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냐 Jul 31. 2024

나의 길티플레져

불륜물을 좋아하세요...

길티 플레저란 영어 guilty(죄책감이 드는)와 pleasure(즐거움)를 합성한 말로 죄책감이 드는 취향, 즉 남에게 밝히기 부끄러운 은밀한 취향을 뜻한다. 나의 경우에는… 뒤틀린 사랑(바람이나 불륜)에 대한 콘텐츠를 즐겨 본다. 로맨스를 파괴하는 토크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의 n년차 열렬한 시청자이며, 불륜을 소재로 한 책과 영화를 꾸준히 소비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뒤틀린 사랑을 선망한다고 판단하시면 곤란하다. 바람이나 불륜은 사랑이 아닌 욕정이며, 누군가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악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륜물(편의상 뒤틀린 사랑에 대한 콘텐츠를 불륜물이라 통칭하겠다)은 여러 면에서 재미를 주기 때문에 끊을 수 없다. 심리학적으로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불륜물을 보게 되는 심리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불륜물은 짜릿하다. 애인이나 배우자 몰래 새로운 사람과 로맨스를 즐기는 상황은 로맨틱하지는 않으나 매우 자극적이다. 불륜물은 이 자극을 잘 살려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기혼 여성인 주인공이 비행기에서 어떤 섹시한 남성을 만나 남편의 눈을 피해 밀회를 가지는 장면들, <화양연화>에서 각각 배우자가 있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한 방에서 묘한 기류를 뿜어내는 장면, 소설 <닥터 지바고>에서 아내와 떨어져 타지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다른 여성과 만나며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부분…


불륜물에서 제공하는 짜릿함의 기저에는 커다란 배덕감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통해 사회가 정한 도덕적 규율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 일탈감을 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해방감 이후의 감정은 안도감과 우월감이다. 나는 장기연애를 하고 있다. 애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이루어 잔잔하고 편안한 연애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불륜물에서는 편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밀애란 언제나 불안과 긴장을 수반하며 삼각구도의 끝은 항상 파국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관계를 지켜보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고 안도감과 은근한 우월감을 느낀다. 결국 불륜의 스릴은 함께 느끼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으면 그들과 나 사이의 벽을 세우고 안정된 현실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임 없는 쾌락이니!


대부분의 불륜물은 비틀린 사랑의 최후와 당사자가 져야 할 책임을 생생하게 그린다. 예를 들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주인공 율리에는 이기적이고 매사에 자신을 가르치려 하는 연인 악셀과의 관계에서 불만을 가지던 중, 자신과 비슷한 자유로운 성향의 에이빈드를 만나게 된다. 악셀과 상반된 매력, 강렬한 성적인 끌림으로 율리에는 그에게 빠져들고 앞뒤 재지 않은 채 그에게 직진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곧 알게 된다. 그녀가 전 연인 악셀에게서 가장 사랑했던 부분이 이 남자에게는 결여되었다는 것을. 율리에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결핍을 메우려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도 새로운 결핍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핍은 이전보다 더 크고 더 결정적일 수 있다.


불륜물에서 관계에 대한 이런 배움을 얻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면 애인과의 관계가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소중한 관계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랑은 내 삶을 빛나게 해 줄 어떤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 임을 불륜물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반면교사도 교사다.

이전 18화 여름 부적응자의 여름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