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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끌리는 곳으로

충분한 여행

by 여름햇살

특별한 계획 없이 떠난 여행길, 문득 대부도가 떠올랐다. 우리가 머물렀던 수원의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새로운 곳을 달리는 길은 늘 설렌다. 사전 지식이 없었고, 제부도처럼 바닷길이 열리면 가는 작은 섬 정도로 생각했던 대부도는 예상과 달리 컸다. 대부도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가는 동안 맛집이며 대부도 볼거리를 검색했다. 물때가 맞으면 바닷길이 열리고 누에섬에 가 볼 수 있다 하니 약간 기대도 됐다.


대부도는 칼국수로 유명한지 초입에 서로 ‘원조’라는 칼국수 집들이 모여있어 면을 좋아하는 남편이 신난 표정이었다. 탄도 바닷길 근처 잔디정원이 있는 식당에 앉으니 여행 온 기분이 제대로 났다. 파전과 칼국수로 간단히 요기하고 탄도 바닷길로 향했다. 누에섬과 탄도 바닷길은 TV에 나와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물때를 확인하지 않고 갔는데, 바닷길이 열려 있었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열린 지 얼마 안 됐는지 아직 바닥은 젖어 있었다. 운이 좋아 기분도 좋아졌다.


천천히 돌아가는 풍차를 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5분쯤 걸었을까?

"이제 돌아가자"

걷기 싫어하는 남편이 말했다.

"뭐라는 거야. 우린 확인도 안 하고 왔는데 바닷길이 열린 행운을 얻었잖아. 그럼 감사하게 그 행운을 누려야지."

"빨리 안 돌아가면 물이 들어서 못 나가."

"그럼 저 사람들은 뭔데?"

우리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깜빡 속을 뻔했다.

예전에 서울 식물원 개장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도착했는데 남편은 입구에 우리를 세워놓고는 사진 한 장 찍고 돌아가자고 한 적이 있다. 정말 못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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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양옆은 뻘이었는데 우리가 걸을 때마다 구멍 속으로 게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광경이 마치 구멍 찾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구멍 하나가 부족해서 ‘시작 깃발’을 올리면 얼른 들어가야 구멍을 차지할 수 있는 게들의 게임을 혼자 상상하며 속으로 웃었다. 더 안쪽 뻘에는 갯벌 체험장이 있었고 입구에 장화와 연장을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왔으면 우리도 체험을 했을 텐데, 둘만 있는 지금은 여행 방식도 달라졌다. 모든 일에는 다 적당한 때가 있나 보다.


누에섬 앞에 도착하니, 남편이 또 돌아가려고 했다. 정말 돌아가고 싶은 건지, 그냥 한 번 건드려 보는 건지 모르겠다.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한 바퀴 돌고 싶은데."

"너 힘들어서 안 돼."

남편이 위해 주는 척 핑계를 댄다. 별로 안 높아 보이는데 누에섬 둘레길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살짝 걱정은 됐다. 전망대는 포기하고 같은 듯 달라 보이는 경치를 보며 둘레길을 걸었다. 쨍한 날씨에 초록 나무들이 싱그러웠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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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바닷길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갈매기가 이렇게 시끄러운 새였나?' 무슨 일이 난 것처럼 쉴 새 없이 끼룩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드론을 날리고 있다. "지잉, 징" 평소에 관심 없던 드론 소리가 거슬렸다. 갈매기들이 서너 마리 모여 이상한 생물체에 관해 대책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마리가 드론 주위를 염탐하듯 약간의 거리를 두고 돌았다. 갈매기들에게는 드론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뒤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젠 저게 다 한대. 농사도, 배달도...." 나란히 보이는 제부도에 케이블카가 다니고 있었다. 물때가 맞아 바닷길이 열렸을 때만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물때 상관없이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론도 케이블카도 편리함을 주지만 잃는 것도 있겠지. 가진 게 있으면 내어주는 것도 있는 법이다. 오래전 운 좋게 바닷길이 열려 들어간 제부도에서 밥집만 찾다가 경치는 하나도 못 보고 밥만 먹고 돌아온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대부도에서 보낸 이 시간은 나중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정해진 계획 없이 그냥 끌리는 곳으로 가보는 여행, 예측 가능한 남편의 행동에 예측 가능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함께 다니는 여행이 좋다. 꼭 더 많이 보고 다 해봐야만 하는 건 아니다. 다 보지 못하고 다 해보지 않아도 그 시간이 즐거우면 충분하다.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많은 곳을 하나씩 함께 다닐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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