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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투어? 그냥 빈둥거릴걸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거리

by 여름햇살


전날 다이빙을 하지도 않으면서 따라갔다가 고생만 한 기억에 이날은 오전 내내 호텔에 있을까 생각했다. 괜히 갔다가 고생만 할 것도 같고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두 마음사이에 갈등하다가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배를 타고 가다가 돌고래스팟에서 돌고래를 보고 발리카삭에 거북이를 보러 가는 일정이다.


해안가에 대기 중이던 작은 배는 연결해 주는 별도의 난간이 없어 물에 걸어 들어가서 타야 했다. 배에서 공사장에서 주워왔을 듯한 널빤지가 내려줘서 그걸 밟고 손잡이 용도로 내려준 기다란 나무를 잡고 올라갔다. 딱 봐도 허술해서 내 무게를 견딜지 염려되었는데 남편이 뒤에서 받쳐주었고 허술한 막대기는 제법 안정감 있고 의외로 튼튼했다. 배에 오른 후 다른 사람들이 오르는 걸 보다가 깜짝 놀랐다. 손잡이용 막대기를 사람의 어깨에 걸쳐 내리고 있었다. 작은 몸집의 그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해 왔는지 어깨에 막대기 따라 골이 생긴 듯 보였다. 그렇게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막대기를 잡고 오른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돌고래도 볼 수 있고 운 좋으면 물에 안 들어가도 거북이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따라나섰는데 그냥 호텔에 있을 걸. 배는 옷이 젖을 정도로 바닷물을 심하게 튕기며 나아갔다. 바다가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 가이드가 “저기 배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돌고래가 나오는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제주에서도 종종 돌고래를 보지만 남편이 “보홀에서는 달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을걸.” 하며 꼬드겼고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하니 선뜻 신청했다. “저기! 저기”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그쪽을 봤다.


제주에서는 돌고래체험 배도 일정 간격을 유지하고 조용히 가도록 한다고 들었다.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는 돌고래에게 배에서 나는 소음이 해롭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제주에서도 돌고래 체험 배는 안 타고 해변에서만 보는데 필리핀까지 가서 배를 타고 돌고래를 보러 나간 격이 되어 버렸다. 돌고래가 자주 나타나기는 했다. 나타날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저기 돌고래가 보인다”하면 안 그래도 시끄러운 배가 돌고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는 점이다. 그러면 돌고래는 도망갈 수밖에. 한편으로 신기하면서 한편으로 돌고래에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불편한 투어였다. 그 돌고래 보자고 한 시간 배를 탄 것은 후회막심이었지만 안 해 보면 모른다. 우리는 제주에서 종종 돌고래를 봐서 감흥이 덜 했지만 다들 너무 좋아했고 가이드는 우리에게 못 보는 날도 많은데 가이드 잘 만나서 돌고래 실컷 본 거라며 생색을 냈다.


다시 거북이를 보기 위해 발리카삭이라는 섬을 향했다. 더 나쁜 건 그다음이었다. 해변에서 선베드에 누워 책이나 보고 커피나 마시며 여유 부릴 계획이었는데 거북이를 보러 가는 그 배는 그냥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고 배에서 내려 거북이를 보는 것이었다. 나는 따라 나온 이상 당연히 배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는 기계소리를 시끄럽게 냈고 딱딱한 배의 난간에 오래 앉으니 허리도 엉덩이도 아팠다. 그 허술한 배에는 화장실도 있었는데 볼일을 보면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구조였다. 움직일 때는 볼일을 봐도 상관없는데 배가 서 있을 때 볼일을 보면 바닷속 생물들이 다 모여든다고 주의를 줬다. 역겹다고 생각하다가 제주의 돼지가 떠올랐다. 흑돼지라며 돈 더 주고 맛있게 먹는 돼지. 예전에 제주에서는 화장실에 돼지를 키웠는데 정말 볼일을 볼 때면 돼지가 밑으로 달려왔었다. 어릴 때 제주에서도 더 시골인 친척집에 가면 돼지가 달려들까 봐 무서워 화장실에 못 갔던 기억이 있다.


일행들이 장비를 하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바닷물은 정말 맑고 투명했다. 이 맑은 바닷물은 염도가 보통바다의 세배쯤 돼서 먹으면 큰일 나니 물을 먹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염분이 많아 수영을 못 해도 서 있기만 해도 물에 뜬다고 하니 신기했다. 이것저것 설명을 더 들었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화장실 이야기만 생각났다. ‘한쪽에선 볼 일 보고 한쪽에선 그 바다에 들어간다고?’ 남편은 장비를 하고 거북이를 보러 들어갔고 나는 운 좋게 올라온 거북이를 볼 수 있을까 바다를 뚫어져라 봤다. 배에는 아이가 어려서 못 들어가는 두 가족과 나만 남았다. 그때 누가 “저기, 있네. 거북이” 동시에 다들 쳐다봤다. “어 올라왔다. 고개 들었네.” 남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나도 똑 같이 쳐다봤지만 어린아이들도 다 본 그 거북이를 나만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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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거북이를 볼 수 있을까 해서 따라간 그 힘든 투어에서 모두들 보는 거북이를 나만 못 보고 뻣뻣해진 허리를 두드리며 투어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물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무사히 다 올라왔고 남편은 이번엔 별로 신나지 않은 듯했다. “거북이 봤어?” “응” “같이 헤엄쳤어?” “아니, 바닥에 붙어만 있던데.” 거북이를 만지면 벌금을 낸다고 하니 이런 투어가 거북이에게는 꽤나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 거북이도 못 보고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안 갔으면 또 궁금했을 테니, 나중에 ‘그때 해변에서 누워있더라도 따라나 가 볼걸’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실상은 해변도 아니고 이상한 배 위에 앉은 채 시끄러운 기계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돌아오는 배에서는 남편이 먼저 내려 나를 잡아주었는데 남의 어깨에 걸친 손잡이용 막대기를 잡기가 꺼려져서 남편 손에만 의지하고 내리다가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조악한 계단용 널빤지가 뒤집어지면서 내 다리에 부딪혔지만 거의 다 내려왔을 때라 상처는 나지 않았고 튼튼한 다리에 살짝 멍만 들었다. 내가 엄마 닮아서 다리 뚱뚱하다고 원망할 때마다 나이 들면 다리가 튼튼한 게 좋다고 고마워하라더니 튼튼한 다리덕을 좀 보긴 했다.


거북이도 돌고래도 신기했지만, 보고 나니 불편해졌다. 그들끼리 살기 좋은 곳에 모여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 헤집고 다니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짧은 추억이지만 동물들에게는 두려움과 부담이 될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거리를 지키고 한 발 물러서 조용히 바라보며 그들의 세계를 지켜주는 여행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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