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진짜 안녕한가?
우리는 긍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녕이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숨어있다. 옛사람들에게 밤은 생존의 시간이었다. 호랑이 같은 산짐승이 있었고, 인구 밀도 높지 않았다. 밤사이의 큰일이라도 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때문이고, 낮이 되어야 도와줄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이유는, 밤에 별 탈이 없이 평안했냐는 의미이다. 국밥집에 들어갈 때, 애인을 만날 때, 교수님을 만날 때도 “안녕하세요”라며 안부를 묻는다. “안녕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그렇다’는 대답을 선뜻 하지 못한다. 지금 상태가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업무에 치인다. 금전적인 상황이 좋지 않다. 애인과 이별했다. 우울증을 경험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 외로움을 느낀다. 외모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자신감이 없다. 우리 모두 안녕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의 중요도에 따라 삶의 만족스러운지, 불만족스러운지 결정된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면, 안녕하다.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끼는 행복한 삶이다.
기쁨, 감사, 기대, 소망, 흥미, 사랑은 우리가 ‘좋은’ 경험을 하면 생긴다. 긍정적인 감정에는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우리는 이런 상태를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한다. “행복하다.” 반면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경험을 통해서 생겨난다. “운이 없다.”,“기대하지 않는다”,‘“전혀 고맙지 않다”,“‘재미없다.”,“밉다”와 같은 감정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할 때 주로 하는 말이다. 부정적인 경험이 많으면 우리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삶이 불행하다.”
불행한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긍정적인 삶을 사는 법을 공부했다. 지금도 누가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을 물어보면 생각, 습관, 감정, 삶의 태도, 목표에 관해 자동으로 대답할 지경이다. 그러나 삶이 만족스러워지지 않았다. 불행했다. 행복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고, 방법을 실천하고, 경험한 후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으면, 한방의 큰 행복보다, 작지만 많은 긍정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 행복은 한방이 아니다.
불행한 삶을 살수록, 자신의 삶을 뒤집어 줄 인생의 큰 한방을 기대한다. “그 일만 잘된다면”, “내가 원하는 가격까지만 간다면”, “만약에 00 한다면”. 이런 말을 하며 인생 최대의 행복을 기대하기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2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적은 노력으로 큰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로또를 사며 기대감에 부푼다. 주식 코인을 사놓고 수시로 확인한다. 남들이 쉽게 돈을 벌었다는 방법에 빠져든다. 조금만 행운이 따르면 관대해진다. 남에게 선심 쓴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화나고, 우울해진다. 노력으로 행복을 거머쥔 사람은, 노력의 가치를 알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둘째는 큰 행복을 맛보면, 더 큰 행복을 찾게 된다. 갑작스럽게 큰 행운이 찾아오게 되면 터질듯한 기쁨을 느낀다. 이제 행복한 인생만 펼쳐질 것 같다. 그러나 실제와는 다르게, 이런 큰 행복이 불행한 삶을 만들게 되는 원인 된다. 알렌 파드루치 교수는 감정이 상대적이라고 했다.’ 범위 빈도 이론‘ 에 의하면 한번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면, 감정의 기준선이 변한다. 로또 복권 당첨이라는 행운을 맛본 사람은 쉽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21)로또 복권 당첨은 곧 일상이 된다. 극단적인 행복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금방 일상이 되어 버린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로또 복권이 계속 당첨되어야 한다.
사람은 행복을 위해서 산다. 현대인들은 생존과 번식의 본능 위에, 행복이라는 사회적 본능을 덫 씌워버렸다.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행복의 기준선이 계속 높아진다. 본능과 행복을 같이 충족시켜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한 계단식 올라가야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득 뒤돌아보면 놀란다. 어느샌가 이만큼 올라왔기 때문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한 계단식 공들여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산과 다른 점은 행복의 정상은 올라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이다. 지금이 행복이라는 산의 정상이다. 경치를 즐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 정상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다. 하지만 숨은 뜻은 값지다. 일상을 다시 한번 보라는 말이다. 일어나서 눈을 뜨면 보게 되는 풍경이 어떤가? 아침은 무엇을 먹는가? 자주 가는 커피숍은? 어느 매장에서 옷을 사나? 자주 만나는 사람은? 취미는 무엇인가? 떠오르는 장면,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일상’을 다시 보자. 당신의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살펴보라. 그 일상은 누가 만든 것인가? 누가 당신이 누리도록 발명한 것인가? 일상의 가치를 다시 알게 되면, 당신은 행복의 정상에 있음을 알게 된다. 감사함이 느껴진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 하루가 당신이 행복이라는 산을 내딛는 발걸음이다.
● 행복을 주고, 경험하고, 믿어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인터뷰했다. 쪽방촌은 노숙 생활과 고시원 생활의 중간 단계다. 리포터 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꿈도 희망도, 행복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 이곳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삶을 놔버린 사람, 혹은 삶의 이유를 다시 찾아 행복을 쟁취해 나간 사람.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운명, 과거를 비난하고 집착했다. 반면 행복하다고 한 사람은 타인을 도와주며,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타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사람들을 도와줄 때 자기 행복과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가지고 산다. 이를 욕구라고 한다. 타인의 욕구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삶의 목적과 가치도 찾을 수 있다.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된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모험하기
유난히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사람을 좋아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을 경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불이익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 우리는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을 탐구하는 학자였다. 놀라고, 흥분하고, 늘 모험하였다. 지루할 시간이 없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 뇌는 자극을 받아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한다. 스트레스도 풀린다. 변화에 대한 거부 반응도 낮아진다. 고정관념도 점점 없어진다.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경험을 받아들여라.
나만의 기준을 설정하기.
우리는 너무 높은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높은 기준은 동기부여 대신 열등감을 불러온다. 원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만족스럽다. 타인의 삶을 비교하고, 질투한다.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절대 포기 못 하는 것들을 5가지 적어보자. 영화관람, 1일 1 커피, 운동, 위스키, 빵 뭐든 좋다. 각 5개를 표기했으면, 바로 아래에 한 단계 더 높은 기준을 적는다. 시간이 날 때 그 5가지를 모두 경험한다. 이후 5가지 기준 아래에 자신의 감정을 적어본다. 그리고 그 경험과 감정을 꾸준히 떠올려 본다. 천천히 한가지씩 자신의 기준을 높여나간다.
나는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많은 사람이 행복을 미룬다. 지금은 행복할 때가 아니라고, 혹은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은 ‘지금’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행복에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행복을 많이 가질 수 있다. 내가 가진 것들에서, 경험에서 찾아낸다. 조금 더 높은 기준을 경험하고, 꼭 그렇게 살겠노라. 동기부여 받는다. 이런 삶으로 하루하루를 채울 때, 생산적인 삶을 경험한다. 지금을 만족하며, 또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동기부여를 받는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발전할 수 있다. 더더욱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행복한 삶이 목표라는 말은 지금은 불행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절대 행복한 삶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에 자신을 비교하며 오히려 더 불행해질 뿐이다. 행복을 자신의 시야 안에 둬야 한다. 불편하게 위, 아래, 좌우로 둘러볼 필요 없다. 내 손이 닿는 곳에 늘 행복은 존재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질 때 그 가치를 알아본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금까지 잃어버렸을까? 일상이 되어버린 나의 사람들이, 내 손에 닿는 거리에 있음에 더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 일상의 이름은 행복이다.
21) Parducci, A. (1995). Happiness, pleasure, and judgment: The contextual theory and its applications. Lawrence Erlbaum Associates,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