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추장와플 Jun 02. 2024

하이힐을 신은 우사인 볼트

하이힐 신고 도둑을 쫓아가다...

중고자전거 한대를 사가지고 룰루랄라 네덜란드어 수업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쁜 바구니도 사서 손잡이 앞쪽에 걸어주고 내 가방도 바구니 안에 넣어주고, 키야. 나 좀 유럽 사는 사람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서 찰나의 순간에 내 가방을 가지고 전 속력으로 페달을 밟으며 도망가는 도둑놈!


남성, 10대 후반의 중동계열의 이민자로 보인다.


따라가면 위험하다는 생각도 안 든다. 내 머릿속에는 내 가방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돈이 많이 들었느냐. 한 오천 원 들은 것 같다. 그런데 거기 든 카드며, 신분증이며 오만 것들을 다시 만들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되기에 나는 가방을 되찾기로 마음먹는다.  뭐 거창하게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가방을 가지고 튀는 놈이 있어서 내 가방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그놈은 엄청난 속도로 도망을 갔다. 아마 가방에 5000원 들은 줄 알았으면 그렇게 힘 들이지 않았을 텐데. 좀 측은하다. 게다가 상대를 매우 잘못 골랐다. 나는 악으로 똘똘 뭉친 근성으로 가득한 잡초다. 벨기에에 와서 매우 심난하고, 매우 우울하고,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는데....


이 자식 너 잘 걸렸다. 가만두지 않겠어. 내가 한국여인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그랬더니 도둑놈은 갑자기 자전거를 세우더니 나한테로 던져버렸다. 미친 듯이 페달을 밝고 있던 나는 갑작스레 날아온 자전거를 피하지 못하고 자전거 두대와 함께 고꾸라 졌다.


자전거 또한 훔친 물건이었으리라... 자전거도 내던지고 내 가방과 함께 사라져 가는 놈...


너어.... 주 욱었어. 가만히 안 두겠어!!


이 사람은 몰랐겠지. 내 100미터 기록이 16초라는 걸... 오늘은 하이힐을 신었다. 대략 8센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높은 하이힐을 신고 우사인볼트처럼 그놈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다.


그놈은 당황했다. 티비에서 보던 사근사근한 게이샤 같은 동양여자가 아니라 하이힐을 신고 우사인볼트처럼 달려오는 동양인 여자를 보고 기겁을 했다.


이참에 지금까지 배워왔던 네덜란드어 욕이란 욕은 다 써먹자 생각하고 욕을 하며,


Godverdomme! Deze klootzak heeft mijn tas gestolen!

이런 망할 놈의 개새끼가 내 가방을 훔쳤다!!!


라고 동네방네 다 들리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우사인볼트처럼 뛰어갔다. 뛰면서 소리까지 지르고...나는 멀티태스킹에 소질이 있었다.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경찰에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거리. 이때는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아마도 미친개에게 잘못 걸렸다 현타가 왔을 것이다.


거의 다 따라가서 등짝을 잡으려 하려는 순간, 내 가방을 던지고 전속력으로 달려 사라진 도둑놈.


 드디어 찾았다, 내 가방!



훗, 이쯤이야!


가방을 다시 손에 들고 나는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뿌듯했다. 마치 그 도둑놈이 벨기에고, 벨기에에게 거둔 승리인 것 마냥. (그 도둑놈은 벨기에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


사람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던가. 벨기에에게서 거둔 작은 승리(?) 이후로 나는 내가 포기만 하지 않고 끝까지 쭉 간다면 길을 열릴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다 잘 되겠지...

이전 06화 축축하고 눅눅한 고담시티 뺨을 후려칠 벨기에 날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