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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재산을 까먹는 중입니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by Mollie 몰리

미국으로 이민을 오며 해외이주비 자금 출처 확인서를 통해서 우리의 거의 전재산을 미국으로 가지고 왔다. 집도 절도 없는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 보자는 부푼 꿈을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첫 미국은행 계좌를 만들어서 그 돈을 입금하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현금으로 수중에 큰돈이 있으니 불안해서 안전하게 은행에 넣으며 그 돈이 고스란히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는 체크카드보다 신용카드를 더 많이 써서 카드사의 혜택을 보는 소비 형태를 유지했지만, 중국에 살게 되면서 신용카드와는 작별 인사를 했었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로 결제가 주를 이루어서 신용카드가 불필요했고, 핸드폰과 전자기기 등을 살 때도 미리부터 돈을 좀 모아두었다가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로 사곤 했다.


간이 콩알만 한 나나 남편이나, 한국에서는 많은 저축을 못하면서 살다가 중국에 주재원이라는 기회를 통해 수입이 많아지자, 알뜰살뜰 열심히 모아서 초기 몇 년에 대출을 모두 갚아버렸고, 우리가 그나마 미국에 가져올 수 있었던 현금들은 거의 중국 주재원 당시에 모았던 금액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주재원으로 제공해 주는 집도, 좀 더 웃돈을 주고 더 크고 멋들어진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정해진 제한 금액 이하의 집을 골라서 관리비까지 집주인이 내는 조건으로 살아서 전기세와 수도세 이외에는 집에는 들어간 돈이 없었다.


옷도 신발도 관심 없어, 화장도 안 해, 그러다 보니 브랜드도 잘 모르고, 큰돈이 나갈 일은 별로 없었지만, MUJI 매장에서 면 티셔츠나 바지 하나가 마음에 들면 색깔별로 산다던가, 중국에서 집순이 모드였던 당시에 IKEA에서 소소한 잡동사니를 계속 사모으기, 유튜브를 보면 이쁜 집, 이쁜 살림살이가 많아서 나도 저 도구가 있어야 밥을 맛있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또 타오바오 개미지옥에서 허덕이던 날들. 그런 게 나의 일탈과 소비의 전부였다.


여자로서 화려하게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중국 주재원 시절에도 손톱과 발톱에 옷을 입혀주는 일이나 마사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엄마들을 많이 만나지 않았으니 카페나 식당에서 쓰는 돈도 거의 없고, 미용실도 한두 번 가본 뒤로는 내가 머리를 자르거나 남편이 머리를 잘라주고, 남편 역시 아이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라는 게 습관이 된 건 주재원의 시작부터였다. 중국에서 엄마들이 가장 좋아했던 삶의 동반자였던 '아이'라고 불리는 청소를 해주는 가정부도 성격상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몇 년간 이런 생활을 통해 알뜰살뜰 모아서 주재원이 끝나가는 시점에 그래도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당시 꿈은 한국에서는 외벌이로 살며 저축이 힘들었던 삶을 알기에, 아이의 학업 문제로 변수가 생기면 유학이나 외국인학교라도 보내자는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학비를 미리 모으고 싶었던 게 작은 시작과 동기였다. 잡동사니만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내 생활이 더 생산적이고 의미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중국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해외송금하면서야 비로소 찾아온 뒤늦은 후회였다. 작은 소비도 반복되면 결국 큰 지출이 되어, 돈이 새는 구멍이 되고 만다. 어쨌든 그 돈은 이미 이민 준비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전부 부담해야 하는 해외이사비를 시작으로 점점 휴지 조각이 되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민을 오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돈이 나가는 건 차량 구입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연장하며 차량 렌트를 해오다가 인터넷의 중고차 사이트를 시작으로 주변 여러 브랜드의 매장을 돌아보고 차량의 견적부터 당장 구입 가능한 차량의 종류와 가격을 조사하고, 신차 구입과 중고차 구입 사이에서의 갈등, 차량의 사이즈부터 연식 등 모든 게 처음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고, 나처럼 초보 운전과 차를 모르는 사람은 인건비가 비싼 이곳에서 툭하면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 하나 정도는 줄이는 게 우리 삶에서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딜러들을 만나면서 이미 극도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에, 엄청난 고민 끝에 새 차 구입을 결정했고, 당장 차량 2대를 끌 일이 없으니 향후 내가 주운전자로 탈 차량을 구입했다. 이 일로 통장의 잔고에서는 거금이 하루아침에 빠져나갔다.


가장 큰돈이 빠져나갔고, 이제 그다음은 매달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비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서 살다가 정반대의 미국에 오니 생활비의 갭차이가 정말 크게 느껴졌다. 주재원 당시에는 회사에서 제공해 주었던 렌트비를 우리 손으로 내야 하니, 그게 생활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고, 한국의 월세가 너무 작게 느껴질 정도로 이 미국 시골에서의 매달 내야 하는 고정 월세 가격이 꽤 높았다. 매달 새로운 달이 시작하고 생활비를 얼마 쓰지 않았는데 렌트비 명목으로 큰 몸뚱이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미 매달 마이너스의 시작이었다.


계속되는 구직 활동에도 남편은 패배의 쓴맛을 보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고, 자고 나면 도착해 있는 다른 지원자와 함께 하겠다는 서류 불합격 메일, 운 좋게 보게 된 인터뷰 후에도 고스팅을 하며 갑자기 사라지는 회사들, 이력서만 받아가고 자기 실적만 채우던 헤드헌터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배에서는 밥 달라며 신호를 보내는 식충이 갔던 우리의 삶.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은 부쩍 한숨도 많아지고 말수도 사라졌으며 온갖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으니 살이 8kg 정도가 쭉 빠져서 미디어 중독자처럼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한국에서의 즐거운 삶,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삶 등 자신과 전혀 다른, 하지만 자기가 동경하는 현실과 정반대의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과 함께 신세한탄을 점점 하기 시작했다.


'나 미국에서 취업 못할 것 같아. 우리 이러다가는 그냥 있는 돈 다 써버리고 한국 돌아가는 거 아닌가 몰라.'

나보다 돈걱정에 잠 못 드는 남편은 매일같이 점점 통장의 잔고 걱정을 하며 이제 우리 얼마 남았다, 이제 몇 월까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엑셀에 월 생활비를 적어서 그거만 쳐다보며 한숨 쉬는 게 하루 일과였다. 점점 그 화살은 또 내게 다가왔다.


장 좀 그만 봐.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어.

없으면 없는 대로 먹어. 내가 돈도 못 버는데. 우리 이제 진짜 몇 개월뒤면 돈이 없어. 와서 봐봐.

우리가 줄일 수 있는 건 먹는 생활비뿐이야.



나름 아낀다고 아끼고 있었고 외식은커녕 삼시세끼 집밥에 지금 사는 집도 옵션 없고 가장 저렴한 집을 고르는 바람에 식기세척기도 되지 않는 집으로 와서 밥 먹고 설거지하면 밤 10시는 금방인 숨 막히는 생활에 나도 많이 지쳐있었다. 단순함과 무모함으로 무장한 나는 남편의 마음이 이해 가면서도 무슨 자신감인지 그냥 지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나를 왜 이렇게 쪼는지 그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취업이 어떻게 금방 되겠어. 기다리다 보면 맞는 곳이 나올 거고, 너무 마음 조급해하지 마. 그리고 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만 닦달해. 숨 막혀.'


1년이 다 되어갈 때쯤, 우리가 미국에 와서 먹었던 외식은 손에 꼽는 미국 유명한 버거류와 치뽈레 한 번씩이었고, 아이가 지나가다 스테이크 맛있겠다고 하면, 그래 먹고 싶은 거 먹고 몇 달 참고 모으면 되지라는 생각의 나와 달리 남편은.


아빠가 지금 일을 못하니까 아빠 나중에 취업하면 그날 저기 먹으러 가자. 꼭 약속할게.

그렇게 우리는 남편이 취업을 하게 되고 첫 월급을 받으면 저 스테이크 집을 꼭 가자며 가족끼리 약속을 하게 되었다. 속 깊은 아들도 그런 마음을 알아서 부모로서 미안할 정도로 먹고 싶은 거 참고, 원래도 자라면서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아이인데, 자기 절제를 너무 하는 마음을 보며 너무 안쓰러웠다.


우리의 통장은 말 그대로 잔고가 점점 텅텅 비어 가는 텅장이 되어가고 있었고, 잘 울고 마음 여려서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수년의 해외생활을 하며 단순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지만 해결을 해야만 발 뻗고 잘 수 있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해결본능'이 점점 강해져 갔고,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낸다'는 극 T로 변해가고 있었다.


남편과의 1년 가까이의 24시간 밀착 생활,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해야 하는 미국에서의 삶,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고 간섭하는 남편에 나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수년간 고생하며 모았던 돈들이 이렇게 몇 달 만에 숨 쉬듯 빠져나가는 만큼 나 역시 점점 살이 빠져갔다. 나와 남편은 둘 다 살이 빠져서 평생 해본 적 없는 어떻게 하면 살이 찌는 거였지가 고민으로 또 추가되었다.


남편은 또 시작이다.

와서 좀 봐봐, 돈이 또 없어. 어디로 갔지? 너 장 좀 그만 봐.

제발!! 그만해.

kenny-eliason-maJDOJSmMoo-unsplash.jpg © Kenny Elias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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