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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Feb 07. 2024

식물에게 시간은

사람에게 시간은 끝이 있는 일차원 직선이다. 태어나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보내고 죽음으로 가는 인간의 계절은 한 방향이다. 아침에 켜서 사용하던 컴퓨터를, 저녁이면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들어가 끄듯이 '로그아웃'되고 나면 이 세상에서 다시 켜지는 일은 없다.

직선적 시간은 초조하고 슬프다. 끝이 있어 빨리 성과를 내야 하고, 몸이 여기저기 기능을 읽고 낡아가는 것을 보는 일은 슬프다. 실수한 과거는 변하지 않고, 좋았던 과거는 다시 오지 않는 것 같다과거의 시간은 회복도 안 되고 잃어버린 것 같다. 끝이 있는 일차원 직선에 매이는 삶은 고통이다.


식물의 시간은 원형적, 순환적이다. 겨울에 죽은 듯 보여도 봄이 되면 동백, 개나리, 목련, 벚꽃이 다시 필 것을 안다. 조급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사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마치 태양이 밤이 되면 사라지지만 항상 존재하다가 아침이면 다시 떠오르는 것과 같다.

시간을 들여 키워온 나뭇잎이나 가지가 잘리면 나무는 옆으로 가지를 뻗어 잃어버린 과거를 회복한다. 찬 서리를 맞아도 내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핀다. 또한 원형의 나이테만큼 굵어진다. 과거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항상 품고 있다. 


사람의 시간은 한 번뿐이고 되돌릴 수 없어 서둘러 많은 것을 이루려 한다. 식물은 시간을 굳이 앞당기려 초조하지 않고 자기에 알맞는 시간에 맞춘다. 사람은 한 시간, 두 시간 숫자로 시간은 세지만 식물은 빛과 온도로 시간을 정한다. 사람의 시간은 미래에 무엇을 이루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이 순간을 달려가지만, 식물은 때가 되면 변하는 것을 알기에 '지금'에 충실하다. 

나이가 든 식물의 모습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고목에서도 꽃은 핀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아름다움도 잃고 은퇴한다. 일회적이고 죽음으로 끝이 난다면 자율적이 아닌, 타인이 요구하는 도덕성을 갖기 쉽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절망이다. 식물의 죽음이 요란하지 않은 건, 다시 새롭게 피어날 걸 알기에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영속성'이란 장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서 대상을 지각할 수 없을 때도 대상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을 말한다. '감각운동기'인, 생후 6개월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감각운동기 후반부(생후 8~24개월)까지 점차 완성되어 간다. 고 알려져 있다. 

'전조작기'는 대략 2세에서 7세 정도로 사물의 여러 면을 고려하지 못하고 지각적으로 두드러진 하나의 특징에 집중하고 사고한다. 특히 이 시기 '에고센트리즘'이란 자아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어 남의 입장과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다보존 개념 과제 해결의 실패를 가져오고 타율적 도덕성을 가져온다.

대상영속성이나 에고센트리즘은 그 시기를 지났다고 그 과제가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기에 불안정하게 발달되기도 하고 다음 단계에서 고차원적인 대상영속성, 에고센트리즘의 과제가 주어진다. 예를 들면 물건이 안 보여도 찾을 줄 아는 성인이, 애인이나 남편이 잠시만 안 보여도 불안해하는 경우 또는 눈으로 본 것, 자기가 경험한 것만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사람들이 일차원적 사고로 자기 존재를 판단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은 후에는 몸은 분해되어 흩어지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새로 태어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다. 영혼이 있고 윤회를 한다 해도 기억이 사라질 것이니  '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은 어쩌면 우리가 잠시 입고 있는 옷 같은 물질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억이 없어진다고 내가 사라지는지는 의심해 볼 문제다. 지금도 지워지는 기억이 있고 그렇다고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억에도 여러 차원이 있다. 단기 기억, 장기기억, 잠재 의식적 기억.. 등 또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시간은 같은 것일 텐데, 사람은 자기와 식물의 시간을 다르게 판단한다. 같은 시간인데 사람의 삶과 존재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이유는 대상영속성에 대한 인지 능력이 있는가와 좁은 시간과 넓은 시각, 자기 위주와 전체를 보는 차이이다. 

시간을 끝이 있는 일차원으로 보느냐, 환원적 순환적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와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같은 것이라면 모든 것도 같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 존재에 대해 대상영속성이 없고 에고센트리적 시각 때문에 아이처럼 잠시 안 보이면 불안, 초조하고 조급하고 불행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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