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과 이명을 만나다
나이 들어서 오는 이민이 힘들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체력적인 부분과 건강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무언가 해보자 하는 열정은 가득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한계선을 넘으면 질병으로 연결이 되는 게 야속할 뿐이다. 해외생활을 하며 병이 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중국 주재원 시절 1년간의 정상생활 후 3년간 중국에서 코로나 통제를 세게 당하며 간혹 심박수가 급작스럽게 빨라지는 공황장애 증상과 신경성 역류성 식도염으로 몇 년을 고생을 했었다.
2022년 12월 코로나를 통제로 막을 수 있다는 3년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며 중국은 갑자기 일시에 봉쇄를 해제했고,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며 단지에서 이웃들끼리 서로 감기약과 해열제를 품앗이했던 끔찍했던 기억. 나는 당시에 대상포진과 코로나가 동시에 찾아와서 온몸에 기력이 빠져 죽다 살아났고 그 뒤로 후유증으로 원인 모를 두드러기와 소화기가 망가져서 2-3개월 만에 살이 거의 20kg 가까이가 빠졌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보다 더 아플 수는 없겠지라며 건강을 장담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차차 회복이 되자 오히려 코로나 덕분에 살이 빠졌다고 우스갯소리도 하게 되었다.
미국 이미 오기 전 건강검진에서는 늘 오락가락하는 백혈구 수치 외에는 40대 이후의 노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자잘한 추적 관찰 병들이 생겼지만, 나름 에너지 넘치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멀리 와버려서일까. 대책 없이 무모한 도전을 해서일까. 우리의 욕심이었을까. 뭐든 한 번 시작하면 거기에 꽂혀서 집념을 못 버리고 꼼꼼한 성격머리와 앞의 글에서도 썼던 잔소리 바가지 백수 남편과 24시간의 동거로 나만의 개인 시간이 필요한 내향적인 나는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도 살이 빠지고, 체력적으로 점점 힘들어지자 정신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나 자신은 어떻게든 컨트롤이 되지만,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온 이 상황에서 풀리지 않는 우리의 암담한 미래에 대해서 남편이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힘듦이었다. 20년 가까이 살았어도 보지 못했던 같은 걸 바라봐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남편의 부정적인 시선과 어둠의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 무기력함, 계속되는 현실 부정에, 다소 생각 없이 보일 정도로 단순한 나는 점점 말수도 없어져갔고 밤에 수면을 취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한쪽 귀가 잘 안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쪽 귀가 물속에 잠긴 듯한 느낌에 소리가 고르게 들리지 않고 무언가에 막혀있는 답답한 느낌에 너무 공포스러워서 발발대기 시작했다.
나 귀가 안 들려. 이상해.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양쪽 귀를 막고 해 봐도 이상해. 어떡하지?
너무 무서웠다. 병원을 갈 줄도 모르고, 영어로 증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어떤 병인지, 치료가 되는 건지 짧은 순간에 우왕좌왕하며 미국에서 오래 산 친구에게 물었다. 구글에 ent near me라고 검색을 하는데 이비인후과는 전문의라서 예약이 바로 안 될 거라고, 급하면 urgent care를 가라고 했는데 일단 이비인후과에서 다음 날 예약을 해주어 차를 타고 25분쯤 달려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남편은 내가 잔병이 많으니 뭐 별일 아닐 거라고 '병원 가봐.'이 말뿐.
알지도 못하는 서류에 서명을 잔뜩 하고, 의사를 만나서 번역기로 연습해 간 증상을 영어로 간단히 이야기하니 의사는 진찰을 하고 바로 Sudden hearing loss라고 진단을 내려버렸다. 돌발성 난청이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그냥 hearing loss를 듣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야 말았다. 그게 뭐지?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뭔가 서럽고, 무섭고 병원도 나 혼자 들어간 상황이라 의지할 곳은 내 앞에 있는 미국인 의사였다.
하지만, 이 이비인후과는 청력검사실을 운영하지 않아 다른 외부 업체에 또 연락을 해서 예약을 해야 했다. 돌발성 난청인데. 일단 저용량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나와 남편에게 펑펑 울며, "나 돌발성 난청이래. 이거 뭐지. 나 한쪽 귀가 잘 안 들려. 이거 낫는 거야? 약은 또 어떻게 받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팔다리가 또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청력 검사 업체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내 몸 아픈 건 아픈 건데 남편의 상태도 좋지 않아서 병원에 끌고 다니는 것도 너무 눈치가 보였다.
결국, 나는 구글로 검색을 해서 청력 검사실이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그곳에서 청력 검사를 하고 나서도 Sudden hearing loss라는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전문의를 만나기가 힘들어서 PA와 진료를 봤는데 젊은 PA에게 또 눈물 한 바가지를 쏟으며 그가 잡아주는 두꺼비 같은 손에 온기를 느끼며 힘을 얻고 나왔다. 검사 결과가 틀리길 바랐던 건 한국과 달리 너무 올드하고 난감한 미국의 청력 검사 방법도 한몫했다.
일단 저용량 스테로이드를 처방대로 먹고 청력검사를 다시 한 후 변화가 없고 청력이 더 떨어져서, 좀 더 센 스테로이드를 다시 처방받았다. 두 번째 약을 다 먹었을 때까지만 해도 귀 먹먹함과 약간의 이명은 사라지지 않아서 평생 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 괴로웠다.
실내에 들어가면 귀울림이 너무 심해서 귀를 막아야 했고, 청각 예민증도 심해서 남편과 아이한테는 괜찮은 음량이 나한테는 너무 크게 느껴져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주말에 근처 박물관에 갔다가 귀가 너무 울리고 아파서 관람을 다음으로 미루고 중간에 대충 보고 나왔고, 일상적인 말소리, TV 소리가 다 저 건너 방에서 이야기하듯 막힌 느낌과 물속에 있는 답답한 증상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며칠, 몇 주 지났을까. 언제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느샌가 조금씩 귀 먹먹함이 사라졌고, 대신 이명이 그 자리에 흔적처럼 남게 되었다. 이명도 돌발성 난청이 심할 때는 크게 느끼진 못하다가 계속되는 피로함이 누적되서인지 글을 쓰는 지금도 양쪽 귀에서 쇳소리가 들리고 있다. 피곤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소리의 종류가 더 많아지고 소리도 커지기에 웬만하면 체력 관리를 하려고 하지만, 미국 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돌발성 난청이 재발도 잘 된다는데 가끔씩 이유 없이 잠깐 한쪽 귀가 막혔다가 뚫리기도 하고, 큰 소리로 이명이 몇 초 유지될 때만 난 또 트라우마처럼 그때로 돌아갈까 봐 두려움에 떤다. 최근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는데 내가 증상 설명을 잘 못해서 그런 건지 청력검사만 하고 진료 기록을 보며 자꾸 메니에르일 수도 있다며 메니에르 약을 1달 먹어보라는데, 어지럼증도 없고, 일단 그 약을 받으려면 피검사로 확인해야 하는 항목들이 있어서 또 따로 예약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 또 훅 떨어진 청력 검사 결과지만 받고 그냥 돌아왔다. 특정 주파수 때가 확 떨어졌지만 방법이 없나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체력이 떨어지니 평생 안 자던 낮잠도 자고, 10시만 되면 불을 끄려고 한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바쁘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도 밥과 도시락, 그리고 빨래와 약간의 라이딩 등의 양육만 할 뿐 교육이나 여느 엄마들처럼 제대로 서포트는 못해주고 있다. 귀 먹먹함으로 옆 사람과 대화할 때도 멀리서 들렸던 그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아찔하고, 아직도 내 귀에서 윙윙, 쎄거리는 사라지지 않는 이명을 들을 때면 '그때 좀 덜 열심히 살걸. 내가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