 첫날은 두통이 찾아왔고, 오후마다 갈망이 몰려왔다. 그러나 5일을 버티자 놀랍게도 성취감이 밀려왔다. “끊을 수 있다”는 경험이 내게 큰 자신감이 되었다.
나는 사람의 의지가 약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환경부터 바꾸기로 했다.
X(구 트위터)에서 정희원 교수님의 저속노화식 커뮤니티에 참여했고, ‘검마사와 함께하는 100일 챌린지’에서는 1일 1식 저속노화식을 매일 인증했다. 하루라도 빠지면 강퇴되는 규칙 덕분에 더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기록해 블로그에 남기는 일은 작은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쌓인 사진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나를 이렇게 대접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다. 그 기록은 단순한 식사 사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한 증거였다.
돌고 돌아 깨달았다. 건강은 그냥 오지 않는다.
내 몸은 누군가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 약에 의존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정말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잘 먹는 것.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 단순한 습관이야말로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가장 큰 힘이었다.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린 한 끼, 그 한 끼가 곧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흰밥 대신 저속노화밥 (렌틸콩·현미·귀리·백미 4:2:2:2 비율)
채소와 과일 충분히 섭취 (드레싱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발사믹 식초)
단백질 균형: 두부·렌틸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 계란·닭가슴살 같은 동물성 단백질
밀가루 음식(칼국수, 파스타, 빵), 패스트푸드 최소화
콜라·사이다·주스·밀크티 같은 액상과당 음료 자제
완벽주의 대신 하루 한 끼는 저속노화식을 하자는 마인드
ㆍ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피로감이 줄고 개운함이 생김
점심 후 몰려오던 식곤증과 졸음이 크게 줄어듦
감정 기복 완화: 짜증이 줄고 평정심이 유지됨
위염이 사라짐
소화가 잘됨
화장실 습관 개선: 설사·변비 사라지고 매일 규칙적인 ‘바나나똥’
인바디 수치 변화:
5월 대비 7월: 체중 –1.9kg, 체지방 –1.4kg, 내장지방 레벨 6 → 5
7월 대비 8월: 체중 –1kg, 체지방 –1kg, 내장지방 레벨 5 → 4 (근손실 없음)
혈당 안정화로 인해 두 시간마다 허기지던 증상이 거의 사라짐
음식 취향 변화: 자극적인 음식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됨
스스로에게 차린 한 끼가 주는 심리적 위로와 자기 존중감 상승
“음식이 약이 되게 하고,
약이 음식이 되게 하라.”
히포크라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