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Jan 03. 2024

영수

고등학교 1학년 선옥은 학교 친구인 영수를 집에 데리고 왔다. 영수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서 정릉 3동에 살고 있다. 중학교 때에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남달 났다. 

어렵게 살기는커녕 대접받고 귀공자로 살았을 법한 모습이다.

선옥의 가족들은 영수와 금세 친해졌고 저녁마다 영수의 이야기를 듣느라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혔다.

밤늦은 시간에 대화소리는 마루를 지나 안방까지 흘러갔고 참다못한 현중은 "에헴 에헴" 하고 경고 사인을 

보낸다. 경고를 받은 건넌방에서는 선옥, 영수, 선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라치면 

현중은 도가 지나치다 생각했는지 "선태야 그만들 하고 자야지" 최후통첩이 전해진다. 

우리는 이야기를 포기하고 "쉬쉬"거리면서 잠을 청한다. 


중학교 1학년 선태는 영수를 무척 따랐다. 어렸을 때 이야기와 수많은 스토리들을 밤마다 맞대고 이야기를 하여서 어려서부터 같이 지낸 형제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를 써서 서로 맞바꾸어 볼 정도로 각별했다. 우리 집에서는 영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옥례는 <큰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옥례는 품이 넓어서 사람들을 잘 품는다. 옥례는 양푼에 밥을 큼지막하게 서너 주걱을 푸고 

열무김치 한 사발 넣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부어 대략 비벼서 숟가락 몇 개 꽂아 방안으로 들이내 민다.

한창 먹을 때라 양푼비빔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고  한겨울 밤 야식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그때는 왜 그리 짓궂었는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비위 상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방이 먹지 못하도록 장난치지만 금세 면역이 되어 먹는데 서로 목숨을 건다.

심지어는 방귀를 뀌어대면 기겁을 하다가도 이 또한 별문제가 안된다.

우리는 이렇게 동고동락하면서 진한 형제의 시간을 보냈다.


영수는 태생적으로 알레르기 천식이 있어서 장기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다.

우리 모두들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병간호를 해줘야 하는데 

주변에 영수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서로 병간호를 하겠다고 줄을 서는 판이다. 

선태가 여러 곳 따라다녀 보지만 전부 영수를 친형제로 생각하고

부모님들도 친자식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잘 살아왔던 것 같다.

영수의 수첩을 보면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이 기록되어 최대한 챙기려고 한다. 

친구 부모님뿐 아니라 할머니까지도 챙겨주니 안 좋아할 사람이 없다. 

선태와 영수 그리고 영화가 함께 겨울여행으로 선유도를 가게 되었다. 

그때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가야만 했다. 영수가 작년에 다녀온 곳이라고 하여 동행하였는데 그곳에서도 영수를 기억할 뿐 아니라 반가워하며 맞이했다.

도대체 영수에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영수를 좋아하는 사람들뿐이다.

항상 밝게 웃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영수는 어디에서나 대환영이다.


선태와 영수는 결혼을 하여서도 신혼집을 한 지붕으로 세를 얻어서 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영수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  모든 애경사에 장남의 자리에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우리에게 때론 불편함도 있고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보호막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포용하는 것에 인색해지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나 혼자 산다는 것>은 편하고 쉬울 수 있지만 안정감은 부족하다.

삶의 방법과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서로 함께 한 시간들이 쌓이고 생활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혈연을 뛰어넘어 가족이 될 수 있다.

<영수>는 어느새 식구가 되어 있었다.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나누고 노력한 결과이다.

그렇게  <영수>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을 식구로 만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