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짐덩어리 지폐들을 어찌하리
최근에 귀국 준비를 하며 물건도 정리 중, 냉장고도 털이중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지출들이 생기고 있다.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면서 남편에게 야금야금 한국돈을 환전받고 있다. 요새는 외식도 안 하고, 배달도 안 하고 둘이 숨만 쉬며 먹고만 사는데도 어디서 돈이 많이 드는지 모르겠는 나날이다. 남편이 돈을 보내주면 주로 위챗페이로 돈을 쓰니 현금은 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 학교에서 성적표 공증을 위한 현금이 필요했고, 아이도 학교 트립에서 사용할 현금이 일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서, 일부러 둘이 은행을 가서 현금 800 rmb를 찾아왔다. 한화로 약 15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아이도 현지에서 현금을 쓰는 게 불편한지, 가져간 현금 대신에 아이의 위챗페이에 연결된 내 통장에서 돈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인출해 간 현금을 고스란히 남겨왔다. 아이의 위팻 페이 내역이 내게 올 때마다 점점 내 마음은 불안해졌다. "아, 남은 금액은 현금 결제가 안 되는 일들을 사용할 때 남겨놔야 하는데. 어떡하지?"
이곳을 뜰 날이 얼마 안 남은 우리는 최소한으로 돈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기껏해야 쓰는 비용이 끼니를 해결할 마트 장바구니와 생수, 가끔의 간식뿐이다. 타오바오에서 마지막 쇼핑을 휩쓸고 가려고 했던 마음도 통장 잔고가 비어갈수록 구매 욕구가 점점 사라졌다. 성격도 급하고, 나중에 물건이 안 팔릴까 봐 샤오미 정수기도 일찍 처분하는 바람에 설거지를 할 때 마지막 헹굼을 생수로 하다 보니, 생수값이 갑자기 폭발이다.
귀국 시에 꼭 필요한 돈은 정수기 철거 비용과 학교 성적표를 공증할 때 이용할 왕복 Didi 비용, 성적표 공증 시에 대사관에 납부할 비용, 수도세 정산, 혹시 모를 가스비와 전기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항으로 이동할 프리미어 Didi이다. Didi는 앱으로 부르고 자동결제되니 현금 불가고, 마트도 굳이 내가 가지 않으면 현금 불가에, 수도세도 얼마 나올지 예상 밖이다. 지금 이것도 집주인이 우리가 출국하기 전날에 보증금 반환을 위해 날짜를 지켜서 집을 방문해 준다고 가정했을 경우이다.
이때부터 헤이즐넛이 박힌 다크 초콜릿을 먹고 싶은데 가격이 눈에 보인다. 쉽게 사 먹었던 음료수와 과자도 주문 전에 몇 번을 고민을 한다. 마트에서 아무거나 집었던 호박도 피망도, 가격부터 보고 가장 저렴한 걸 사기 시작했다. 그래도 통장에 남은 돈을 보니 꼭 필요한 항목들을 위챗페이로 결제하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얼마 전에 인출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쓰지 않는 현금 600 rmb를 어디선가 해결해서 통장에 온라인 머니로 이체를 해야 했다.
우리가 발급한 은행 카드는 한인타운에서 만든 한국계 은행 카드인데, 이 카드는 중국 아무 은행에서 월 4회 한도로 출금은 가능하나, 입금은 꼭 본점에 가서 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 먼 은행까지 이 현금을 입금하러 가기에는 택시비도 만만치 않다. 입금을 위해 돈을 지출해야 하니 아깝기 그지없다. 지하철을 타고 가자니, 어차피 지하철 역이 멀어서 요새처럼 최고 온도가 37도를 지나 39도까지 육박하는 베이징 날씨에는 걷다가 지치고, 어차피 Didi를 왕복 4번을 타야 지하철이 이용 가능하다.
근처의 몇 지인에게 현금을 주고 대신 위챗페이로 돈을 송금해 달라고 부탁을 해볼까도 하다가, 나도 갖고 있으면 부담스럽고 갖고 다니기 귀찮은 현금을 그들도 당연히 싫어할 것 같아서 혼자 해결하기로 했다. 내가 오랜 시간을 이곳에 있으면 어떻게든 현금을 다 쓰겠지만, 갈 날이 코앞이다. 그래도 현금이니 현금을 취급하는 곳에서 문의하기로 했다.
번역기에 나의 사정을 적었다. "내가 곧 한국에 귀국하는데, 이 현금을 은행에 넣어야 해요. 은행이 좀 멀어서 그러는데, 이 현금을 받고 입금해 줄 수 있나요?" 쓰고 나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했다. 현금을 받은 개인이 자신의 계좌에서 이체를 해줘야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혹시나 이 현금을 주면 위챗페이로 입금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당연히 그런 기능은 없었다. 스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급한 대로 관리소에도 문의했는데, 한 직원이 옆의 직원에게 "바꿔줄까?"라는 말을 했고, 이에 은근히 긍정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중국인 특유의 "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라는 느낌의 정신이 번쩍 드는 샤우팅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나왔다.
동네에 중국은행에 가서도 번역기를 내밀었다. 입구의 직원은 은행 계좌와 위팻은 별도라서 우리는 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결국은 내가 왕복 1시간이 넘는 은행을 직접 가야 하는 방법뿐이었다. 평소에 프리미어 Didi를 이용하던 나도, 막상 통장에 잔고가 없자, 마음이 너무 불안했고, Discount Express를 불렀다. 갈 때의 차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올 때는 정말 코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내가 창문을 열자, 기사 아저씨는 창문을 닫았고, 순간적으로 외마디 말을 했다. "我(나...)"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나 너무 덥고, 냄새가 나요. 창문 열고 싶어요." 였지만, 나의 외마디 외침에 아저씨는 눈치 있게 창문을 열어주셨다.
본점에 방문하여 입금을 하고 통장 잔액에 채워진 돈을 보니, 남은 날까지 내가 쓸 최소한의 항목들을 결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일을 위해서 왕복 택시비는 100 rmb가 좀 더 나왔고, 사실 불필요한 교통비라서 "저 돈이면 아이랑 햄버거 세트를 각각 시켜 먹는데..." 라며 현금 입금을 위해서 택시를 타고 먼 길 여행을 온 내가 웃기기도 했다.
분명 돈을 은행에 입금하기 전까지 나는 같은 돈 600 rmb를 내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현금은 내가 쓸 곳에서는 종이 취급을 받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이 되고야 말았고, 결국 이 현금이 은행에 들어가서 전자결제의 형태로 쓰일 때만 돈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전자결제가 너무 상용화되어 있어서, 현금을 볼 일도, 현금을 결제할 일도 정말 보기 힘들다. 같은 돈인데 사용할 수가 없으니 내게는 일반 종이와도 다름없었던 날들이고, 중국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며 교환을 이야기했을 때도 헌신짝 취급을 당해버렸다. 중국에서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가 최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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