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우 바르셀로나
그렇게 몬주익에서 하이킹을 원 없이 하고 걷고 또 걸었다. 이번여행의 콘셉트는 걷기인가. 3박 4일 동안 70킬로를 걸었다. 교통권 10회 카드는 다 쓰지도 못하고 다시 나와 함께 컴백을 했다.
언제 다시 바르셀로나에 방문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유효기간이 없다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니 간직해야겠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나는 마지막 밤까지 있는 힘 , 없는 힘 다 짜내어 불사르겠다!

바르셀로나 토박이 앙헬을 처음 만난 날, 쏟아지던 폭우 때문에 가지 못했던 바르셀로나 빛 축제 Llum BCN 2025에 가기로 했다.
https://www.barcelona.cat/llumbcn/en
바르셀로나 시내에는 옥수수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독특한 건축물 Torre Glòries인데 오늘은 빛의 축제를 맞아, 건물색이 빛조명으로 계속 변한다고 한다. 그리고 Torre Glòries를 중심으로 빛과 조명을 더한 다수의 설치미술이 전시되어 있고, 그래픽아트도 여러 건물의 외벽을 스크린 삼아 전시되었다.
잘 봤다. 잘 보긴 봤는데, 우리가 그다지 감흥이 없는 이유는 금강산도 식후경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걸었는데 밥은 육포쪼가리와 베르무트 칵테일을 12시경에 먹은 것이 다다. 깜깜해지도록 밥을 못 먹어, 앙헬도 벨루치언니도 나도 모두가 지치고 배가 고프다.
사람이 배가 너무 고프면 결정장애가 생긴다. 우리가 믿었던 바르셀로나 토박이 앙헬은 배가 고파서, 계속 "여기 들어갈까? 아니야, 다음 식당에 가보자", 그리고 다음 식당이 나오면 또 "아니, 아니야, 다음 식당에 가보자"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벨루치언니가 행그리(Hangry/ 배가 고파 열받음) 상태가 되어 "으어어어어! 앙헬, 아무 데나 그냥 들어가아아아아!라고 하여 우리는 결국 언니의 사자후 후에 나온 첫 식당에 들어갔다.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이곳도 나름 유서 깊은 곳인 가 보다. 몇 대에 걸쳐한다는 식당이다. 벽에는 카탈루냐어로 MENJA I BEU QUE LA VIDA ÉS BREU! 인생은 짧으니 먹고 마시자라고 적혀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듯이, 카탈루냐어는 이탈리아어와도 굉장히 비슷하다. 얼마나 비슷한지 잠깐 보여드리자면,
카탈루냐어 MENJA I BEU QUE LA VIDA ÉS BREU!
이탈리아어 MANGIA E BEVE CHE LA VITA È BREVE!
이쯤 되면 거의 우리가 연변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와 카탈루냐어는 그 정도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가 싶다.
마지막날은 불태워야 하니 와인 한 병을 시키고 스페인까지 왔으니 빠에야를 시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빠에야는 아니고 해산물만 들어간 빠에야인데, 노란색 빠에야에 들어가는 샤프란은 고기가 들어갔을 때에만 쓴다고 한다. 그리고 으깬 감자를 튀긴 La Bomba (라 봄바/폭탄이라는 뜻. 칼로리폭탄?)를 애피타이저로 시켜 셋이 나눠먹는다. 라 봄바는 성인 주먹만 한 크기라 혼자서 다 먹기엔 좀 크다. 메인요리를 먹으려면 위장 분배를 잘해야 한다.
유럽 남부의 음식은 하나 시켜 나눠먹는 요리들이 많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런 면에서 우리와도 참 닮았다. 빠에야도 한판 시켜 셋이 같이 긁어먹었다.
마지막 날이니 스페인산 비노 틴토 (레드와인)도 좀 시키고 디저트로 크레마 카탈라나(Crema Catalana)도 시켰다. 프랑스어로는 크렘 뷰륄레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커스터드크림 위에 황설탕을 토치로 녹여서 딱딱하게 굳힌뒤에 수저로 같이 떠먹는 푸딩의 종류이다.
한국인에게 디저트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안 달다." 라는데, 나에게도 안 달다는 찬사 그 잡채이다. 너무 달지 않고 맛있었다.
이제 집에 가져갈 기념품을 사러 간다. 나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 싫다. 먹을 수 있는 것, 신을 수 있는 것,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가는 길에 비누가게가 있어서 비누 두 개를 (씻을 때마다 바르셀로나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다. 귤향과 레몬향 비누) 구입하고 그 뒤 슈퍼에 들려 내가 맛나게 먹었던 것들을 우리 집 남자 셋에게 그대로 해 주기 위해 이것저것 사 본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배낭하나만 들고 왔기 때문에 이것들 마저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기념품 목록: 귤, 오렌지, 이베리코하몬, 푸엣 건조소시지, 감자칩, 스페인에서만 사용한다는 특별한 종류의 토마토이다.
유럽의 한 도시에서 한국으로 바로 귀국하지 않고 유럽연합의 다른 도시로 여행한다면, 현지에서 맛있었던 과일이나 육포 같은 것을 다른 도시로 가지고 비행할 수 있다.
주의할 점: 한국으로 과일. 채소, 육류는 절대로 가지고 입국할 수 없다. 치즈와 같은 경우, 슈퍼마켓에서 파는 진공포장 된 제품은 사 가지고 올 수 있다.
이제 3일간 우리의 눈과 발이 되어준 나의 바르셀로나의 비빌언덕이었던 앙헬과 헤어질 시간이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카탈루냐어, 스페인어가 마구마구 섞여 국적불명의 언어가 탄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함께 웃고 떠들었다. 나이도 언어도 성별도 다르지만 우정은 그런 것들이 다 달라도 상관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놀러 오든, 다시 바르셀로나에 방문을 하든, 꼭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앙헬과 헤어졌다.
벨루치언니와 호텔로 돌아갔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사가지고 온 온열안대를 건넸다. 언니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했다. 너무너무너무 좋다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언니는 오징어게임 2를 보았다며 본인의 핸드폰 벨소리를 나에게 들려줬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유치원 때 율동하며 배웠던 둥글게 둥글게를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인 핸드폰소리로 듣게 될 줄이야.
나는 내친김에 12시가 넘은 오밤중에 둥글게 둥글게 율동까지 알려주고 우리는 그렇게 호텔방안에서 신나게 둥글게 둥글게 율동을 했다.
벨루치언니는 내일 오전 6시 비행기로 떠난다. 로마에 도착하면 바로 출근을 한단다. 이거야 말로 미친 스케줄이 아닌가.
내 비행기는 오후 두 시 비행기라서 여유가 있었다. 나의 벨루치언니는 그렇게 내가 한참 잠을 자고 있을 동안 살금살금 나갔지만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기에 서운하지 않았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좋아하는 이 예쁜 언니와 유럽과 한국까지 곳곳을 여행하게 될 거라는 걸. 우리는 분명히 다음번 내 안의 화로 가득 찬 양동이를 다시 비우러 갈 때쯤 또 만날 것이다. 그곳이 어딘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제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다.
바르셀로나,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던 곳.
프랑코 독재정부로부터 자유를 빼앗기고 본인들의 언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역사도 우리와 아주 많이 비슷했던 그곳.
이 친근함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7년 거주자 벨루치언니와 바르셀로나 토박이 앙헬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전하며! 나의 7박 8일 같았던 3박 4일 바르셀로나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Adeu(아데우)*,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어로 안녕이란 뜻.
고추장피자 in 바르셀로나를 마치며
그동안 거의 테러 수준으로 매일 올라오는 저의 여행기에 지치셨을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테러하려는 의도보다는, 그때의 느낌과 감상을 잊지 않기 위해 19일간 매일매일 글을 올렸어요.
지금까지 올린 19편의 글 중, 10편이 다음 daum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ochujangpizza
7화 인생샷명당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8화 드디어 만난 벨루치언니와 바르셀로나토박이 앙헬
10화 바르셀로나토박이가 알려 준 관광객은 절대 모르는 전망대
11화 미쳤다! 불바다가 된 바르셀로나와 꼬레폭스
13화 구글별점보다 정확한 기상천외한 유럽맛집 찾는 법
14화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탈춤을
15화 스페인 사람은 상그리아 대신 베르무트를 마신다
16화 40대 애 엄마가 혼자 여행을 떠난 이유
18화 볼 것 많은 바르셀로나 몬주익에서 하이킹하기
19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
함께 했던 제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많은 분들이 양동이 비우러 간 40대 워킹어멈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고 하뚜를 눌러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전하며, 저는 다음 주 일요일부터 다시 일주일에 한 번, 와플국 유교어멈 자식농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씨유 넥스트 타임!
고추장와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