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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앨범 Jan 24. 2024

남에게도 엄격하고 나에게도 엄격한 사람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남에게도 엄격하고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그래서 남의 실수도, 나의 실수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남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스스로 용납하기 힘든 사건 몇 가지가 일어났다.




#사건1. 굳지 않았던 실리콘

연재 2화의 <우리 집은 왜 자꾸 천장에서 물이 새?> 글을 통해 화장실 천장 누수 문제를 글로 남긴 적이 있다. 무사히 누수 공사를 잘 마쳤고, 뜯었던 화장실 천장도 실리콘으로 잘 마무리 됐다. 그런데 화장실 벽면 이곳저곳이 더럽혀져 있었다. 공사하는 과정에서 묻었던 것 같은데 그냥 둘 수 없어 물티슈로 이곳저곳 닦기 시작했다. 실리콘 마감처리 된 부분 근처도 많이 오염되어 있었는데… 아뿔싸! 물티슈가 굳지 않은 실리콘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실리콘이 닦여 나가면서 천장의 모서리 부분의 틈이 드러나고… 찬 공기가 슝슝 들어왔다. 다이소에 가서 실리콘을 사 와서 보수했던 사건. 그런데 사 온 실리콘조차도 창틀용 실리콘이라 욕실용 실리콘과 색깔이 달랐다. 실리콘이 굳은 다음에 천천히 청소하면 됐던 일을. 너무 심각한 부지런함(?)을 후회했는데…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나고 말았다.


#사건2. 곰팡이 대환장 파티

새벽 2시 30분.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뭔가 하자.’

뭘 할까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책장 옆 벽면 위로 거뭇거뭇한 것이 보였다.

‘뭐지?’

우리 집 책장은 높이 120cm로 일반 책장의 절반 정도의 높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책장에 가려진 벽면 쪽에 아주 시커먼 곰팡이들이 잔뜩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즉시 행동으로 돌입. 책장을 다른 벽면 쪽으로 옮기고 곰팡이 제거를 시작했다. 화장실 곰팡이 제거용 락스로 곰팡이를 닦아냈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 한 밤중에 강제 환기. 2시간이 후딱 지나갔고 지쳐가던 나는

‘이 새벽에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마무리 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새벽 6시. 나는 또다시 나의 심각한 부지런함(?)을 후회했다.


#사건3. 잘못 보낸 소포

최근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의 부탁으로 소포를 보낸 적이 있다. 도착해야 하는 장소는 캘리포니아주. 그런데 나의 실수인지, 우체국 앱의 실수인지(우체국 앱 실수라고 강하게 믿고 싶다!!) 주소 입력이 잘못되었고, 놀스 캐롤리아주의 콩코드 지역으로 보내졌다. 지인이 톡으로 보내준 주소를 그대로 복사해 우체국 앱의 주소창에 넣으니 자동으로 나머지 부분에 콩코드, 놀스 캘롤리나 등이 입력됐다. 당시에는 이것들이 지명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콩코드는 부끄럽지만… 콩코드 비행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소포가 콩코드 비행기로 가는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콩코드 여객기가 취항하지도 않고, 이미 퇴역한 비행기였는데… 당시에는 왜 그랬나 모르겠다. 총체적 난국이다. 한국 EMS 콜센터에 전화해 보니 미국 내 주소를 변경할 수 없다고. 직접 미국 EMS에 전화를 하면 변경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일까?




이 밖에도 아들과 함께 한 호캉스에서는 내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던 사건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한쪽 구석에 내 수영 용품이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정리만 해 놓고 가방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1-2개월 사이에 이런 일들이 무척 많이 일어났다. 용납하기 어려운 실수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마지막 소포 사건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들에게는 나의 이런 허탈함을 이야기해 보기도 했다.

“아들, 아빠가 캘리포니아로 보내야 하는 소포를 콩코드로 보냈어.”

“그게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들의 대답을 들으니 뭔가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다고 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구나. 아들의 무관심인지 관대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조금은 관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해줬을까? 나 역시 괜찮다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책 <니체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를 관대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너무 먼 거리에서만 바라봤던 것일까? 너그러운 마음과 관심은 거리에 반비례하나 보다. 나 자신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물론 다른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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