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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by Mollie 몰리

도시락, 삼시 세끼, 남편과의 1년 가까이의 24시간 붙어있기, 대부분의 집안일도 내 몫이었는데 돌발성 난청까지 와버리니 참고 참았던 내 멘털이 제대로 나갔음을 느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내향적인 집순이었던 나는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예쁘고 힐링된다며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던 단지길도 나의 답답함을 풀기엔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산책길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길을 걷다 보면 토끼, 다람쥐, 정말 어쩌다가 사슴 가족을 보기도 했고,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빛을 냈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난생처음 반딧불이라는 존재를 보게 해 준 그림 같은 곳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몸과 마음이 편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는 한없이 이뻐 보이지만, 차를 타고 어디를 갈 수 없는 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에서는 그조차도 내 답답함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자꾸 남편과 집에 있으면

아, 내가 여기에 와서 뭐 하는 거지.

이 자연도 요양원 같고, 갈 곳도 없고, 아휴.


듣기 싫었다. 이런 나랑 맞지도 않는 답답한 소리와 한숨을 듣는 게 숨 막힐 지경이었다. 해외살이를 통해 감정이 많이 사라지고 극도의 현실주의자가 되어가는 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집을 나가자. 살기 위해 내가 나가자. 뭐라도 해보자. 까짓 거 여기까지 와서 뭘 못하겠어.

돈이 문제야? 남편이 취직이 안 되면 나라도 벌어야지.

그렇게 이민 온 지 두 달 만에 나는 돈을 벌고 발로 뛰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며 전업주부가 되었던 나는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의욕과 행동하나는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었고, 큰돈은 못 벌겠지만 식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사실 이민을 결심하고, 미국에 갈 날이 가까워지며 이곳의 살인 물가를 듣기도 했고,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내가 더 이상 육아를 위해 집에 있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이국적인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시기만 앞당겨졌을 뿐, 겁이 난다거나 굳이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책이나 나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마음 따윈 애초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전업주부로 살던 아줌마가 드디어 통장에 달러가 들어오는 달러벌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 푼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르바이트에 가있는 동안 남편도 자기만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계속 구직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서로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하니 분위기도 한결 나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집과 남편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니 남편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되는 소리를 해대도 그걸 들어주는 여유가 생겼고, 남편 역시 미안해하면서도 조금씩 달러가 통장으로 들어오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 Grigorii Shcheglov, Unsplash


단, 남편이 집에서만 빈둥빈둥 대면서 우울해할게 뻔하니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내가 운전을 못하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갈 때 남편이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기사 노릇을 부탁했다. 그거라도 해야 남편도 집 밖에 나오고 활동을 하면서 활력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차피 차가 1대라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운전기사를 둔 사모님처럼 그렇게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고, 운전기사에 대한 팁과 예의로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는 사우나가 있는 헬스장을 1달 끊어주었다. 내 푼돈으로 말이다.

비싸도 1달 다니면서 좋아하는 사우나도 하고 그래. 내가 가서 열심히 벌어올 테니.

평생 돈 버느라 고생했는데 그냥 1년 푹 쉰다고 생각하면서 때를 기다려봐. 뭐 안 되겠어? 정 안 되면 애 학교 다닐 때까지 버티고 한국 가던가.


그렇게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남편은 나를 데려다주고 그 길로 사우나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어 먹어도 살이 빠져갔지만, 나는 그래도 닥친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지만, 남편은 나와는 다른 성향이기에 미국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볼품없이 말라가고 예민해져 가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집에서 꿈쩍도 않던 남편은 점점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 하던 영어 수업도 끊어서 나가고 조금씩 밖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게 좋으면서도 속 끓이던 시간들이 있으니 늘 속마음과는 다르게 말로는 또 남편한테 생색을 낸다.

남편 사우나 보내고 알바 가는 아내가 어딨냐? 좀 웃고 잘 좀 해라.

겪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참 많다. 이민을 통해서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아직도 우리의 삶은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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