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동창 깡율은 지금 필리핀에 있다. 유리와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친구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흐린 기억 속 유리는 까무잡잡한 피부로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나보다 공부도 훨씬 잘했고, 매력적인 페이스에 편안한 듯하면서 개성 있는 목소리로 유리가 노래하면 친구들은 유명한 보컬이 될 거라 기대했다. 유리는 부산에서 살다가 20대 초반 서울연희동에 터를 잡았다. 연희동거리는 예술가, 뮤지션이 많다. 나는 여고졸업 10년 후인 29세 때 유리를 가장 자주 만났다.
서울 상경 계획을 세우고 집을 구하기 전, 서울에서 창업 관련 비즈니스 미팅이 잡히면 역삼 신라스테이를이용했는데, 숙박비가 부담되니 서울에 자취하는 유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9세의 유리는 한국에서 노래하는 사람이자, 노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유리는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했고 유리 집에는 귀엽고 통통한 순딩이 고양이가 함께 살았다. 유리는 약자를 보면 마음 아파했고, 나 포함 나의 주변 29세 여자들과 달리 본인의 가치관이 매우 빠른 나이에 정립된 친구 같았다. 때로는 유리와 대화하다 보면 다른 차원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 세상 삶을 초월한 어떠한 형체 같다고 느낀 적도 있다. 요리를 잘하는 그녀는 아끼는 주변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해주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의 집에서 묵는 날 아침에는 "오늘 몇 시에 들어와? 밤에 야식 뭐 먹고 싶어?"라고 물었다. 그녀가 해준 맛있는 파스타, 비빔면이 생각난다. 애엄마가 되어 집밥을 해보니 밥 사는 것보다 값진 그 수고로움을 이제야 여실히 느낀다.
30대 초반 그녀의 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하늘의 별이 되셨다. 너무나 건강하셨던 든든하던 아버지가 먼저 떠난 뒤 유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나는 내 앞에 닥친 어수선한 상황들을 헤쳐나가느라 그녀의 곁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느껴줄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가끔 그녀가 너무 궁금한데 '잘살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마음에만 남기고 차마 연락하지 못했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리고 지금도 필리핀에 있다.
경아 애기 너무 귀엽다 새해에도 더 행복하고 가족 모두 건강하길 기원해:) 복 많이 받엉
유리는 필리핀친구의 가게에서 함께 요리하며 지내고 있다. 직접 만든 수제품도 판매한다는데 그곳에서도 요리하는 뮤지션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유리를 떠올리면 가수 장연주<Something Special>이 듣고 싶어 진다. 아주 가끔 연희동을 가면 유리가 생각난다. 나에게 연희동 뮤지션의 삶과 이야기를 들러준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