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외출(2)
두 번째로 소개할 장소는 재즈바이다. 재즈바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이미지만으로도 사람을 매료시킨다. 무대 위에는 빛나는 붉은빛의 드럼과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베이스, 자체발광하는 아이돌 같은 비주얼의 트럼펫과 고고한 신사같은 피아노가 놓여 있다.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자신만만하며, 그곳의 분위기는 고상한 들뜸, 품격 있는 흥으로 달아오른다. 재즈바의 이런 이미지적 아름다움도 물론 좋아한다. 하지만 재즈바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이 글에서는 재즈를 라이브로 감상할 때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호응하면서 볼 수 있음
재즈 공연에서는 판소리와 같은 재미있는 문화가 있다. 바로 관객들이 공연 도중 박수를 치는 것이다. 여기서의 박수는 공연의 흥을 돋우는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연주자에 대한 리스펙을 표현하는 것이다. 처음 재즈 공연을 볼 때는 이 문화가 어색하면서도 약간 구수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문화가 좋은 이유는 공연에 함께 참여한다는 감각 때문이다. 박수도 엄연히 소리로서 공연의 일부를 장식하는 것이니 영 엉뚱한 감상은 아니다.
더 적극적인 분위기의 공연에서는 코러스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결코 흔한 경우는 아니다…) 보통 재즈 공연에서는 그 밴드의 단장이 곡 소개를 하고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따라서 그 단장의 성향에 따라 공연의 분위기가 많이 좌우된다. 전에 갔던 을지로의 모 재즈바에서는 단장이신 싱어분이 굉장히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이 싱어는 공연 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한 분도 소외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 함께 즐겨요!”
그러고는 다짜고짜 코러스를 연습시켰다. 이 곡은 에이미 와인하우스 버전의 <girl from ipanema>였다.
“제가 ~부분을 부르면 여러분은 아- 라고 하는 거예요. 따라해 보세요. 아-“
여기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여러분이 너무 잘하니까 이번엔 사비루비라~로 해볼게요. 하나, 둘, 사비루비라~”
이렇게 몇 번을 연습해 보고 공연을 시작했다. 모든 관객들이 집중하며 음악을 감상하다 코러스 파트에서 ‘사비루비라~’를 외쳤다. 그 순간 재즈바 안의 공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함께 공연하는 느낌이었다. 이 공연은 지금껏 접했던 공연 중 가장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2) 평소 집중하지 않았던 악기의 소리에 집중하게 됨
음악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리듬보다는 멜로디에 집중하곤 한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 잘 안다. 그래서 멜로디가 아닌 리듬이 돋보이는 음악은 상대적으로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웬걸 라이브 공연을 보니 멜로디가 중독성 있는 음악보다도 리듬이 재미있고 다채로운 음악이 더 흥겹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브공연을 보며 음악에 정통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시각적 효과가 리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베이스나 드럼 같은 리듬 섹션은 트럼펫이나 색소폰, 피아노와 같은 화려한 선율에 묻히곤 한다. 그런데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 저절로 그 박자를 따라서 몸을 움직이게 된다. 드럼 스틱의 움직임에 따라 테이블을 치기도 하고, 베이스의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까딱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리듬의 변화가 느껴진다. 리듬을 몸으로 체화하는 순간이다.
몸으로 리듬을 타며 멜로디를 감상하면 음악이 그렇게 풍성할 수 없다. 눈과, 귀와, 온몸으로 즐기는 느낌이 든다.
3) 언제 어떤 악기가 들어올지 몰라 은은한 긴장감이 감돌음
재즈는 살아있는 음악이다. 즉흥성이라는 속성이 재즈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으로 만들어준다. 관객은 물론 연주자들도 앞으로 곡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그래서 재즈 공연을 라이브로 감상하면 그 긴장감을 훨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서울의 모 와인바에서 진행한 특별 재즈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연주자들이 서로 눈치 보며 끼어들 타이밍을 재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은 눈치게임을 하는 것처럼 긴장되기도 하고, 함께 일해온 동료들끼리의 호흡이 느껴져 흐뭇하기도 하며(니가 뭔데…), 프로들의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원래 알던 재즈곡을 라이브 공연으로 볼 때 이 은은한 긴장감이 배가 된다. 이번에는 어떤 악기가 나올까, 어떤 식으로 곡이 진행될까 기대하며 음악을 들으니, 적극적인 감상이 절로 이루어진다. 어느 공연에서는 싱어가 들어갈 타이밍을 재다 실패한 걸 포착했다. 입을 벌렸다가 잽싸게 다물고 지었던 멋쩍은 미소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그 미소는 즉흥성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한 것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재즈바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려주는 요소가 있다. 바로 ‘술’이다. 와인을 한잔 곁들여 듣는 음악은 더 풍부하고 더 아름답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노르웨이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는 음주가 현명하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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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로 유지되면 더 느긋해지고 침착해지고 음악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한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나의 경우 재즈바에서 이 이론이 증명된 것 같다!
더 느긋하고, 침착하고, 음악적이고, 개방적인 내가 듣는 재즈 음악은 그야말로… 천상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