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외출(1)
친구는 이번 연휴에 롯데월드를 간다고 했다. 순간 영혼 없는 반응이 나갔다.
“부럽다~”
반응을 하고 보니 이 반응이 거짓된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장난으로 덧붙였다.
“난 그런데 집에 있는 게 더 좋아.”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
“그럴 거 같았어.”
웬만하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 걸 선호한다. 장보기부터 옷 쇼핑, 독서, 식사, 운동 등을 집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특정 순간에는 집 밖에 있는걸 더 좋아한다. 그 순간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첫 번째 장소는 영화관이다.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꽤 자주 영화관을 방문하는 편이다. 영화는 집에서보다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더 좋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영화관은 나를 붙잡아둔다.
집에서 영화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나의 리듬대로 볼 수 있어 좋아한다. 영화를 잠시 멈춰두고 자유롭게 화장실을 가거나, 불쾌한 장면은 건너뛰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리듬에 영화를 맞추지 못하는 영화관의 불편함을 좋아한다. 영화관에서는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건너뛸 수 없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불이 켜지지 않아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게 영화관은 나를 가두어 둠으로써 영화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만든다.
<매스(2022)>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한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정말이지 보기 힘든 영화였다.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보호자와 피해자 보호자가 한 자리에 모여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는 연극처럼 한 공간에서 촬영하며, 영화 속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을 일치시킴으로써 그 자리에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숨 막히는 이 현장에 앉아 있는 것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집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초반부터 꺼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영관 좌석에 앉은 이상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아야만 했다.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섬세한 표정변화, 그들의 자세와 어조의 변화, 그들이 주고받는 소품의 이동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함께 내가 약간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서툴지만 주인공들이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절제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 태도를 배운 것이다. 또한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큰 아픔을 지닌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라는 상반된 입장을 모두. 2년 전의 일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영화는 영화관이 나에게 준 시련이자 선물이었다.
2. 영화에 대한 애정의 표현
어떤 영화는 집에서 봤는데도 영화관에서 또 본다. 옛날 영화를 영화관에서 재개봉하거나 특정 영화관에서 특별 상영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왜 굳이 번거롭게 영화관에서 재관람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한 리스펙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다 쓸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는 선언과도 같다. E북으로 읽은 책을 종이책으로 사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집에서 본 영화를 영화관에서 재관람한 첫 번째 경험은 <시네마 천국(1990)>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어느 날 집에서 이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의 스토리, 화면 구성, 음악이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점보다도(물론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이 영화와 나의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나의 내면이 진솔하게 교류하여 두터운 친분이 쌓인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전국에서 딱 하나, 서울의 모 영화관이 이 영화를 재상영하고 있었다. 당시 경기도에 살았던 나는 쾌재를 불렀다. 혹시나 상영이 끊길까 싶어 바로 다음날 퇴근 후 바로 그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고, 그 영화를 관람하러 직접 찾아가고, 잔뜩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은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어쩌면 영화 그 자체보다 더 귀한 자산일지도 모른다.
3. 느슨한 공동체성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관계는 촘촘하고 팽팽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과 애인과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와 친구관계에서 우리는 관계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든다. 영화관에서 우리는 이렇게 관계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관객들 사이에는 느슨한 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GV나 관객이 많지 않은 예술 영화관에서 그 연대감이 더 잘 느껴진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동질감과 유대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 모 예술 영화관에서 <로봇드림(2024)>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했다. 극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대사가 나오지 않는 이 영화를 모두가 웃고, 울고, 긴장하고, 안타까워하며 보았다. 웃긴 장면에서 함께 킥킥대고, 슬픈 장면에서 함께 훌쩍대고, 놀라는 장면에서 함께 ‘흡’ 숨을 들이마시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아무 방해가 없는 집에서 홀로 영화를 볼 때보다 약간의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함께 보는 것이 영화를 더 맛있게 만든다.
여담으로, 영화관 옆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좀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 앉아 여유 부리며 영화를 기대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다. 나는 자주 가는 영화관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어두운 우드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백색소음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적당한 테이블 간 간격,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 한 마디로 완벽한 조건의 카페를 찾은 것이다. 이 카페에 들러 수다 떨거나 글을 쓰다(가끔은 멍 때리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꽤나 근사한 외출이지 않은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