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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지은 Mar 09. 2024

팔레스타인 친구가 이혼을 했다

네가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수소문 끝에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를 찾다


열아홉의 여름, 처음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을 여행했을 때 만났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아랍민족답게 흥도 많고 꽤나 사교성이 좋은 활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만난 동양인들에게 아랍 춤을 적극적으로 알려줄 만큼 열정도 많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몇번이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어떻게든 우리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던 그녀였다. 덕분에 흥이 나는 아랍노래에 맞춰 아랍춤을 직접 배워볼 수 있었고, 아랍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년이 지나고 다시 팔레스타인에 가게 되었을 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 연락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이전에 팔레스타인 삼남매를 만나러 갔을 때 그 동네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그녀의 집이나 일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삼남매 가족을 다시 만나 밥을 먹다가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잘 살고 있는지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아무래도 이웃주민이니 혹시나 그녀의 근황을 알까해서. 삼남매 가족들은 그녀의 근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보러 놀러왔던 사람들 중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친구를 통해 그녀의 근황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녀의 친구는 그녀에게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픈 상황을 겪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가는 것이 혹시나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머뭇거리는 우리를 답답해 하는 듯 그녀의 친구는 그녀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고 반년만에 그녀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속되었던 가정폭력, 그 결말은 이혼


그녀와 처음 만났던 반년 전 그 날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 때 그녀는 남편이 될 사람과 찍은 웨딩 사진을 보여주며 결혼에 대한 기대감을 조잘조잘 말했었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21살 정도였다. 결혼식에도 초대를 받았지만 여행날짜와 겹치지 않아 참석은 못 했었다. 그렇게 기대 가득한 말투로 말했던 그녀였는데. 결혼한지 반년도 안되어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픈 얘기를 자세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많이 맞기도 하고 위협도 당했었다고 햇다. 내가 듣기에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사건들이 있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그녀도 힘들고 지쳐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과의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내 의욕 없이 잠만 자고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그녀의 집에 간 날도 그녀는 세수도, 씻지도 않고 초췌한 몰골로 우울하게 우리를 만났다.


그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가 겪은 아픔을 상상할 수 가 없다. 결혼, 이혼 이라는 단어자체가 한국을 살아가는 스무살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먼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황들도 나와는 다른 단계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섣불리 공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까. 고민끝에 나는 서툰 아랍어로 그녀에게 짧은 말을 건넸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많이 힘들었을 거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정 도로, 보통사람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나에게 울며 아랍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녀가 하는 얘기를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힘들었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많은 말 없이 그냥 꼭 안아주었다. 나와 비슷한 20대 초반에 엄청난 아픔을 겪은 이 친구가 다시 원래대로 밝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함을 조심스레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니 그녀는 진정이 되었고, 약간의 활기를 다시 찾은 듯 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스피커를 가져오더니 작년에 들었던 그 아랍 노래를 틀고 그 때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집안에 모인 여자들이 모두 하나되어 행복하게 춤을 추었다. 아랍춤은 슬플 때 추기 좋은 춤이라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지고 걱정되어 연락을 했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여전히 연락을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전처럼 다시 활발한 성격으로 돌아와 밝은 에너지를 주변에 나누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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