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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우 Jan 15. 2024

모든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

회색지대

한국 대학교와는 다르게, 외국 대학교는 수업에 대한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것을 부끄럽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당연한 배려고, 예절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에 입을 꾹 다물고, 손을 꾹 내리고 있던 결과 참담한 점수를 보답으로 받았다. 한번은 이런 참여문화에 대해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하는 질문이 주제였다. 친구는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것은 민폐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표현이라고 했다. 어릴 적에 질문을 많이 해서 꾸지람 받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갈 줄 알았다. 결국 나는 존중 점수가 0점인 학생이 됐다.     


● 나는 정상인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

흑백논리란 모든 것을 ‘좋다.’ 혹은 ‘나쁘다’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옳은 것과 나쁜 것 성공과 실패, 우리와 그들로 세상을 본다. 우리 안에는 방대한 경험이 축적된 저장소가 있다. 가족, 학교, 친구,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얻은 경험들이 우리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좋지 않은 경험은 교훈이 되어 행동을 억제하고, 상황을 피하게 만든다. 좋은 경험은 다시 하도록 우리를 만든다. ‘합리적인 이유는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라는 느낌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흑백논리는 인적이 끊긴 아마존 한가운데에서 생존하는 데에는 필수다. 알록달록한 버섯을 먹지 않도록 해준다. 사나운 맹수가 숨어있을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해준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훔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인 경험, 사회적인 배움, 심리적인 요소가 흑백논리를 만든다. 불확실함, 정서적 불안정, 나쁜 경험을 피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흔히 ‘빌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지하철 안에서 댄스곡을 부르면서 춤을 춘다. 휘황찬란한 장군 옷을 입고 깃발을 들고 다닌다. 단소로 사람들을 위협한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들을 보며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욕한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정신인지 궁금해한다.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일까? 왼쪽에 정상을 표시하고, 오른쪽에 비정상을 표시한 다음 줄자로 선을 긋는다. 선은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지대에 우리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성공한 사업가인 준석은 편집증이 있어서 자신의 물건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사회복지사인 영현은 익명으로 인터넷에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을 좋아한다. 재현은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공공장소에서 애인과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모두 이런 비정상적인 성향은 하나쯤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사가 약간씩 풀려있다.  

   

● 모든 게 옳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우리는 흑백 지대에 있는 맛이 간 사람들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세상을 구분하고 사람을 나누는 것은 당장 휴지통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흑백논리에 따를 때 분명 장점도 있다. 긴급하고 빠른 결정, 빠른 상황판단, 확실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생존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흑백논리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 인간관계의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인간관계>

- 타인의 단편적인 특징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특징을 가진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교류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 나와 그들로 집단을 갈라친다. 내가 속한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된다. 옹호한다. 내가 속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을 옳지 않고 악하고 나쁘게 본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쌓는다. 과잉 반응하고, 과대 해석한다. 다툼이 생긴다.     


-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한다. 옳은 행동을 기준으로 타인에게 특정 행동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아이에게 공공장소에서 울지 말라고 다그치고 화낸다. 타인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매도한다. 아이가 왜 우는지 중요하지 않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 완벽함에 집착하게 한다. 성공과 실패로 자신을 평가한다. 학교에서는 특정 성적에 집착한다. 직장에서는 업무능력에 집착한다. 완벽한 하루, 삶을 위해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을 꼼꼼히 세운다. 그러다 하나라도 틀어지면 완벽히 깨지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점점 자신에 대한 무능감이 쌓여 간다.    

 

-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타인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 그 나이에는 취직해야지!”,“이제 결혼할 나이인데 남자친구는 안 만나니?”,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를 찾아보는 게 어때?” ‘옳다’는 기준에 미달한 타인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잔소리한다. 지적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타인의 행동을 바꾸지 못할뿐더러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불안해한다. 타인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한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불안해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시킬까 봐 두려워한다. 자신이 그 프레젠테이션, 일에 옳은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는 것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받는다.          


●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옳은 행동에는 많은 선함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합리적, 사회적, 공정함, 정의, 공평함, 성공, 완벽함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옳은 행동만이 나의 성공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이끈다고 한다. 그러나 옳다는 것이 늘 성공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보장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불행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나는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하며,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사람도, 상황도 옳아야 한다. 그렇게 꼰대가 된다. 의무감으로 살고 타인에게도 강요 한다. 꼰대로 사는 삶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올바르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보면 나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어도 불편하다.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저게 올바른 행동일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짜증을 참고, 화를 참는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나사 풀린 행동을 하는데, 지금 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얼마나 힘든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됐을까?”,“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지?

타인이 이유 없이 밉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해 본다.

잠시 멈춤 : “잠깐만, 지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펙트 체크 : “저 사람의 어떤 행동/ 특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피해 체크 : “저 사람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나?”

원인 탐색 : “그 사람의 어떤 특징과 행동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끔 했나?”

원인 직면 : “내게 안 좋은 경험을 준 사람과 닮았나?”,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     

대부분 2번과 3번에서 스스로 질문하는 것을 멈춘다. 이유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직접적인 피해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의식하게 된다면, 생각의 뿌리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경험, 사회적인 세뇌, 혹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얽혀 있다.     


우리는 모두 다 달라.

세상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타인을 수용할 수 있다. 타인을 수용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높다. 타인을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 타인의 의견과 행동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정 행동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나도 독특함을 인정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 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할 줄 안다.     


정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인생의 정답은 내가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실패와 성공으로 보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귀중한 경험이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좋은 친구, 본보기, 모범 시민, 훌륭한 배우자, 연인, 부모라는 정답에 자신을 꿰맞추지 않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존중과 두려움만 생각하자. 여자친구가 어디가 달라졌느냐고 물어본다. 이 말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단장했으니까, 내 노력을 존중해 줘,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라는 말이다. 그래서 칭찬하는 것이다. 허세가 가득 찬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약한 내면을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 허세를 부리면서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아이가 숨어있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고, 공포를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어린아이는 판단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다. 그게 우리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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