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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살금 조용히 봐야 해, 안경원숭이

덤 앤 더머처럼

by 여름햇살

현지 가이드를 따라 좁은 숲길로 들어섰다. 어둡고 습한 느낌이 나는 길이었다. 안경원숭이는 야행성으로 밤에는 활동하고 낮에는 잠을 자니 깨지 않게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들 살금살금 다녔는데 한 번씩 어린아이 소리가 들려 안타까웠다. 안경원숭이는 숲 속 어두운 곳에 살아가는 작은 영장류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들을 ‘준위협 등급’으로 분류한다. 서식지 파괴와 불법 애완동물 거래, 관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요 위협 요인이라고 한다.


앞서 걷던 현지 가이드가 위를 가리켰다. 조용히 손끝을 바라보니 커다란 나뭇잎 아래 조그만 몸을 숨기고 있는 안경원숭이가 있었다. 몸은 작고 큰 얼굴에 커다란 눈이 안경을 낀 듯 보여 안경원숭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작은 아기처럼 보였다. 나이는 알 수 없지만 깡마른 손과 털도 거의 없는 작은 몸을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웅크린 채 자고 있으니 더 아기 같아 안쓰러운 마음과 보호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조용히 보고 앞사람을 따라갔다. 신기하게 나뭇잎 밑에 숨어있는 원숭이를 다들 잘도 찾아냈다. 마치 자연탐험을 가는 길 같았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는 안경원숭이가 있었다. 총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마지막에 본 원숭이는 깨어 있었다. 겁먹은 듯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하고 손가락을 입에 넣은 자세가 영락없는 어린 아기 모습을 보는 듯했다. 어디선가 아이 하나가 소리를 지르고 칭얼댔다. 자야 할 시간에 인간들의 소음 때문에 깨어버린 원숭이를 보는 게 안쓰럽고 마음 아팠다. 조용히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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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안경원숭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안경원숭이를 찍는 건 괜찮은데 카메라 플래시를 쓰면 안 된다. 여기서는 직원으로 보이는 현지인들이 안경원숭이와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남편을 따라 내 눈엔 보이지 않는 안경원숭이를 손으로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남편이 한 손으로 안경모양을 하고 있는 게 재미있어 따라 했는데 한참 뒤에야 남편이 손 모양을 계속 바꾼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진짜! 남편,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어떤 포즈를 할지 현지 직원이 손으로 알려 주고 있었고 직원의 손동작이 잘 보이지 않아 남편 손을 보며 손 하트, 팔 하트 등의 포즈를 따라 했다.


나중에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가관이었다. 사진 속 우리는 원숭이가 아닌 딴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 이거 봐봐, 우리 딴 데 가리키고 있어. 바보같이.” “당연하지, 안경원숭이가 어디 있는지 안 보였으니까, 직원이 하라는 대로 따라 했잖아” "남편도 안 보였던 거야?" 내 눈에만 안 보인줄 알았는데. 게다가 남편이 안경모양 할 때 나는 하트 모양, 남편이 손하트 할 때 나는 팔 하트, 이런저런 바보 같은 포즈들이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덤 앤 더머 커플 같았다. 우스웠지만 그 순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이 맘에 들었다. 안경원숭이의 개체수는 해마다 줄어, 앞으로 못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엔 이런 관광이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방문규칙을 지키며 얻은 관광수익으로 보호와 연구를 이어 가는 보전 중심의 에코투어리즘이라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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