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망년지교(忘年之交)
10월 15일의 고사성어(289) - 우정에 나이가 없어진 지는 오래
망년지교(忘年之交)
*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서로 사귐.
* 《후한서(後漢書)》 〈예형전禰衡傳)〉; 《남사(南史)》 〈하손전(何遜傳)〉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공융(孔融, 153~208)은 동한 말기의 저명한 학자로 북해(北海)의 재상이 되어 학교를 세워 학문을 장려하는 등 그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조조를 비판하고 조롱하다가 일족과 함께 처형되었던 비운의 인물이다. 당초 조조는 공융의 명성을 흠모하여 그를 책사로 등용하려 했으나, 공융은 이를 사양하는 한편 대신 예형(禰衡, 173~198)을 추천했다. 당시 공융은 나이 40여 세로 예형보다 나이가 무려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서로가 깊이 인정하고 ‘나이를 잊고 사귀는 사이’였다.
그런데 예형 또한 조조를 거침없이 비판하다가 유표(劉表)에게로 보내졌고, 결국 오만한 성격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융과 예형 두 사람이 나이를 잊고 서로 사귄 ‘망년지교’의 일화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남조시대 양(梁)나라 하손(何遜, 약472~519)은 담현郯縣) 사람으로 여덟 살에 벌써 시를 짓고 스무 살 때 수재(秀才)가 되었다. 그와 같은 시대의 대시인으로 알려진 범운(范雲, 451~503)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나이를 상관 않고 그와 ‘망년지교’를 맺었다고 전해진다.
나이를 유난히 많이 따지는 우리 사회에 ‘망년지교’의 사례는 아주 드물다. 하지만 지식과 능력이 나이와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뛰어난 상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망년지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야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바뀐다. 참된 우정에 나이는 원래부터 없었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망년지교(忘年之交)
도면. 왕융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젊은 예형과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눔으로써 ‘망년지교’라는 소중한 고사와 성어를 남겼다.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10월 15일
- 불괴우인(不愧于人), 불외우천(不畏于天)
-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하늘조차 무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