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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r 27. 2024

그대와의 프롤로그

군대 선임의 여동생을 꼬신다고?

남편은 친오빠의 군대 후임으로 당시에 여자친구가 없던 친오빠가 내 증명사진을 군대로 가져가 관물대 안쪽에 붙여 놓음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00 병장님, 이 사진은 누구십니까?"

"내 여동생이야 인마"

"어? 저번에 가져오셨던 사진이랑 같은 분입니까?"

"맞는데? 왜?"

"저 여동생 분한테 연락해 봐도 되겠습니까?"

"내 여동생이 너 같은 놈한테 넘어갈 것 같냐? 어디 니 맘대로 해봐"






나에게는 그저 아는 동네 오빠 수준이었던 사소한 마음이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나에게 만나달란 얘기를 해도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심심한가 보다.. 친구들이 다 군대를 다서 친구가 없나?라는 정도의 측은지심으로 만났는데 이렇게 휴가를 나올 때마다 만나주는 날 그린라이트라 생각하고 열심히 직진하다 대차게 까임을 당했더랬다.


"미안해요. 오빠가 남자로 안 느껴져요.."


당연히 받아 줄거라 생각하고  

휴가 복귀하는 버스를 뒤로한 채  인천 버스터미널 앞에서 고백했건만 돌아오는 청천벽력.


하지만 그는 불굴의 남자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그렇게 20살, 22살의 풋내기 사랑이 시작되었고 군인이었던 그는 매일 밤 9시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중에는 더 짬이 차서 내가 군대로 전화를 걸면 후임들이



박병장님~~
여자친구 전화 왔습니다~~





하고 외치면 저 멀리 복도에서 슬리퍼를 찍찍찍 끌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소리에 전화받기까지의 몇 초가 웃음으로 번지곤 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그 사람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렇게 사랑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벅찬 감정은 처음이었고 온전한 행복으로 첫사랑을 맞이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한 때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독자님들 저와 남편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24화에서 딸아이가 절 위로하는 말로 그대, 제발 살아요의 연재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어도 남편과 저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꼭 한 번은 보여드리고 싶었었어요.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남편과 저의 시작 말이지요.


 현실에서는 남편과 제가 별을 했지만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적으면 그와 저의 이야기가 글로도 끝이 나는 것 같아 에필로그라고 적질 못하겠네요. 에필로그 없이 프롤로그로 다시 돌아가면 1화부터 다시 시작될 것만 같아 프롤로그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남편이 죽기 전 마지막 4일, 남편이 죽은 후 7일가량에 관하여도 쌓인 일들이 많아 제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 다시 연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저와 아이들의 상황이 궁금하실 독자님들을 위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립니다.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아이들 둘과 아산, 서산, 당진 여행을 다녀왔어요. 제 옆자리에 남편의 영정사진을 두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서요. 누군가는 무모하다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재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저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아 영정사진을 들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습니다. 마지막까지 창가 자리로 언제 가냐고 묻던 남편의 말이 제게 응어리로 남았거든요.


답답했던 병실생활 끝내고 같이 훌훌 털어내는 여행을 다니면서 남편이 저희 곁에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이 많았어요. 셋이 외암마을 한옥카페를 갔는데 음료수가 잘못 나와서 하나가 더 나왔습니다. 사람은 셋인데 음료가 넷인 상황이라 아이들과 웃으며 "아빠가 먹고 싶어서 시켰나 보다"라고 웃기도 했고요. 같은 날 남편의 친구부부를 만나러 가서 술을 한잔 하는데 또 음식이 잘못 나와서 하나가 더 나왔습니다. 평소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요.


그리고 그 친구가 남편이 죽기 바로직전 남편의 병실냄새가 자꾸 따라와서 "야 너 왔냐?"하고 공중에 말하자마자 저한테 부고 전화를 받았었던 생전 가장 친했던 친구인데 저와 술을 먹으며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도 병실냄새가 맴돌았다고 하더라고요.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리워도 하다가 보고파도 하다가 울며 웃으며 여행을 끝냈습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었다면

당신이 그동안 나에게 너무 자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게 너무 다정한 아빠였다면,

내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어도 이 역시 모든 것이 남편이 제가 덜 힘들게 하기 위해 그려놓은 상황일지 모르겠단 생각이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다 했습니다.

못한 말이 없었던 만큼 그대와의 시간이 행복했음을.

연재를 마치며 당분간은 아이들과 살아가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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