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Mr. Choi
난공불락의 성으로 위세를 떨칠 만하면 침략을 당했다.
영주가 자리를 비우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급습하는 적군. 영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자기 영토로 선포한다. 전령의 보고를 접하고 진노한 영주, 고삐를 돌려 빼앗긴 성으로 되돌아온다. 거대한 투석기를 앞세우고. 진격 나팔 소리의 위협을 못 들은 척하며 대항해 보기로 하지만, 투석 하나 떨어지자 겁먹고 꼬리 빠지게 후퇴하는 오합지졸. 삼분천하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만다.
휘날리는 깃발의 깃대처럼 꼬리를 세우고 입성할 때와는 반대다. 다리 사이로 감춘 꼬리는 절치부심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자기 영역 내 정복하지 못한 침대와 의자를 수시로 넘보는 탐욕가. 항상 급습할 절호의 시기를 골몰하고 있다. 비좁은 땅인 의자는 슬슬 포기하는 눈치다. 철두철미 방어하고 있는 스킨 향기 군대가 좀처럼 잠을 자는 일이 없기 때문. 그러나 침대는 사정이 다르다. 집에서 가장 안락하고 햇빛도 잘 들어오는 땅은 광활하기까지 했다. 스킨 향기 군대를 주둔시키기엔 전비 손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여사가 불가침조약을 번번이, 뻔뻔히 파기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 침대만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염원은 늘 저만치에 있었다. 타이르고 윽박질러봐도 그때뿐이다. 고 여사의 염원은 나와 정반대에서 움텄을 테니, 예견된 불협화음이었다. 투석기에서 날아온 것처럼 주먹으로 침대를 내려쳐야만 백기를 든다. 물론 잠깐의 굴복임을 알고 있다. 전의를 새로 다져 다시금 기회를 잡으려는 야심가.
시트 교체하는 날을 절대 놓치지 않는 고 여사. 섬유유연제의 향이 피어올랐다. 침대 위는 순식간에 복숭아밭이 되었다. 내 눈을 피해 어딘가에서 이 자리를 노리고 있을 눈을 감지해 냈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오래간만에 낮잠 좀 자려고 돌아왔을 땐 이미 침대는 빼앗긴 성이 되어 있었다.
저 깔끔하고 빳빳한 잠자리는 내 것이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다른 때와 달리 양보하고 싶어졌다. 단잠에 빠진 아이를 내려다보는 아빠가 되어 있었기 때문.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단 말인가. 고 여사는 아이가 잠들었을 때만 발급하는 천사 인증서까지 빼앗았다. 깨물어 주고 싶다는 말이 이러한 감정에서 생겨났겠구나. 피로를 누워서만 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모르게 잠이 든 고 여사.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첫 고양이와 겹쳤다. 아홉 살쯤이었다. 집에서 키웠다기보다는 그 녀석이 우리 집 마당에 터를 잡았다고 봐야 했다. 성별도 모르고, 이름도 없었다. 호칭이 필요할 땐 그저 나비야, 하고 불렀다. 사료도 없었다. 흰밥 위에 비린 것 몇 점 올려줬다.
여름날이었다. 창문과 방문을 다 열어놓은 한밤중. 모기장은 모기를 막아주었지만, 그보다 커다란 고양이는 막아주지 못했다. 새벽녘 한기가 문턱을 넘어올 무렵 고양이는 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굴하지 않는 의지로 영어 선생 집에 얹혀살게 된 ─ 나쓰메 소세키에게 명성을 안겨준 ─ 고양이처럼. 소설 속 고양이도 밤마다 선생의 어린 자녀 방을 노렸다. 아이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안락한 하룻밤이 보장되었으니까.
선생의 작은 아이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울어댈 수 없었으므로 얄팍한 이불을 겹쳐 감은 두 손과 두 발을 활짝 펴서 방바닥에 고정했다. 반듯하게 X자를 만들고 안간힘을 써서 막아냈다. 몇 분 버텨냈다. 그 이후는 기억에 없다. 잠에게 무릎 꿇어본 적 없다는 말은 여태껏 노력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이다.
아침이 왔고, 눈을 뜨면 뜨듯한 털 뭉치가 어깻죽지 아래나 가랑이 사이에 있었다. 드물게는 내가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내 생애 첫 고양이가 고 여사로 환생하여 다시 내게 온 것은 아닐까. 머릿속 유년 시절의 사진 폴더를 훑었으나 태반의 파일이 깨져 있었다. 겨우 복구한 나비의 사진이 알려준 정보는 검회색 줄무늬 고양이였다는 것. 무심히 내려다본 고 여사의 털옷과 같았다. 기억을 왜곡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하는 간절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손바닥을 둥그렇게 말아 고 여사의 턱 아래에 넣었다. 볼을 문지르면서 손바닥 안쪽으로 얼굴을 밀착했다.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엄지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내게 없는 꼬리를 자랑하듯 펼쳤다가 마는 것을 보니 꿈속에서 유쾌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다. 담장 위를 걷다가 건장한 수컷 고양이 꼬리와 스친 게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그만하라고 고 여사가 꼬리를 치켜들어 코끝을 간질인다. 에취!
열쇠꼬리라고도 불리는 번개꼬리가 오늘따라 물음표로 보였다. 마지막 관절이 꺾이어 갈고리를 연상케 하는 꼬리는 유전질의 영향일 뿐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를 알 리 없던 십여 년 전의 난, 못된 놈한테 해코지당해 뒷다리가 부러지고 꼬리뼈는 뒤틀렸다고 판단했었다. 수의사의 진단을 듣기 전까진 꼬리뼈를 펴는 수술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안쓰러워했던 날이 어제 같다.
번개꼬리가 꼿꼿이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꼬리가 없니? 귀찮게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언어기관을 어쩌다 잃어버렸니? 꼬리가 앞을 향하면 흥분 상태, 세우면 자신만만 내지 의기양양하다는 얘기야. 지금의 나처럼 말이지, 아래로 내려뜨리면 편안함을, 다리 사이에 넣으면 불안함을 의미해. 좌우로 흔들면 싫어 또는 귀찮아, 탁탁 내려치면 짜증 나, 털을 잔뜩 부풀리고 꼬리를 바짝 세우면 나 화났어라고 경고하는 거야. 이럴 땐 건들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겠지.
그러게, 왜 내게는 꼬리가 없을까. 퇴화한 신체 기관을 되찾아 균형감각까지 복원하고 싶어졌다. 더 빨리 달릴 수도, 달리면서도 수월하게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듯하다. 외줄 타기쯤은 식은 죽 먹기. 툭하면 넘어져 무릎 깨지던 어린 날이 억울했다.
정말 내게 꼬리가 생긴다면 달리기나 외줄 타기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꼬리 치기. 그 어떤 달콤한 밀어보다, 귓속에 녹아드는 프랑스어 발음보다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엉덩이를 살살 흔드는 연습부터 해둬야겠다. 나의 배우려는 열의에 감동했나? ‘꼬치 치기학’의 대가 고 여사가 직접 시범을 보인다. 엉덩이를 대놓고 흔들면 경망스러워 보인단다. 흔들지 않는 척하면서 흔들어야 한단다. 그 반동으로 꼬리를 흔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쌍하게도 자네는 꼬리가 없으니, 여기서부턴 팔로 실습해 보라고 한다.
손을 편 차렷 자세에서 그대로 팔을 들어 보자. 그다음 좌우로 흔들어 보자. 마지막으로, 손목 관절만 최대 각도를 유지하며 같은 빠르기로 흔들어 보자. 키 포인트는 유연함을 잃지 않는 손목 스냅이다. 꼬리 치기의 고수와 하수는 여기서 갈린다.
고 여사가 전수한 ‘꼬리 치기 비법’를 공개했다. 인류에게 다시 꼬리가 생기는 기적 같은 날이 오면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그날이 오면, 연애의 고수와 꼬리 치기 고수가 이음동의어가 될 것이 뻔할 테니까.
오, 비너스에게도 없는 꼬리
나에게 생겼네
이제 이 꼬리 흔들어 당신을 잡아볼까
◇ 문정희, 「꼬리를 흔들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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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시름을 달래주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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