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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22. 2024

자기 꿈도 팔겠다고 서둘러 자는

─ 서울, 나고, 스펀, 마라케시, 알마다




1. 쫓쫓쫓길냥이 안부를 묻다

─ 서울, 대한한국       

        

출근길.

여유로움은 길냥이 꼬리에서 싹튼다.

자동차 밑에서, 전봇대 뒤에서, 담벼락 위에서,

나를 찾아보라고 꼬리를 흔든다.

숨바꼭질 술래가 되어 쫏쫏쫏,

입을 동그랗게 말고 공기를 끊어 흡입하면서

혀를 찬다. 다 찾았다고, 이제 그만 나오라고.

치, 뾰로통한 얼굴을 숨기지 않는 길냥이들

머리를 들이밀며 내일을 기약한다.     


어떤 행동은 잠복기도 거치지 않고 버릇이 된다.

파티션 너머 동료를 부른다는 게 그만,

쫏쫏쫏.     


지붕 위의 길냥이에게 묻는다.

쫓쫓쫓, 거긴 시원하니?

꼼짝도 안 한다. 열대야를 피할 수 있는 명당은

제 몸을 붙인, 딱 그 면적이라는 듯.

어스름해지면

한낮의 열기가 먼저 잠이 드는 곳에 누워

새벽이 태어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이슬로 꿈을 닦는다.     


쫓쫓쫓.

재롱둥이 짓을 지켜보면

부름은 감탄사로 탈바꿈한다.

아빠 얼굴도 모르겠지만

아빠가 다를 수도 있는 아이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무럭무럭 자란다.

눈이 밟혀 또 돌아본다. 더 자라 있다.

새끼들 덩치가 감당이 안 되자 어미는

번호표를 나눠준다. 젖 물리는 순서를 정한다.     


창가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에게 인사한다.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쫓쫓쫓, 입 모양으로만 안부를 전한다.

누군가도 우리 집 창가를 올려다보고 인사를 할 것 같은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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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도시락도 있어요?

─ 나고, 일본           

    

걸음을 멈췄다, 예측할 수 없도록 느닷없이.

내 뒤를 따라오던 작은 걸음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미행하는 게 확실했으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내 몸에서 두 가지 냄새를 맡은 게 분명했다.

하나는 동족의 체취, 다른 하나는 주먹밥 속 생선알 비린내.

비상한 후각으로 단번에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판단했겠지.

도시락을 어서 열기를 기다리면서 쫓아오고 있겠지.     


오키나와 나하에서 완행버스로 두 시간여 이동하여 도착한

나고는 한적한 소도였다. 여행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해변에서 사람보다 고양이와 더 마주쳤다. 대체로 겁이 많은지

한 걸음 다가서면 열 걸음 물러가기 일쑤였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등질 때부터 한 마리가 나를

따라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속마음을 진작 읽었다.

저 사람이 자기 영역 밖으로 나가서 밥 먹지 않기를.     


아직 때가 이르긴 했지만, 벤치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주뼛주뼛, 거리를 좁혀왔으나 거기까지.

사람으로 치면 숫기 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유년 시절, 동네 친구의 움켜쥔 과자봉지를 바라보던

내 눈빛을 닮아가고 있었다. 한 덩이를 내줬더니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구면이 되어 있었다. 경계심을 내던지고

아예 식탁 위로 올라오는 녀석. 덕분에

여유롭고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정식 이름은 아드리안 고,

한때는 고 양, 지금은 고 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고양이. 사람은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매일 내 종아리에 묻혀주었다. 그것은

고양이 나라 통행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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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르바이트생의 낮잠

─ 스펀, 타이완               


우리 집 아이스바 엄청 맛있어요!

레몬 맛이 가장 잘나가지만,

타이완 전통 맛을 느끼려면

팥 맛, 녹두 맛, 토란 맛도 좋지요.

고작 20타이완달러밖에 하지 않아요.

제 귀여운 얼굴을 보는 것은 공짜랍니다.

머리 쓰다듬는 것은 세 번까지 봐줄게요.

그러니까 더도 말고 딱 한 개씩만, 네?     


루이팡역에서 핑시선 협궤열차로 갈아탔다.

종점인 징퉁역에서 하차, 다음 열차 시각까지 마을 탐방.

다시 열차에 올라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시점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새로운 플랫폼을 밟아나갔다.

이렇게 도착한 스펀역, 풍등 날리기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사람을 피해 골목골목을 누비다가 마주한 고양이 한 마리,

장사하다가 지쳤나 보다.

많이 팔지도 못했는데 도둑맞으면 큰일이지,

문단속하다 잠이 든 아르바이트생.     


지금쯤 털옷을 벗어던지고

눈밭에서 미끄럼 타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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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기 꿈도 팔겠다고 서둘러 자는

─ 마라케시, 모로코           

    

죽은 자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동물,

고양이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관에 생쥐 미라도 넣어줬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어쩌나 싶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고양이 사랑은

사하라사막을 넘어 모로코까지 왔나 보다.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거미줄처럼 뻗어가는

골목, 그늘에게 세를 주고 길바닥에 펼친

좌판, 자기 꿈도 팔겠다고 서둘러 자는

마우.     


mau.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보다’라는 의미의 낱말은 어쩌다

고양이가 되었을까.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일러주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겼을까.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에 처했을까.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을 뜻하는 마라케시.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건물들이 완성한

미로, 그 안에서 헤매는 여행자에게

고양이가 길을 안내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포즈로 이정표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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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양이 아파트 경비원

─ 알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테주강 하구 건너편을 바라본다.

안개 속에 숨었다, 자태를 드러내는

구세주 그리스도상.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며 완성한 거대 예수상은

리스본을 안으려는 듯 팔을 펼쳐 굽어보고 있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

강을 가로지르거나 현수교를 건너가야 한다.     


예수의 시선으로 리스본을 바라본다.

낮은 시선으로도 리스본을 바라보고 싶어

고도를 낮춰 걷기로 한다. 해안에서

4월 25일 다리를 올려다본다. 1974년까지

독재자 이름을 붙여 살라자르 다리로 불리다가

카네이션 혁명의 열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민은 혁명군을 지지하며 카네이션을 건넸고

군인은 그 꽃을 총구에 꽂았다.

피를 흘리지 않은 그날이 다리에 새겨졌다.    

 

‘자유의 날’로 지정된 날짜가

포르투갈을 바라보고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걷다 고양이 아파트 앞에 도착.

우리 아파트 넘보지 마!

경비원이 재빠르게 튀어나와서 으르렁.

검정 제복을 갖춰 입고 절도 있게 위협한다.

내부 구조 좀 구경하려다가 뒷걸음질.    

 

일흔은 족히 넘겼을 캣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여 고양이들을 부른다.

어감으로 미루어 짐작한 포르투갈어는

“아가야, 밥 먹자~”

모든 고양이가 예수 옆에 선 양 같다.

캣맘에게 손짓발짓을 동원하여 말 좀 걸려는데

보디가드 고양이로 돌변한 그놈이 달려와서

우리 엄마 건들지 마! 또 으르렁댄다.

너 또한 혁명군을 지지한 고양이의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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