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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햇살 Sep 13. 2024

현실 VS 꿈

 나도 현실과 나의 소중한 꿈을 견주고 싶진 않았다. 태어나 보니 집은 가난했고, 엄마 혼자 벌어서 우리를 키워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또래보다 일찍, 어린 나이에 ‘현실’이라는 게 보였다.


 ‘작가로 얼마나 벌 수 있을까?’

 현실을 알고부터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를 따지게 됐다. 지금이야 인터넷 시장도 발달하고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도 많이 생겼기에 여전히 힘들긴 해도 그때보단 작가가 되고, 책을 내기가 수월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 때만 해도 종이로 내는 책이 전부였기에 작가는 박봉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린 내게도 그렇게 인식되어 있었다.


 또, 생각 속에 따라다니던 꼬리표 또한 꿈을 접는데 한몫했다.

 ‘꼭 엄말 호강시켜 드릴 거야!’

 난 고생하시는 엄마께 호강이란 걸 시켜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업을 원했지만 작가는 그렇지 못하단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꿈을 밀고 나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어쩜 돈을 핑계로 맘 한 편에선 내 소질을 의심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자신 있었다면 자신감이 현실을 밀어냈을 테니 말이다.


 난 초등학교 3학년 이후 공부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노력했던 이윤,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엄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6 자매 케어와 일에만 전념하셨다. 하루에 많이 자야 네 시간 정도 주무셨고, 그 와중에 일찍 일어나 아침밥도 항상 챙겨주셨다. 그리곤 먼저 일을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엄마가 먼저 나가서 미안해. 가방 잘 챙겨서 학교 조심히 다녀와!”라고.

 당신도 우리를 챙기는 게 힘드셨을 텐데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엄만 늘 미안해하셨다. 씩씩한 척하며 일터로 향하시던 엄마를 멀어질 때까지 보고 있으면 엄마의 어깨가 축 처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엄만 얼마나 힘들까?’

 어린 나도 엄마가 일터로 나간 순간부터 외로웠지만 애써 힘든 걸 감추며 돌아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면 나보다 엄마가 더 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엄마께 무언가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릴 방법을 찾게 됐다. 그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였다.

 학교 시험에서 백점을 맞은 날, 엄마께 시험지를 내밀며 말했다. 

 “엄마, 나 이거 100점 맞았다! 내가 이 과목은 1등 이래!”.

 평소 별거 아닌 일에도 칭찬을 자주 해주셨기에 으레 잘했다는 칭찬이 나오길 기다리며 엄마를 바라보던 그때,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생기가 돌고 정말 밝디 밝은 미소를 띠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 내가 시험 잘 봐서 기분 좋아?”

 “잘 봐서도 그렇지만 우리 딸이 열심히 해주니깐 엄만 너무 좋다!”

 엄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에 정말 기쁘다고, 힘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토록 바라던 엄마께 기쁨을 드리는 일, 그 일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상위권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열심히 했고.


 하지만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단지 최선을 다하며 꿈을 좇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돈이 있어야 엄마 호강시켜 드리지.’

 무턱대고 미래가 불분명한 꿈에 연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인문계 대신 상업고등학교로 진로를 황급히 바꿨다.


 상업고등학교는 컴퓨터를 주 과목으로 가르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등학교였다. 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와 같은 그런 곳이다. 상고를 가면 정보처리, 정보기기, 컴퓨터 활용 능력, 워드프로세서 등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많이 딸 수 있고, 전교 상위권에 들면 삼성, 엘지 같은 대기업도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이미 언니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언니들도 홀로 힘들게 일하는 엄마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대학을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졸업 초봉도 꽤 많겠지?’

 나도 엄마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을 쉬게  드리고 싶었기에 목표를 바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곤 고등학교 원서를 쓰기 전, 선생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 상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졌어요.

 갑자기 왜 이래? 진로 다 정해진 거 아니었어?”

 선생님께선 인상을 쓰시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차마 선생님께 내 진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행여 우리를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가 딸의 미래도 밀어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나를 예뻐하시던 선생님들께서 교무실로 불러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결심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난 두 번째 꿈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애써 맘을 다독였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 되지 뭐. 우선 돈 먼저 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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