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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냐 May 01. 2024

남의 일상이 뭐 그리 궁금하다고

브이로그 애청자의 심리

내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보고 좋아하는 영상은 브이로그이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속속들이 촬영하여 자세하게 보여주는 브이로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브이로그의 유행이 많이 사그라든 지금까지 꾸준히 시청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남의 일상이 뭐가 재미있다고 그렇게 계속 찾게 되는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끊어보고자 구독도 모두 취소했지만, 종종 기억나는 채널을 검색하여 보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브이로그를 좋아할까?   




1) 남의 일상을 대신 살아보는 대리만족

우리는 모두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남의 인생을 살아볼 수 없고 남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단편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는 사람의 이런 한계를 보완해 주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콘텐츠들은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의 남은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실제 인물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브이로그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 준 콘텐츠였다. 집에서 무엇을 해 먹는지, 혼자 있을 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등 남이 사는 모습을 꽤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브이로그를 보며 인간 본연에 내재한 관음증적 흥미가 자극됨을 느낀다. 약간 변태적인가?


그냥 흥미를 느끼는 것을 넘어 대리만족을 경험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내가 보는 유튜버가 예쁘게 꾸미고 놀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나는 대신 신난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그렇게 놀러 갈 기회가 많지 않을뿐더러, 한번 놀러 가려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생각보다 피곤하고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면을 통해,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행복을 전달받는 느낌이다. ‘부럽다’가 아닌 ‘함께 즐겁다’라는 느낌으로 브이로그를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리 만족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브이로그를 보다 보면 현실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내가 보는 대부분의 브이로그는 나의 현실과 많이 다르다.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롭다던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닌다던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던가… 이런 브이로그를 계속 보다 보면 나의 삶과 괴리감을 느낀다. 브이로그를 보고 나면 좀 멍해지는 느낌이 이 괴리감에서 오는 것 같다. 이때 멍해지는 느낌은 영화를 보고 나서나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여운과는 결이 다른데, 이 여운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없이 공허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2) 내적 친밀감

나는 유튜브에서 브이로그를 볼 때 항상 내가 보던 브이로그만을 본다. 다른 말로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들의 삶만을 지속적으로 접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과 나의 삶의 결이 비슷하며, 이로 인해 그 사람들과 내적 친밀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근 몇 년 간 새로운 채널의 브이로그를 본 적이 없다. 삶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나 홀로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유튜브를 지속적으로 시청함으로써 그들과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었다는 뜻이다. 참 21세기적이지 않은가? 현실세계의 관계보다 인터넷으로 접한 사람들의 삶이 더 궁금한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일상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데 유튜버들의 일상은 궁금해할까? 그 이유는 시각적 자극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청각적 자극보다 시각적 자극에 더 민감할 텐데, 아마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실제로 그 일상을 눈으로 보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유튜버들에게 이렇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것도 생각보다 찜찜함을 낳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적 친밀감을 이용하여 돈을 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을 최대한 사랑스럽고 친근감 있게 편집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친밀감을 심어주어 그들이 영상을 계속 찾게 만들면, 그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다.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되는 꼴. 자본주의 세계의 눈으로 본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3) 동기 부여

나는 '갓생' 따위의 말을 내세우는 브이로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갓생' 그 자체가 목표인 것 같아서. 그런데 이러한 타이틀을 걸지 않고도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촬영하는 브이로그도 있다. 특히나 내가 선망하는 특정 직업군의 브이로그를 볼 때 나는 그들의 삶을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요소들을 따라해 본 적도 있다. 그 정도로 브이로그는 생각보다 나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영상을 통해 동기를 부여받으면 삶의 활력이 생기고 좋다. 그런데 이 또한 문제점이 있다. 먼저 브이로그를 통해 보여준 일상은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영상에 보이는 모습이 연극이라 한다면, 무대 뒤편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편집으로는 자신의 삶을 훨씬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는 걸 시청하는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렵다. 이렇게 편집된 삶을 선망하는 것이 과연 나의 삶에 도움이 될까 잘 모르겠다.


다음으로 사람마다 삶의 환경과 조건이 다르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상에 심취하다 보면 이 차이점을 간과하곤 한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들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는 직장인보다 시간 활용이 더 자유롭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이용하여 더 알차게 시간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으로 여기고 배재한 채, 저 사람처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더 밀도 있고 압축적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나의 모습에 끊임없이 불만족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브이로그는 나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고 꽤나 매력적인 영상이다. 하지만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이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 그래서 이제 진짜 브이로그를 놓아주려고 한다. 브이로그를 볼 시간에 현실에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길.

타인이 되어보고 싶을 때, 나의 일상의 공백을 채우고 싶을 땐 책이나 영화를 보도록 하자. 최소한 이 콘텐츠를 통해선 더 사고하고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으니.

그렇다 지금 나의 다짐을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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