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추장와플 Sep 15. 2024

벨기에 공무원 시험 면접

유교녀의 K-스타일 벨기에 공무원 시험 면접

자고 일어났더니, 브런치앱에서 수많은 알람이 와 있었습니다. 지난 에피소드 벨기에 공무원 필기시험은 조회수 25000회를 넘었고, 그전 에피소드 개나 소나 다 들어가는 벨기에 대학은 7800회를 기록하였습니다. (2024년 9월 6일 자 기준) 알고 보니 다음 메인에 노출된 것이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유교녀 벨기에 생존기가 떡 하니 걸려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얼떨떨하고 어리둥절 하지만 저리 높은 조회수를 보니 참 기쁘네요. 제 글을 선정해 주신 관계자분, 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과 구독 신청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벨기에로 이사 온 지도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참 짬밥이 많이도 쌓였다. 포장공장에 가서 일도 해 보고, 워라밸 없는 사무직 회사 가서 개고생도 해 보고, 호기롭게 대학원에 들어가서 처참하게 미끄러져도 봤다.  워라밸 없는 회사에서 벌어놓은 돈도 대학원 공부하면서 다 써서 이제는 다시 돈벌이를 할 때가 되었다. 가장 낮은 급수의 공무원직 보안요원이면 어떤가.


벨기에 앤트워프시 소속 공무원 중 가장 낮은 급수의 필기시험을 보고 나니 (벨기에 공무원 필기시험  편 참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면접 대기자들 사이로 검정바지 정장에 셔츠를 입은 나는 유독 튀었다. 한국이었으면 면접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왔으면 쌍욕을 먹었을 터인데... 오히려 내가 더 눈에 띈다.


내 이름을 불러서 안으로 들어가니 세명의 면접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대화는 모두 네덜란드어로 진행)


면접관 1: 유교씨 맞으시죠? 앉으세요.

: 예. 감사합니다.

면접관 2: 왜 이 포지션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 저는 문화, 예술에 관련된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 페스티발이나 전시회 관련 봉사활동도 많이 했고 (사실 벨기에에서 취직활동이 녹록지 않아서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일당 3만 원 받고 자원봉사 기본지원금이 나오는 일들을 꽤 했다), 앤트워프 대학원에서 문화경영을 공부했습니다. (떨어졌거나 말았거나, 일단 공부한 것은 공부한 것이니 어필하고 본다.)

 면접관 3: 그래서 공부는 마쳤습니까?

: 예상치 못하게 수학이 너무 많이 들어있는 바람에 공부를 마치진 못했습니다. 제가 좀 수학 머리는 없어서요.


일동 웃음


접관 1: 이력서를 보니 한국에서 대학공부를 했네요. 그런데 본 포지션은 고등학교 졸업장도 필요 없는 포지션인데 괜찮겠습니까?

: 한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벨기에로 이민 와서 언어도 새로 배우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낮은 직책이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접관 2: 벨기에에 온 지는 얼마정도 되었나요?

: 2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면접관 3: 오, 네덜란드어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이민 온 지  10년 돼도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 벨기에의 중동 이민자 2세대 3세대들은 배우자를 본인의 부모 혹은 조부모가 살 던 곳에서 찾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다소 개방적으로 변한 교포들보다 이슬람문화가 퇴색되지 않은 본국에서 신붓감을 데려오는데 이를, importvrouw/수입신부 라고 하며, 이민 후 한참이 되어도 언어와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벨기기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

: 앤트워프 대학부설 언어교육원에서 마지막 레벨까지 마쳤고, 대학원에서 교재를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더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수료 못하고 떨어졌어도 배운 건 배운 것임.)

면접관 1: 사무직이 아니고 노동직인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 어느 포지션이던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제로 하고 싶었던 말: '이 양반아,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여.')

면접관 2: 만약 뽑히게 되면 한 달 후에 시작하게 되는데, 타이밍은 괜찮은가요?

: 한 달 후가 아니고 다음 주에 시작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면접관들: 알겠습니다. 만약 합격하면 메일로 연락이 갈 거예요. 메일박스 잘 체크하시고요. 나가 보세요.

: 감사합니다. 또 뵙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외국어 면접 팁: 에피소드 5화,  돈 없는 자의 신박할 리얼리티 언어학습에서 쓴 바와 같이, 면접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발음과 속도도 포함하여 연습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었다 (핸드폰 녹음기능을 활용하자. 아주 유용하다). 더 많은 상황들과 질문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네덜란드어로 연습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면접은 짧았다.


"시켜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K-유교녀의 면접은 이렇게 짧게 끝났다. 진부할 수도 있고, 따분할 수도 있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더 있었겠는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는데, 시켜만 주시면 당연히 열심히 한다고 했다.


대학 졸업장을 가졌지만 낮은 급수의 일이라도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내 태도에 절실함이 눈에 보였든지, 아니면 2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네덜란드어를 배워 면접을 보러 온 게 기특했는지(이제 와 솔직하게 밝히자면,  종종 못 알아 들었지만 알아들은 것처럼 넘기는 나의 꼼수는 수준급이었다) 나는 2주 후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해외에서 아시아인은 열심히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을 하는 이미지와 착하고 정직하다는 인식이 있어 구직을 할 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그 이미지 덕은 좀 본 것 같다. 솔직히 말해, 해당언어를 어느 정도 한다면 아시아인이라서 떨어트리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부응하여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 다는 게 숙제이긴 하지만...


특히나 이민을 가시는 분들은 정부 관련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정부는 '이민자의 사회적 정착을 돕고,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공기업의 책임이 있기에, 이민자로서의 공무원직 진출이 오히려 사기업 보다 다소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일단 전제는 해당언어를 어느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높은 급수는 뉴비로서는 무리지만, 낮은 급수의 공무원직은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


P.S: 혹여라도 외국에서 면접을 앞두고 계신 분들께: 혹여라도 나의 아시안 백그라운드가 마음에 걸려 걱정하고 계신가요? 일단 가서 부딪히고 겪어 보세요. 그런 다음에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겁니다! 모든 구직자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합격만 하면 핑크빛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핑크는 개뿔, 벨기에에서의 삶은 여전히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다음화에 또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브런치 작품 선택을 하지 않고 발행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다시  유교녀 벨기에 생존기 연재작품을 선택하여 글을 재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 글에 라이킷을 눌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19화 순서를 잘못 올린 글이니, 한 회차 뒤로 넘어가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