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깔끔쟁이의 청결이론
혼자 살며 화가 나는 순간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더러운 집을 나설 때, 두 번째는 더러운 집으로 돌아올 때이다.
언제는 출근 직전에 행거가 무너져 걸려 있던 옷이 전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너무 바빠 행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집을 나섰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출근길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겨우 진정하고 일을 마친 후 집에 도착하자 나를 반기는 건 옷으로 어질러진 집안이었다. 옷더미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고 다시 열이 확 뻗쳤다. 잠깐이면 치울 수 있는 그 사소한 지저분함에 왜 그렇게 예민해졌을까... 확실한 건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지저분함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런데 청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더러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다 보면 더러움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더러움을 퇴치하는 것이 바로 청결함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의 더러움과 청결함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공유하고자 한다.
분류학적으로 더러움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1) 오염
오염은 개인적으로 혐오감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키는 더러움이다. 옷에 묻은 김칫 국물, 주방 타일에 튄 파스타 소스, 상에 착색된 커피 자국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오염은 아주 국소한 범위로도 사람의 시각을 자극하고 순간적인 불쾌감을 자아내어 그 위력이 대단한 더러움이다.
2) 냄새
냄새는 필자에게 두 번째로 혐오스러운 더러움이다. 냄새가 오염보다 덜 혐오스러운 이유는 사람의 후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금방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겪을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음식 냄새, 빨래 덜 마른 냄새, 화장실 냄새 등이 있다. 냄새는 다른 더러움과 달리 예방하거나 재빠르게 퇴치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3) 어질러짐
어질러짐은 물건이 정돈되지 않고 뒤섞인 것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행거 붕괴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 어질러짐은 깨진 유리창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더러움이다. 경미한 어질러짐은 더 큰 어질러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퇴근 후에 피곤해서 옷을 의자에 걸어놓으면, 그다음 날도 옷을 의자에 걸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옷이 쌓이면 의자는 옷더미가 되어버릴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더러움을 퇴치하는 방법이 곧 청결의 비법이다. 필자가 고수하는 나름의 청결 비법을 소개한다,
1) 오염 퇴치
먼저, 언제 어떤 상황이든 오염이 보이면 즉각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요리 중에 소스나 기름이 튀면 방치해두지 않고 바로 닦는 것이다. 식사를 할 때도 예외는 없다. 테이블 위에는 항상 물티슈와 휴지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오염이 되면 재빨리 테이블을 닦는다. 옷에 음식이 튀었다면 화장실로 직행하여 얼룩(오염 물질)을 닦아낸다. 너무 번거로운 것 아닌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얼룩이 거슬려 요리나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처사이다. 함께 식사하는 애인에게도 자비는 없다. 얼룩이 발견되는 순간 말한다. “옷에 묻은 거 닦고 올래?”
자, 그런데 모든 오염이 잘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워지지 않는 오염, 즉 착색된 얼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필자는 착색된 옷을 가차 없이 처분한다. 왜냐하면 착색된 얼룩은 사람의 시각을 계속해서 자극하기 때문이다. 기름이 묻어 누렇게 착색되거나 외부에서 지워지지 않는 모종의 물질이 묻었다면 잠옷으로도 입지 않는다. 운명적으로 그 옷을 놓아줄 때가 된 것이다.
2) 냄새 퇴치
집에서 나는 냄새는 섬유에서 나는 냄새와 공기 중의 냄새로 나눌 수 있다.
섬유 냄새는 옷에서 나는 냄새가 대표적이다. 외출할 때 입은 옷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았더라도 퀴퀴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섬유탈취제를 뿌린 후 행거에 걸어둔다. 김장할 때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것처럼 옷을 섬유탈취제에 절여놓으면 웬만한 냄새는 제거가 된다.
공기 중의 냄새는 대부분 환기로 해결된다. 자는 동안 발생하는 꿉꿉한 냄새, 요리할 때 나는 냄새, 화장실 냄새 등은 창문을 열어놓는 간단한 행위로 퇴치한다. 날씨 이슈로 환기를 못 하는 날에는 룸스프레이나 캔들을 이용한다. 냄새를 없애지 못한다면 더 진한 향으로 덮어버리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따라서 룸스프레이나 캔들은 항시 놓여 있는 디퓨저와는 달리 약간 진하고 존재감 있는 향으로 고르는 것이 좋다.
환기나 방향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공기 중의 냄새가 있다면 바로 화장실에서 나는 찌든 때 냄새와 주방에서 나는 음식물 냄새이다. 당연히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하고 설거지 및 주방 정리를 바로 한다면 이런 냄새가 날 일은 없다.
3) 정리정돈
어질러짐은 완벽하게 예방이 가능한 더러움이다. 어쩔 수 없이 오염이나 냄새가 발생할 순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어질러짐이란 없다(혼자 산다는 전제 하에). 자신만의 정리정돈 규칙을 만들어 사용 직후 물건을 정리한다면 어질러짐을 방지할 수 있다. 필자의 정리정돈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물건에 제자리를 정해줄 것
‘물건은 제자리에.’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다. 정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세부적인 정돈 규칙은 모두 다르지만, 기본 원칙은 이 말로 귀결된다. 사실 모든 물건에 제자리를 정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인이 가진 물건의 종류는 너무 다양하며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건을 종류대로 분류하여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모두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공간이 없어 방황하는 물건들이 생긴다면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 그 아이들 때문에 공들여 세운 모든 질서가 무너져버릴 수 있으니...
2. 설레지 않으면 처박아둘 것
필자는 대부분의 물건을 보이지 않게 수납장에 넣어두는 것을 선호한다. 물건이 많이 나와 있으면 공간이 좁아 보이고 아무리 정돈되어 있어도 깔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물건들, 이를 테면 책,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 애정하는 그림들은 꽁꽁 숨겨두기엔 너무 아깝다. 그들에게는 소중한 나의 공간을 장식하는 영광을 부여한다.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했지만, 필자와 같이 그럴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설레지 않으면 처박아둬라’라고 슬쩍 변형해 보는 게 어떤가?
3. 옷이나 수건은 세탁기에서 꺼내자마자 정해진 방법으로 갤 것
세탁기에 들어간 옷, 속옷, 양말, 수건 등 어떤 것이든 세탁이 완료되면 바로 꺼내서 개야 한다. 사용한 물건을 바로 제자리에 넣어두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해진 방법에 따라 개는 것이다. 옷이나 속옷, 수건 등을 개는 방법은 블로그나 유튜브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정해진 방법에 따라 빨래를 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수납장을 규칙에 따라 정리하면 보기 좋기 때문이다! 구김이 가는 옷은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정리하고, 구김이 가지 않는 옷 및 속옷과 양말은 수납장에 정리한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듯하게 접힌 옷, 속옷, 양말로 정돈된 수납장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흐뭇해진다. 화장실 수납장도 마찬가지다. 각 잡아 갠 수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된 수납장은 화장실의 품위를 높인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내가 삶을 통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누군가에겐 강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삶의 방식이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더러움과 적극적으로 싸우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