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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애 엄마가 혼자 여행을 떠난 이유

엄마, 아내 그리고 나 사이에서 중심 잡기

by 고추장와플

와플국 유교어멈 자식농사기 연재를 하다가

돌연 바르셀로나 여행수기를 쓰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구독자들이 계실 거라 생각을 했다.


초반에 제대로 설명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yugyomom


나 신나고 즐거운 얘기만 가득가득 적어 댔으니, 엥? 왜 갑자기 바르셀로나 여행이야?

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아마 저 여자 저거 저거 뭐 하는 거야? 쯧쯧. 애도 둘이나 있는데, 애들 놓고 놀러나 다니고 말이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 고추장피자 in 바르셀로나는 와플국 유교어멈 자식농사기의 번외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ochujangpizza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결국 출발점은 엄마와 아내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이다.

저렇게 가면 애들은 누가 보고? 독하다, 독해. 애들 안 보고 싶나?

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기 아들 고생하는 게 싫은 시어머니도 딱히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나는 불평불만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냥 한다.


해외생활하는 한국인이기에 이 나라 사정이나, 법률체계 같은 것을 몰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알아서 했다.

안 도와주면 알아서 하는 성격이 한몫했다.

어릴 적부터 집안 뒤치다꺼리 하느라 콩쥐처럼 살았던 짬밥이 있어서 인지,

엔간해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게 고생이던 뭐던 그냥 입 다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감수성 터지는 남편도 내가 알아서 잘하려니 뭐 하나 하지 않았고,

외려 나의 도움을 바라기에 이르렀다.


이 나라말로 된 애들 숙제며, 선생님과 상담이며, 자동차 수리며, 심지어 자동차 바퀴에 바람 새는 것까지 내가 처리를 하게 되었다.

고매하시고 감수성 풍부하신 남편을 둔 여자의 일상은 홍길동이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회사도 나가야 하고 각종 사무처리와 아이들의 학교외 활동과 가족행사도 챙겨야 한다.


그러다 나는 터져버렸다.

우리 집에 계신 감수성 풍부한 베짱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자가 너무 미워졌다.

나는 전생에 무수리였나, 아니면 무슨 죄를 지었나.

아들 둘도 버거운데, 다 큰 성인이 외국인인 나를 의지하고 있으니 정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몇 년 전, 더 이상 너의 뒤치다꺼리가 하고 싶지 않다 말을 했다.

너와 같이 사는 것보다, 너 없이 아이들과 사는 것이 일이 더 적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결국 부부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별 기대가 없는 대신,

나 자신에게 굉장히 혹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갈아 넣어서라도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 하는 데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나 힘들다고 백날 말했을 때는 듣지도 않던 베짱이가,

상담사의 설명은 수긍을 했다.


어찌 되었던 내가 이 상담사양반에게 결과적으로 신세를 많이 지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 집 감수성 풍부하신 분이, 자기 감수성과 예술혼을 발산하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부인분께서 혼자 이 많은 것들을 하시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신가요?

고개를 끄떡인다.


부인은 선생님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개인인 한 사람으로서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매번 혼자 누리는 그 시간을 부인분 께서는 본인을 위해 거의 쓰지 않고 있는데

부인이 본인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야 해요.


이제 베짱이는 종종 며칠 간 울며 겨자 먹기로 나 없이 아이들의 학교숙제를 봐주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거울치료를 받는다.


양동이는 물이 꽉 차면 넘친다.

물이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때제때 물이 넘치기 전에 비워줘야 한다.


상담사가 권유한 대로 나는 종종 양동이가 넘치려 할때 즈음에 한 번씩 양동이를 비우러 간다.


까불이 40대 고추장와플로 친구와 함께 내가 항상 주기만 하던 보살핌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이 순간순간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며 내가 나임을 잊지 않는다.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의 나로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하여.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다.

그리고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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