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수다의 즐거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수다 떠는 것을 꺼릴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 편견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애독가들이 적극적이고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책에 대한 수다를 떨 때다. 책 수다는 책의 내용과 작가의 삶과 책 밖의 우리들의 삶을 종횡무진 누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의도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오픈하게 된다. 이것이 책 수다의 묘미이다. 그럼 언제 책 수다를 떠나고? 나의 경우에는 독서모임을 통해 주기적으로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서모임은 책에 대해 충분히,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 갈증을 해소해 준다.
처음 독서모임이라는 곳에 들어갔을 땐 대학교 2학년이었다. 책의 세계에 처음 입문한 나는 책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누구와든 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서칭하다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의 카페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을 찾아갔다. 그 모임은 3달 단위로 3만 얼마 정도 회비를 내고 한 달에 한 번 카페에서 모였다.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직장인들이었다. 약 10명-15명 정도가 모였던 것 같다. 그 모임에선 카페의 한 공간을 대여하여 ‘최후의 만찬’스러운 테이블에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많은 어른들 앞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인이 아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져서 더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경험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부담스럽지만(어느 날 모임에서 호스트를 맡게 되었을 땐 특히 더 부담스러웠다.)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했고, 책 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임은 먼저 책에 대해 호스트가 간략하게 소개한 후 간단한 감상을 돌아가며 말하고 호스트가 정한 주제에 대해 돌아가며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발언권을 좀처럼 얻기 어려웠다. 사람이 많아 한 마디씩만 이야기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한 생각 또는 질문을 즉각적으로 하기가 어려웠다. 일명 ‘끼어들기’는 모임장 또는 그 모임에 오랫동안 참여했던 소위 고인물들에게나 허락되었다. 그래서 대화가 깊지 않고 피상적인 수준에서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며 다니던 독서모임을 그만두었다. 치열한 취업 준비 시기와 새내기 직장인의 혹독한 적응 시기를 거치며 독서모임을 잊고 있다 직장에 적응이 될 때쯤 책 대화가 그리워졌다. 끊임없이 책을 붙들고 있었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서 허전했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사한 집 근처로 독서모임을 알아보았다. 마침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서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모임에 들어갔다.
모임장분과 연락을 통해 간단하게 모임에 대한 안내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책을 읽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였다. ‘첫 책부터 강렬하군’ 생각했다. 이 모임은 지하에 위치한 어느 스터디룸에서 진행했다. 스터디룸은 취업 준비할 때 면접 연습을 하던 스터디룸이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하는 첫 모임이었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져 마음이 편안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이름과 사는 곳 정도만) 본격적인 책 대화를 시작했다. 5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만큼 이전 모임과는 진행 방식이 사뭇 달랐다. 가장 달랐던 점은 호스트가 일방적으로 대화 주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각자 한 개 이상의 주제를 던지면 각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진행자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모든 회원들이 정중하면서도 솔직하게 대화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참 괜찮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꾸준히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더하여 이 독서모임의 좋은 점들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혹시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은 독자님이 계시다면 이런 점들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1. 적은 인원
이 독서모임은 5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원이 적으니 발언 기회가 많고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임은 모든 회원이 주제를 제시하고 각 주제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첨언할 수 있다. 그래서 소통이 더 원활하고 대화가 깊어진다. 또, 얼마 없는 발언 기회에 최대한 생각을 응축하고 정제하여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2.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는 방식
이전 독서모임에서는 투표로 책을 선정했다. 아주 민주적인 방식이지만 나는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는 것이 더 좋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회원들의 책 취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선정한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은 이런 유의 책을 좋아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한다.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읽다 보면 동질감이 느껴지고 평소에 잘 안 읽는 책을 읽다 보면 취향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신선함을 느낀다.
3. 한줄평 공유
독서모임이 끝나면 톡방에 이번에 선정된 책에 대한 한줄평을 남긴다. 한줄평을 쓰며 그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감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한줄평을 보면 그 사람이 독서모임때 했던 말이나 그 책에 대한 태도가 녹아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 연말이 되면 독서모임에서 그동안 썼던 한줄평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해동안 독서모임을 하며 읽었던 책의 감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참 좋은 시간이다.
만약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수줍음이 많아서 또는 책 대화가 부담스러워서 망설이고 있다면 용기를 내보시길 강력히 권해드린다. 독서모임은 감상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따뜻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어떤 해석도, 어떤 취향도, 어떤 경험도 받아들여진다. 단지 책과 관련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