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Pantry 자원봉사 활동, 누가 누굴 ,,
미국 공립학교로 전학을 한 아이는 혼자 맨날 바쁘다. 미국 학교는 대체적으로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하이스쿨이라 그런지 매주 Weekly Grade Nitification이라는 이메일로 주간 성적 알림이 오고, 매주 시험도 많이 보는 것 같다. 여느 아이들처럼 누구나 기본적으로 한다고 하는 스포츠나 악기 활동은 안 하지만, 친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 중에 Food Pantry(푸드 팬트리)가 있다고 정보를 줘서 그곳에 가게 되었다. 푸드 팬트리는 기부 받은 음식을 저소득자 가정이나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일이다.
엄마 아빠는 먹고 사느라 바쁘니 아이한테 챙겨줄 시간도 없고, 시간이 많다고 해도 미국 교육에 대한 정보나 그 흔한 정보통도 없다. 그래서 아이는 미국 학교 생활을 하며 더욱더 자기 갈 길을 스스로 찾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도 많아졌다. 당시에도 우리가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어딘가에 가야 한다고 하면 라이딩해 주는 것과 뭔가 필요하다고 하면 결제해 주는 것, 그리고 아이의 선택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추운 겨울날, 남편과 나는 아이를 데리고 푸드 팬트리 장소를 찾아갔다. 아이가 우리보다 영어 수준이 더 높으니 우리는 몇 발자국 뒤에 빠져서 처음 보는 담당자에게 아이가 오늘 처음이라고 맡기고 나오려던 참이었다. 습관적인 하이, 헬로와 미소를 크게 날려주고. 그런데 그 담당자는 내게
아이가 미성년자라서 부모가 이곳에 같이 있어야 해요.
아... 그럼 여기 어디 앉아있거나 기다리는 곳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 자원봉사 활동을 부모가 같이 해야 해요.
헐...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남편은 나보다 더 재빨리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했고 어차피 내가 운전하고 집에 가는 게 또 무서워서 그렇게 그날부터 매주 주말마다 자원봉사를 따라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동네 경찰서에서 경찰 아저씨들 책상이나 닦아주고 쓰레기통 비워주던 봉사활동 이후에 자원봉사는 또 처음이다. 점점 사람들이 모이고, 다들 오래된 자원 봉사자들인지 엄청 친하고, 나름대로의 조직이 있다. 규칙과 활동, 식사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절반도 못 알아듣겠고, 아이한테 물어보니.
엄마, 지금 조용히 해. 나중에.
에잇. 그거 좀 귓속말로 알려주면 안 되니.
그날 모인 자원 봉사자들을 각 팀으로 나누었고, 나랑 아들은 Food Pantry 쪽에 배정이 되었다. 그곳의 담당자가 이 일에 대한 소개와 시스템, 근무 시간 및 우리가 해야 할 업무를 동선을 따라다니며 함께 설명해 주었다. 한 번듣고 내가 알리가 없지. 미국에 온 후로 영어를 들으면 사실 못 알아듣는데 자꾸 알아들은 척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순간들이 참 많다. 나는 아이를 따라서 한 번 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혼자 한다고, 갑자기 끌려온 상황이지만 너무 재미있어 보인다며, 너는 이곳에서 얼마나 일을 했는지 또 없던 에너지를 쥐어 짜내서 한껏 밝음을 뽐내었다.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우르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더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바로 소득이 일정 비율 이하가 되면 무료 음식을 신청할 수 있나 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방문해서 영양소 골고루 알뜰하게 음식을 무료로 받아간다. 갖가지 종류의 콩통조림, 과일 통조림, 간식, 야채류, 이것도 고루고루 과일, 감자, 고구마, 양파, 샐러드, 냉동고기, 냉동 과일, 우유, 주식인 빵과 디저트까지. 내가 다 군침이 넘어가는 음식 재료들이었다.
나랑 아이랑 '마녀'라고 부르는 까칠하고 쇼트커트를 한 데스크에 있는 자원봉사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Next! 하고 다음 사람을 부르고, 본인 순서가 되면 신분증과 신청을 해놓은 서류인지 그걸 보며 본인 확인과 가족 수, 차량과 차량 색깔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한눈에 봐도 이민자들도 많고, 특이한 미국인들, 심지어는 영어를 아예 못해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어떻게든 소통을 하려는 난민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줄이 심지어 엄청 길고, 끊이지 않는다.
마녀는 외친다.
너희 어디에 사냐고요.
너희 차량 색깔이 뭐냐고요.
이 사람 이름으로 함께 사는 게 맞아요?
신분 확인이 끝나면 그 가족을 위해서 재빨리 음식을 담아서 차량에 실어주는 것까지가 우리 임무다. 막상 자원봉사를 해보니 사람들도 만나고, 자원봉사에 매주 오는 사람도 달라지니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내가 음식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이것 또한 배달 아르바이트처럼 남한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분이 나름 또 재미있다.
몇 주는 나만 따라가다가, 몇 번은 남편을 보냈는데 남편은 몇 번 가더니 또 앓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봉사를 하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네. 나도 내가 직장이 없어서 무직에 백수인데, 내가 저기에 껴서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야 할 처지에 누가 누구한테 무료 음식을 나눠주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누구도 우리한테 너희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괜히 직업도 없이 이제 막 미국에 와서 영주권이라는 신분증 하나 달랑 들고,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산 활동을 하지를 않는 상황. 즉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고 있는데 남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상황이다. 하필 또 자원봉사를 하게 돼도 저소득자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일이니, 저들이 안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이런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단순한 가정주부 어머니는 별 생각이 없으시다. 아이가 필요한 활동을 통해서 이런 인연을 얻고, 새로운 경험을 하니 또 한참 재미있다.
그러다가 남편이 정말 못 가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늘 푸드 팬트리만 하다가 성인 남자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자원봉사 시간도 이미 지난 상황에 그 일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걸을 때나 누울 때도 통증이 생기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안 그래도 볼멘소리 하며 억지로 몇 번 갔던 남편인데, 남편이 갈 때마다 성인 남자가 가니 자꾸 힘쓰는 일을 시킨다며 결국 라이딩만 해주게 되었다.
나도 한 번 창고 정리를 해야 한다며 그쪽 팀에 합류하게 되어 공사판 같은 막노동을 하루하고 나니, 허리 디스크가 도지고, 푸드 팬트리 쪽 담당자한테 가서 울상을 지으며 이야기하니, 너무 미안하다고 다음 주에는 꼭 우리 팀에 오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백수 가족의 푸드 팬트리 자원봉사 활동들.
차마, 우리도 사실 지금 직업이 없어요. 미국에서 수입이 0원이랍니다.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속사정은 숨긴 채, 늘 밝은 척 신바람 나게 정말 저소득자를 위한 푸드 팬트리를 하며 내가 담아준 이 음식들을 한 주간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 수에 따라 빵도 더 큰 걸로 담고, 아이가 있으면 간식도 더 챙기며 미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았다.
그래도 우리는 이민 적응 기간 동안 일시적인 힘듦과 예상치 못한 오래된 백수 상태로 잠시 힘들고 지치는 거라고 마음의 위로를 하며, 남을 위해 진심을 다해 봉사를 하고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미국 이민 생활은 낯설고 도전이 많지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며 우리 가족을 더욱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민이라는 큰 산을 넘어가며, 이제 세상 그 어떤 것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외 생활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