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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21. 2024

낮잠은 최고의 다이어트

─ by Ms. Go




       잃어버린 뼈를 맞추듯 기지개 켜고

       다시 눈에 달라붙은 졸음을

       앞발로 쓸어 모으며 말한다

       정말, 한숨도 못 잤다니까     


       ◇ 송현섭, 「잠꾸러기 고양이」 부분   

  

  또 낮잠을? 그런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지 마. 돌아보면 엎드려 있고 다시 돌아보면 눈을 감고 있다고 한숨 쉬지 마. 앞발 하나 쭉 내밀고 자는 습관을 보고 웃지 마. 발바닥 간질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일평생 신생아로 살아가기, 뭐 이런 계획을 세워두고 철두철미하게 실행하는 중이냐고 중얼거리고 있지? 다 들려. 내 성격이 ‘J’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자려고 졸음을 불러오는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니라 다만 수시로 쏟아지는 졸음에 충실히 응하는 거야.     


  십여 년 동거 이력을 내세워 분석한 미스터 초이의 MBTI는 ‘INTJ’가 분명해. 나와 일치하는 단 하나는 내향적인 성격. 완전 고양이 같은 사람이란 뜻이야. 나처럼 독립적인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간섭받을 때는 자못 민감해지지. 내가 만약 시도 때도 없이 들러붙으려는 개였다면 1년은커녕 1개월도 함께 살기 어려웠을걸. 누구나 떠안아야 할 1인분의 외로움을 항상 저 멀리에 밀어둘 수 있는 사람.     


  적당한 간격 유지하기. 우리가 무난하게 오랜 기간 동거할 수 있었던 비결이지. 이성적이긴 하나 직설적이기도 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나 자기주장이 분명한, 마이 웨이 스타일 집사와 일상의 거리를 지나치게 좁히면 서로가 스트레스에 시달릴 게 틀림없어. 나는 ISFP. 성격 궁합을 보면 맞는 거 반, 안 맞는 거 반.     


  半. 반을 뜻하는 한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적당한 거리를 반으로 나눈 것 같아. 어느 한쪽이 당겨도, 밀어도 늘 같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고양이와 사람 관계에서 안 맞는 부분을 사람이 다 맞춰간다고 생각하겠지? 천만의 말씀. 고양이 또한 반 정도는 당기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맞춰가고 있어.     


  낮잠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기 위한. 잠을 자면서 물러서는 거야. 깨어 있을 때 다가섰던 한 걸음을. 게다가 낮잠은 최고의 다이어트 방법이기도 해. 자는 시간에는 먹지 않잖아. 그러니까 고양이 수면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줘. 오래 마주 보려고 거리 조정 작업하는 거니까. 살 빼려고 노력 중이니까.     


  자는 아이. 온종일 뛰어다녀도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못해서 집에서도 쿵쿵쿵. 잠을 잘 때야 얌전해지는 아이를 떠올려 봐. 안면 근육이 원초적인 부모 미소가 무엇인지 알려줄 거야. 일본어로 고양이는 네코. 자는 아이를 일컫는 말도 네코라고 하네. 고양이의 어원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자는 아이는 세계 공통의 고양이 이미지야. 평온한 오후를 회화로 남기고 싶다면 환한 창가 아래, 푹신한 의자에서 잠이 든 고양이를 그리렴. 흥미를 더하고 싶다면 ‘냥모나이트’도 괜찮겠지. 설마, 처음 들어보는 말은 아니겠지? 달팽이집처럼 나선형 구조를 가진 고생대 대표 화석 암모나이트를 모르지 않을 테고,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부르려는 호칭 냥이의 ‘냥’을 앞에 갖다 붙이면 그럴싸한 합성어가 된단다. 몸을 돌돌 말고 자는 고양이의 유연하면서도 편안한 자세를 설명하기에 그만이지.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잠을 구분할 수 있어. 고양이는 체구와 울음소리만 갓난아기를 닮은 게 아니야. 렘수면 시간이 긴 것까지 똑같지. 렘수면 단계에서는 몸이 충분히 이완되지 않고 뇌의 신경 활동이 활발해. 잠을 깊이 들 수 없어서 꿈이 선명하지. 반면 비렘수면은 한마디로 꿀잠에 이른 거야.


  비렘수면 중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바로 냥모나이트 자세라고 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면 얘가 숙면하고 있구나, 깨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지. 언젠가 나 건들지 말라는 경고로 일부러 이 자세를 잡으려고 한 적 있었지만 헛수고였어. 얕은 잠에서 벗어나야만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고난도 꿀잠 자세, 따라 하고 싶지 않니? 자고로 잠이 보약이라잖아.     


  “고 여사, 그렇게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하다가 도라에몽 되겠다!”     


  고양이 낯짝만 하다는 말이 있지. 관용적으로 쓰일 만큼 우리 얼굴은 작아. 얼굴이 좀 커야 강해 보일 텐데, 강함은 맹수의 근엄함으로 이어질 테고. 이게 자연의 순리 아니겠어. 이해가 안 된다고? 그렇다면 수사자를 떠올려 봐. 강함, 무게감, 이런 게 느껴지지 않니? 이제 갈기를 바짝 잘라보자. 얼굴이 암사자만 해졌어. 어때, 위엄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아? 볼품없이 혹은 별나게 커다란 고양이로 보일 것 같지 않니?     


  미스터 초이, 네가 방금 한 말은 잔소리가 아니야. 도라에몽처럼 얼굴이 커다래지고 동그래질 수 있다면 기꺼이 먹고 자기만 할 거야. 혹시 모르지. 내게도 사차원 주머니가 생길지도. 그래서 네게 무언가를 꺼내줄 수 있을지도.     


  방금 혹했지? 그래 나한테 더 잘해. 기회는 화살이야. 활시위에 있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 아차, 하다 날아간단다. 이참에 건의 좀 할게. 주 1회, 180g 참치 캔 하나는 너무 박해. 그것도 주말, 주일 반절씩 나누어 주잖아.     


  나잇살이라는 게 있잖아. 내 배도 세월을 비키지 못했을 뿐이야. 너처럼 모든 사람이 계획한 대로 실천하려 든다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하겠니. 난 순간이 선사하는 즉흥성에 발맞춰 살고 싶어. 뱃살 출렁이면서도 우아하게 걸을 자신 있다고. 넌 죽을 때까지 60kg 넘기지 마. 난 평생 5kg 이상을 유지하며 살게. 다름을 이해해야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야지. 안 그래? 긴말하지 않을게. 당장 오늘 저녁부터 참치 캔 하나씩!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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