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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ul 11. 2024

사춘기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너는 언젠가 반드시 엄마보다 크고 힘이 세진단다"

종종 아이들이 나 몰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면 문을 꼭꼭 닫고 있기 때문에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싶어 현장검거를 진행한다.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신이 나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컴퓨터 방 문 앞까지 간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세고 벌컥,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들짝 놀라는 아이의 화면에는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이상한(?) 화면이 보인다. "너 뭐 보고 있었어"하고 물어보니 당황한 아이가 "왜요!! 뭐요!! 이거 이상한 거 아니에요!!" 라며 턱을 치켜들고 언성을 높인다. 눈치껏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해본다.


이상형월드컵이라는 단어가 입력되어 있고 검색결과 중 좀 선정적인 사진이 노출되어 있던 듯해 보였다. 아이가 호기심에 야릇한 사진을 클릭해 본 찰나에 내가 들어와 들키게 된 것이다. 아이는 컴퓨터 옆에 조용히 서서 사태파악을 하고 있는 날 보곤 더 당황했는지 연신 "왜요!" "뭐요!" 하면서 대들었다.


 "라온아 네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나이는 맞아. 엄마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이른 것 같으니까 좀 더 천천히 관심 가져주면 좋겠어. 컴퓨터는 이제 꺼" 부드럽게 말하고 컴퓨터 방을 나왔다.  


저녁을 차리려 주방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었더니 라온이가 컴퓨터를 끄고 쫓아 나와 "왜요! 뭐요!"하고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네가 의도치 않았는데 그런 상황을 엄마한테 들킨 게 당황해서 그렇게 나오는 건 알겠어. 그렇지만 엄마가 너를 혼낸 게 아니잖니? 엄마 너한테 한마디도 뭐라고 안 했어. 그런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좀 이른 것 같으니까 조금 더 천천히 관심 가져도 된다고 말한 것뿐이야" 아이는 내게 대들던 것이 무안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아 거실로 나갔다.


 

다음날,


"엄마, 라온이가 욕했어요!" 딸에게 전화가 왔다.

"뭐라고 했는데?"

"씨발이라고 했어요"

"라온이 바꿔봐"

"엄마, 저 라온이예요"

"너 욕했어??"

"네.."

"욕하지 마. 알겠어?"

"네"

(옆에서 라온이 친구가 이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모, 라온이가요 제 옆에 앉더니 씨발 존나 좁네라고 했어요!"

"뭐?? 라온이 바꿔봐. 너 정말 씨발 존나 좁네라고 얘기했어?"

"네..."

"집에 와서 얘기하자"

"네..."

  

그날 학원이 끝나고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배드민턴 치고 싶어요"

"그래. 엄마가 신발이랑 채 준비해서 나갈게. 먼저 배드민턴장에 걸어가 있어"

"네"


운전을 해 실내 배드민턴장에 가니 아들이 손을 흔들면서 맞아준다. 배드민턴 코트는 총 네 개다. 그중 한 코트에 중학생 남자아이 둘이 먼저 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건전한 취미를 즐기며 땀을 흘리는 남자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들도 저렇게 건전한 취미를 친구들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은 내가 데리고 다니지만 조금 더 크면 친구들과 다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코트에 발을 딛는다.


나는 마르고 체격이 작은 데다 요령이 없어 힘 있게 치질 못한다. 반면 옆의 코트 남자아이들은 아직 어린데도 공을 주고받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울린다. 남자들은 확실히 힘이 좋아 치는 소리가 다르다.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다가 옆 코트를 힐끗거리면서 말했다."형아들 소리 봐. 우와~ 잘 친다. 그렇지? 라온이도 남자애라 힘이 세질 거야. 네가 엄마보다 더 잘 치고 세질 거야"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다 보니 아들이 낮에 욕했던 일이 떠올라 화두를 꺼냈다. 

(배드민턴 칠 땐 아이가 욕했던 사실을 깜빡했었다)


"라온아. 너 정말 씨발 존나 좁네라고 했어?"

"네.."

"욕을 하는 건 정말 너무 쉬운 일이야. 욕을 하지 않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지. 기분 나쁘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이건 정말 너~~무 쉬워.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 되거든.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 욕을 하지 않고 참는  아주 어려운 일이야.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에 대한 동경이 있어. 공부를 너무 잘하는 사람, 외모가 특출 나게 예쁜 사람, 돈을 아주 잘 버는 사람, 매우 똑똑한 사람, 굉장히 선한 사람. 이건 우리 모두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사람들을 더 특별하다고 느끼는 거지.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는 건 모두가 그렇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거든."

"네.."

"너 성인이나 현자라고 들어봤어?"

"네"

"공자, 노자, 간디 이런 사람들 말이야"

"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존경하는 거야. 너는 욕을 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존경하거나 옆에 있고 싶어?"

"아니요.."

"화를 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윽박지르고 욕하고 그런 일은 너무 쉽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닮고 싶어 하지 않는 거야. 다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엄마가 전에 욕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라 그랬지?"

"제 가치를 깎아 먹는 일이라고요"

"맞아. 네 가치를 깎아먹을 뿐만 아니라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널 양육하는 엄마에게 책임이 와.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그건 다른 사람이 엄마 얼굴에 침을 뱉는 일과 같은 거야. 네 나이땐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도 중학교, 고등학교땐 욕하는 게 좀 더 세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욕을 자주 했었어. 하지만 욕하는 사람이 힘이 센게 아니야.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힘이 센 거야. 욕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잘 넘어가는 사람이 정말 힘이 센 거고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야."


아이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날 저녁 자기 바로 직전, 무슨 말을 하다가 아들의 말버릇이 또 도졌다. "왜요. 뭐요!" 하면서 고개를 치켜든다.

"엄마가 아까 배드민턴 장에서 뭐라고 했지? 넌 언젠간 엄마보다 반드시 키도 크고 힘이 세진다고 했지? 아까 형아들처럼 배드민턴도 엄마보다 힘 있고 세게 치게 될 거라고 했지?"

"네"

"남자기 때문에 넌 언젠가 엄마보다 힘이 세져. 키도 커지고 덩치도 훨씬 커질 거야. 네가 엄마보다 힘이 센지 안 센지 일일이 대들어 가며 잴 필요가 없단 말이야. 시간이 흘러 네가 커지면 어차피 엄마는 너보다 힘이 약해질 거거든. 그러니 지금 당장 누구 힘이 센지 겨룰 필요가 없어. 엄마는 언젠가 너보다 약해질 거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야. 너의 부모. 널 먹이고 입히고 키우기 위해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해 번 돈으로 널 키워줄 부모. 네가 힘이 세진다고 해도 네가 엄마를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야"


아이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마치자 아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무래도 아들의 사춘기가 슬슬 오고 있는 듯하다. 

 

    




ps. 이지영강사님 영상 중 감명 깊게 본 부분을 인용하여 아이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역시 일타강사님은 달라요. 제 아이에겐 좀 장황하게 설명한 감이 있는데 잘 이해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일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아직까지 다시 대들고 하진 않네요. 온순한 아들로 돌아오긴 했지만 긴장감을 좀 쥐고 있어야겠어요.


일전에 스쳐지나가듯 본 유튜브가 있습니다. 심리학전문가가 나와 사춘기의 자녀를 측은하게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자녀는 정서적, 심리적인 독립을 위해 부모와의 연결을 조금씩 끊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춘기의 대립이라고요.


흔히 '사춘기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어른들이 이야기하지만 이 반항의 시기가 없는 것은 심리적 독립을 할 준비나 자세가 되지 않은 것이라 어른이 된 추후에 더 크게 탈이 날 수 있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인 불안과 스스로도 본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소용돌이에 휩싸인 자녀들을 부모는 좀 더 측은한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본인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라고 하시면서요.


하긴, 나 조차도 여자는 평생 호르몬의 노예라고 이야기하는데. 생리기간이 되기 일주일 전 나도 모르는 신경질과 짜증에 휩싸이는데. 그런 상황을 주변인들이 눈치를 챌 정도인데.


아이들 역시 사춘기 호르몬에 휩싸여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불완전한 감정에서 허우적거릴 생각을 하니 정말 측은히 여겨집니다.


아들이 "나 사춘기 왔어"하고 콧방귀를 뀌면 "응. 나 조금 있음 갱년기 옴. 갱년기가 사춘기 이김(메롱)"  하면서 유치하게 이겨 먹을라 하는 엄마지만 진짜 아이들이 방황을 할 때 이 마음 잊지 말고 중심을 잘 잡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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