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밥 먹을 때 우리는 배달가요.
이민 오기 전에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당당하게 이야기했었다.
혹시 취업이 안 되면 음식 배달이라도 하지 뭐. 그것도 재미있겠네.
그때는 그랬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남편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남편을 향해 나의 알바 경험을 이야기해 주며, 시급을 너무 생각하지 말고, 운동한다 생각하고 접근하기 쉬운 알바를 해보라고 고작 아르바이트 며칠 나간 내가 조언이랍시고 남편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세차장이던, 주유소든, 음식점이든 뭐든 해보는 것도 경험이라고. 하지만, 나처럼 막무가내 정신은 남편에겐 존재하지 않았고,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한 게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직업에 대한 틀을 깨는 게 그에겐 힘들어 보였다.
나야 뭐 원래도 일을 안 하던 가정주부였어서 그런지, 별생각 없이 누군가가 나를 직원으로 써준다는 거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남편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학교에서 며칠 트립을 가게 되었고, 남편과 아이를 기차역으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며, 때는 이때다 싶어 다시 한번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이민 전에 그가 뱉어 놓은 말을 상기시키며...
나 아르바이트 가기 전까지 시간 있는데, 우리 한번 음식 배달 해볼래? 어차피 며칠 동안 챙겨줄 애도 없으니 배달하면서 동네도 더 익히고, 진짜 우리가 배달 일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해보자. 뭐 어때, 미국이니까 이런 것도 해보지.
남편이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얼른 앱을 다운로드하고 차량을 등록하라고 너무 신난 얼굴로 재촉해 댔다. 매사에 결정이 느리고 신중하며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지까지 함흥차사인 그는 배달 일을 생각하며 자기가 진짜 할 수 있을지 또, 새 차로 배달을 하는 게 맞는지, 차량 연비와 마일리지를 고민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혼자가 아니라 행동대장 아내가 함께 해준다고 하자 흔쾌히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등록 과정을 마친 후, 앱을 켜고 첫 오더를 받기 시작했다.
점점 억척이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보며, 나 또한 남편에게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달 경험이 있기를 하나, 영어를 잘하길 하나, 미국의 배달 시스템이나 이 일에 대해서 아는 게 있길 하나.. 늘 다짜고짜 부딪히고 보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긴장되고 떨리고, 이게 진짜 되는 건지 신기해하던 찰나에, 어머나. '띵동'하고 정말 첫 오더가 잡혔는데 Starbucks다. 사 먹을 줄만 알았지, 배달은 처음이라 어떻게 가서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일단 픽업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2인 1조의 배달부부가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스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또 거기서 막혔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는지, 앱의 어디를 봐야 하는지 멀뚱 거리며 서성이자, 스타벅스 직원이 배달임을 느꼈는지 핸드폰을 들이미는 우리의 앱을 보고 주문자의 이름과 메뉴를 확인 후에 이름이 쓰인 쇼핑백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래도 남편의 용기가 가상해서 옆에서 계속 우쭈쭈 해주며,
내가 계속 옆에 있어야겠다. 음식이나 음료를 안 흘리게 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네. 오, 이거 재미있는데? 뭔가 선물을 주러 가는 기분이야.
정말 그랬다. 모르는 사람에게 배달을 하는 기분이 설레고, 무엇보다 모르는 동네를 드라이브하며 가지각색의 집구경을 하는 재미도 있었다.
남편 역시 미국 사람들이 어떤 음료와 음식을 시켜 먹는지, 어느 매장들이 유명한 곳인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이런 걸 보는 게 재미있다며, 동네 답사하는 기분이라고. 또 그나마 Pick up station에 가서 음식 배달 기사라며, 고객 이름을 이야기하며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며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 이제 진짜 내가 미국에 온 것 같다. 그동안 말할 곳도 없고, 집에서 진짜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는데, 가서 Hello.라고 한 마디만 해도 숨통이 탁 트이더라.
안타까웠다. 남편도 나처럼 주말엔 집돌이지만, 그동안 회사 생활하며 성실하고 인정 많은 직원으로 좋은 관계 유지하며 사회생활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365일 집돌이가 되어 많이 답답해하고 있었다.
집에서 말할 사람 없이 영어를 쓸 기회조차 없는 남편은 처음에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며 가는 곳마다 핸드폰부터 들이밀었고, 가끔은 영어 이름을 읽지 못해서 틀린 발음을 하며 멋쩍어했다. 물건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리고, 주문자의 기호에 맞게 집 앞에 놓거나, 직접 전달해주기도 하고, 원하는 장소에 가져다주면 된다. 간혹 꼭 전화 요청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고, 서로 위치를 못 찾아서 헤매기도 했다.
크럼블(Crumble) 등 우리는 먹어보지도 않은 낯선 디저트와 식사류를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건 차 안에 가득 퍼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수입이 제로였던 우리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던 외식이라, 음식 픽업을 기다리며 식당이나 카페에 들를 때마다 군침이 고이고 '아, 나도 먹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원시적인 인간 본능의 모습의 우리였다. 그때마다 다음에 아이랑 이곳에 와보자며 또 다음 장소로 출발하며, 새 차에 배이는 음식 냄새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뭔가 남편 혼자 보내기엔 물가에 내놓은 애 기분이고, 혹시 음식이 쏟아질까 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남편이 나를 픽업하러 오면 '배달 가자!' 하면서 아르바이트 끝나고도 기본 3-5시간의 음식 배달에 합류하며 조수석을 꿰차 앉았다. 나중에는 너무 오래 앉아있으니 허리랑 엉덩이도 아프고, 식사 시간을 계속 놓치니 위산이 막 나오고 나중에 머슴밥을 먹기도 해서 나중엔 주먹밥을 간단히 싸서 다니기도 했다.
어두운 밤에는 미국집의 특성상 집 찾기가 힘들고 이제 다들 노안이 온 우리 부부는 빛 번짐과 이정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밤운전은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밤이나 금요일, 그리고 주말과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 주문이 많고 그래야 그나마 기름값이라도 벌고 수입이 나오니 그럴 때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모든 게 남편과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배송하다가 갑자기 사슴 가족을 만나서 우리를 보고 서로 당황해서 저들도 멈추어 우리를 쳐다보고 우리 앞에서 길을 건너기도 하며 또 이런 잔잔한 일상에 감탄하며 참 즐겁게 다녔었다. 이곳 동물들은 자신들이 사람과 동급인 줄 아는 게 참 귀엽기도 하다.
미국에 온 후, 팁에 대한 불만만 가지고 있다가 막상 음식 배달을 하며 팁을 받아보니, 팁을 받는 기분이 이렇게 좋구나도 느껴보고, 간혹 멀리서 시켰는데 팁이 적거나, 제로팁은 경우엔 괜히 힘 빠지고 우리끼리 구시렁거리며 반대의 입장에서 문화를 느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래도 한창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데, 우리가 음식 배달을 가면 아이는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밤이 늦어져도 우리가 집에 오지 않으면 언제 오냐고 전화가 오니, 주로 아이가 집에 있는 저녁이나 주말에 늘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짠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엄마, 아빠 돈 벌고 올게. 오늘 팁 이만큼 받았어.라고 자랑하며.
주급으로 수입이 들어오자 남편도 집에 오면 수입과 연비 등을 정리하며 차량 감가가 떨어져서 손해도 있지만, 달러가 통장으로 들어오니 남편도 차량 거치대를 사서 환경을 업그레이드하고, 내가 아르바이트 가있는 사이에 더 많은 배달을 받기 위해서 주류 배달도 가능한 온라인 교육을 이수해 놓았다.
하지만, 주류 배달은 가스 스테이션의 약간 무섭고 거친 직원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신분증 체크와 몇 번 주류 배달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마리화나 냄새와 뭔가 연기가 자욱한 모습 그리고, 인상도 어둡고 눈이 풀려 게슴츠레한 얼굴과 덜덜 떠는 손으로 알코올을 받으며 오래 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얼른 주고 도망 나왔던 기억 등 알코올 주문자마다 좀 무서웠다. 또 평소에 잘 가지 않는 안전 해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 사이렌, 암흑 같은 고요함, 무서워서 심장이 쫄깃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아서, 알코올 배달은 몇 번 하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이가 학교에 가면 또 남편을 조르기 시작한다.
혹시 누가 아침 시켜 먹을지도 몰라, 나가보자.
디저트 먹을 시간 아냐? 나가자.
불금 아냐? 나가자.
주말 아냐? 폭설이다, 나가자.
그러면서 자주 얼굴을 트니 맥도널드에서 직원이 우리에게 서비스로 무료 콜라를 주기도 하고, 나중에는 남편이 기름값을 아껴야 한다며, 나를 아르바이트 장소에 내려주고 내가 일하는 동안 혼자 몇 군데 뛰고 오기도 했다. 오지 같은 곳에 갔다가 나무 덤불에 긁혀 새 차에 스크래치가 나서 집에 오는 내내 입이 대빨 나오기도 했던 한 겨울의 음식 배달의 추억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이곳 사람들도 햇빛을 찾아 나오는지 오더가 급 감소하여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돈벌이를 위한 음식 배달이었지만, 미국 사회의 안으로 성큼 들어가서 현지 문화체험을 경험했던 좋은 기억이다.
집에 가면 배달 중일 때 인생의 황금기를 누렸던 팀의 직원들한테 왔던 연락에 답장을 한다.
팀장님, 어떻게 지내세요? 다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어요.
나야 잘 지내지. 연락해 줘서 고맙다.
차마 그들에게 음식 배달하는 중이야.라고 말은 하지 못했던 남편의 속사정. 뭐 인생이 그런 거 아닐까.
미국 음식 배달은 차량 정체도 없고 거의 주택이다 보니 회사 건물이 아니면 배달이 편한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에서의 아파트 택배 기사들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며, 층마다 누르고 서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고될까, 차가 밀리는 한국은 더 쉽지 않겠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호강하는 거라고 위안 삼으며 다른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된 나날들이다. 우리처럼 영주권만 달랑 들고 무모하게 온 이민은 아메리칸드림이기는커녕, 감정적으로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저 깊은 어둠 속 땅끝까지 가고 나서야 다시 조금씩 비추는 햇살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뭐든, 뭔가 하고자 하는 생활력만 있다면 버틸 수 있는 끈기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같다.
이때 나의 카톡 프로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