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장님이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전과장님은 내 첫 직장 E사에 근무할 적 클라이언트 B사과장님이다. 첫 직장은 포워딩이었고, B사는 당시 E사 전체 캐파(CAPA)1위 업체였다. B사가 한창 바쁜 시기 다큐업무 직원의 공백이 있었고 나는 기본 정보만 확인 후 Invoice/Packing List를 직접 작성해 선적서류를 발행했다. 해외 파트너와 주말, 밤낮없이 연락해 납기일을 맞추려 신경 썼고, 전과장님이 클라이언트였을 때 진짜 입맛에 맞게 일하려 매우 노력했다. 과장님이 상부에적극 추천해 주신 결과 나는 독일 외국계 B사로 스카웃되었다.이직 당시 나이는 23살이었다. 내가 잘나서 잘되는 줄 착각하던 시기. 나는 배은망덕했다. 내가 속한 팀은 LCD Sales 2팀(해외영업팀)이었다. 당시 영업2팀 조직도는 아래와 같다.
팀장 : 데이비드 고 과장 : 전과장(KI) 주임 : HS 사원 : 신디(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웃으면 안 되는데 퇴사한 지 내년이면 10년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데이비드 고 팀장님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케이아이, 그러시면 안 되죠 케이아이, 어떻게 된 거죠 에이치에스, 이건 뭐죠 신디, 이리 와 보세요
데이비드고 팀장님은 독실한 기독교라 술을 전혀 드시지 않았다. 전체회식,거래처와의 저녁자리도 뚝심 있게 알코올을 멀리 하셨다. 덕분에 영업 2팀 이인자 케이아이는 팀장님 몫까지 마셨다. 데이비드 고 팀장님이 풀지 못한 팀 간 불화, 미묘한 신경전을 푸는 것도 케이아이의 몫이었다.(경리vs영업, 출하vs영업, 생산vs영업..)
LCD 생산 라인수급 스케줄 전체를 관리하던 케이아이는긴급하고 가변적인 고객사 요청에 따른 스케줄이 빡빡하면 생산과 출하팀의 원성을 막아내야 했고, 불량클레임으로 고객사에게 깨질 때는 QC(품질관리) 팀과 조율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과장님의 양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은데,아기호랑이였던 나는 내 일이 많다고 어흥 어흥 대들고 짖었다. 타 부서 사람보다 내가 더 얄미웠을 것 같다.
케이아이. 전과장님의 외모는 업계에서 유명했다. 183cm 큰 키에 덩치도 좋고, 배우 김석훈을 닮았다. 공부도 꽤 잘했던 인재로 기억한다. 또 특이점은 기타를 잘 쳤다. 일렉기타였는데 회사에도 기타를 가져온 적 있다. HS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 같이 밴드를 했던 것 같다. 전과장님은 유부남이었는데 당시 꼬마 아들이 있었다. 사모님은 학교선생님이었고 처갓집이 남해라고 들었다. 한때 회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시니 사모님이 "그만둬. 내가 먹여 살릴게."라는 말을 하셔서 모든 여직원이 사모님 멋있다고 따봉을 외친 기억이 난다.
전과장님은 종종 본인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펜션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내가 B사를 그만두고 얼마 뒤 전과장님도 퇴사하셨다. 지금은 경남 남해에서 펜션을 운영하신다.고사리밭에 펜션을 열어 이름이 '고사리 맨션'인데 후기를 찾아보니 휴가 시즌에는 예약이 쉽지 않은 핫플이 된 듯하다. 최근에는 사모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스테이위드북'이라는 책방도 오픈하셨단다.
"요즘도 기타 쳐요?"
"기타가 썩고 있지.."
아!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나도 B사 7년이.. 어찌 보면 인생에 쓴 약? 보약? 그렇드라 ㅁㅊ ○○ 상대 안 해도 되고 긴급 없고.. 이 자체가 얼마나 행복인지 ㅋ
전과장님. 현 고사리맨션 사장님은 한적하고 조용하게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신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전국각지의 과장님들은 고사리맨션으로 가셔서 전과장님께 창업멘토링을 요청하셔도 좋을 듯하다. 혹시 모른다. 기분 좋으면 기타 한곡 들려주실지,
내가 따뜻한 직장생활을 5년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영업 2팀 실세 전과장님은 나의 귀인 6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