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물건을 고를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물건을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하며 여러 개를 비교하다가도 결국엔 사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사는 날 보다 사지 않는 날이 훨씬 많았다. 물건을 고르는 것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니와 그런 기다림에도 사지 않고 돌아서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져 신경질이 났다.
"골랐어? 아직도 안 골랐어? 우리 벌써 삼십 분이나 있었는데 언제까지 볼 거야?"
나의 채근에 아이는 초조하고 곤란한 얼굴로 "아, 아니에요. 다음에 살게요"라 답하였다. "메모장이 필요하다 해서 온 거잖아. 아직도 못 고른 거야?" "그냥 다음에 제가 와서 따로 살게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저 천 원짜리 메모장하나 고르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인가'싶어 짜증을 냈다.
기다리다 지쳐 짜증 내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이도 덩달아 내 눈치를 봤다. 기죽은 표정을 보니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물건을 수월히 샀던 상황을 떠올렸다. 아이는 작년 빼빼로 데이에 내게 줄 빼빼로를 사기 위해 슈퍼와 근처 편의점 두 군데에 들러 가격을 비교해 보고 더 싼 곳에서 과자를 사가지고 왔다. 몇백 원을 아꼈다는 사실을 말하며 칭찬해 달라는 눈빛으로 날 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현명한 소비를 했구나"
아이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한 소비를 위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빼빼로는 어디에서나 같은 상품이기 때문에 단순히 가격비교만 해서 끝날 일이었지만 메모장은 가격, 디자인, 사이즈, 품질을 비교해야 했다. 그 조그마한 머릿속에서 비교를 하며 이리저리 재고 있었던 것인데 어른인 내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해 아이를 채근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몰랐던 때에는 "너 학교에 가서도 뭘 결정할 때 이렇게 오래 걸리니?" 질문했던 적도 있었다. 친구들이 답답하게 여겨 교우관계가 틀어지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냥 신경질이 나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격이었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쪽을 쉬이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결정장애'라 부른다.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를 일반적으로 보지 못하고 '장애'라는 표현에 빗대어 표현한다. 나도 언젠가 나 스스로를 결정장애라 말한 기억이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내 아이가 결정이 느리단 단순한 이유로 그 언어에 갇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너에게 결정장애라고 말하면 웃으면서 대답해 주렴. 난 단지 결정에 신중할 뿐이라고. 신중해서 남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이라고 말이야"
지금은 아이와 물건 고를 시간을 미리 정한다. 20~30분의 시간을 정해놓고 아이에게 말한다. "우리 몇 시까지 보고 그 이후에도 못 고르면 다음에 와서 고르는 거로 하자. 다음번엔 다른 물건이 들어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아이는 혼자 핸드폰 시간을 들여다보며 시간에 맞춰 물건을 고른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한번 더 묻는다. "시간이 더 필요할까?" 아이는 그렇다 아니다를 말해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운다.
나도 그런 아이를 천천히 바라보며 느리게 이해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