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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Oct 23. 2024

에필로그

─ 38.5℃와 36.5℃

〈소년과 고양이〉 1868    오르세 미술관 소장




  ‘소년과 고양이’와 마주하기. 파리에 다시 방문하고픈 이유다. 오르세 미술관에 다시 입장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체온이 2℃쯤 오른 듯하다.     


  이 그림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20대에 완성한 남성 누드로, 이후에는 이러한 모티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름을 막 알리기 시작한 초창기 화가가 잡은 붓은 자유로움이었다. 주름 하나 없이 정리해 놓은 침대 시트 위에, 고양이가 소리 없이 뛰어 올라가 웅그리고 앉으면서 일으킨 물결 같은.     


  소년의 몸은 균형 잡힌 골격과 거리가 멀다. 이를 근육이 얼마간 감춰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하체가 짧은 편이라 전체적인 비율도 어정쩡하다. 벌거벗어서 더 연약해 보이는 뒷모습. 엉덩이가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기까지 하다.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껴안은 채 고개 돌려 관람객을(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무심함을 가장하여 현혹하고 있다. 커다란 눈망울로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 그 메시지를 찾게 한다.     


  모델과 눈 마주침이 어렵지 않은 상단에 배치한 고양이는 이러한 상황이 꽤 익숙해 보인다. 껴안음에 호응하듯 앞발과 꼬리로 소년의 팔을 감싼다. 허약하고 허점 많을 소년을 고양이가 토닥거린다. 소년은 뒤돌아보며 눈빛으로 말하고 있다. 고양이와 사람은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친구라고. 보편적으로 발치에 그려 넣어야 할 고양이를 소년의 시선과 수평이 될 수 있도록 위치를 점하여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둑한 배경이 하얀 몸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바라볼수록 소년의 눈빛이 한결 강렬해진다.     


  르누아르의 진품에만 발견되는 것은 고양이 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만하다. 그의 작업실에는 고양이들이 항상 어슬렁거렸으니까. 화가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고양이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다 떠나보냈을까.     


  마약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버스킹 뮤지션 제임스가 가진 돈 모두 털어내어 다친 길냥이 밥을 치료하며 정을 쌓기 시작하는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은혜를 갚으려는 듯이 밥은 길거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공연에 행인을 불러 모은다. 게다가 마약 금단증상의 늪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실화에 실제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밥은 집사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는 자기 인생을 구원한 밥을 어떻게, 보냈을까.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과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젊은 남자가 고양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고양이의 여생에 무게를 두고, 현실적인 고민을 담은 작품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사토루는 길냥이로 인연을 맺은 나나와 함께 살게 된다. 행의 뒷면은 불행이라는 듯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머잖아 알게 된다. 나나와 함께 다음 집사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지만, 옛 연인도 옛 친구도 다들 적임자로서 마땅치가 않다. 어렵사리 이모를 택하고 입원하였으나 난데없이 나나의 병원 잠입,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조용히 지켜준다는 내용이다. 잘 헤어지기의 전범이란 게 있을 수 있겠냐마는 오베의 고양이와 같이 고요한 마무리를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아직 먼 이야기로 치부하다가도 무심결에 헤어지는 순간을 상상할 때가 있다. 성장이 아닌 노화가 진행되는 시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고 여사는 무릎관절이 아플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의자 높이도 뛰어오르지 못할 수 있다. 소화능력이 형편없어지고 그루밍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신 빗질을 해줘야 할 때가 올 수 있다. 심각한 치매 증세로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안락사만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억지로 연장하는 삶보다 평화로운 죽음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성적인 오늘이, 지속될까.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무엇을 얻으면 반드시 다른 무엇을 잃게 되는 관계를 뜻하는 경제용어다. 의미가 확대되어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데, 고 여사와 내게도 적용할 수 있겠다. 집에서의 안온한 생활을 얻으면 야생의 자유로움을 잃어야 한다. 옥시토신을 얻으면 혼자만의 공간을 잃어야 한다.     


  일명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가족이나 연인 간의 신체적 접촉 시 분비한다. 반려동물을 포옹하거나 쓰다듬을 때도 마찬가지다. 눈덩이 굴리듯 커지는 스트레스를 서로에게 떠넘기던 동거 초반의 핑퐁 게임을 10여 년의 세월은 뒤집어 놓았다. 생활 스트레스를 누가 더 낮춰주는지 경쟁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양페이는 위화의 소설 속 인물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태어나 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지만 무사했다. 선로공이 곧바로 발견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선로를 순찰하던 갓 스물의 남자는 졸지에 총각 아빠가 되어 아기를 양육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아빠 노릇 하기는 만만치가 않다. 고아원 앞까지 데려가서 떼놓지만 결국 다시 데리고 온다. 함께 보낸 시간이 그들을 바꿔놓은 것이다. 나란히 걷다가 아들이 무심코 손을 올리면 아빠는 딴 데를 보고 있다가도 손을 내려 척 잡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되는 관계.     


  맞잡은 손, 두 손바닥 안의 어둠이 점점 얇아지는 상상을 한다. 밀착될수록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꼬꼬마 양페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미아우─’하고 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의자에 앉아서 고 여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시치의 집사 슈바이처. 서른 이후에는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어린 시절의 이상을 열정적으로 실천한 위인이다. 그의 생명 존중 사상은 비단 인류만을 향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경외하고 있다. 『거실의 사자』의 저자 애비게일 터커 또한 ‘귀여워(awwww)가 아닌 경외(awe)’로 생명체를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38.5℃.     


  고양이 체온이다. 2℃ 차이 나는 만큼 사람과 다르다. 즉, 그만큼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책에 1℃도 채 담아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명석한 독자는 정확히 2℃를 찾아낼 것이다. 그중 1.9℃ 이상이 생명을 경외하는 태도임을 알아낼 것이다.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한민복, 「반성」 전문     


책 광고 모델이 되고픈 아드리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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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은 책   

  

─ 칼 샌드버그, 『안개』, 태학당, 1995

─ 에리히 케스트너, 『마주보기』, 언어문화사, 1996(초판 217쇄)

─ T. S. 엘리엇, 『캣츠』, 문학세계사, 2003

─ 자크 프레베르, 『이사랑』, 창현문화사, 1994(6쇄)

─ 김은영, 『선생님을 이긴 날』, 문학동네, 2011(4쇄)

─ 장옥관,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문학동네, 2010

─ 이용한, 『낮에는 낮잠 밤에는 산책』, 문학동네, 2018

─ 송현섭, 『착한 마녀의 일기』, 문학동네, 2018

─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 문정희,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 한민복,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문학동네, 2019

─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 갤리온, 2009

─ 수 타운센드, 『비밀일기 1~4권』, 놀, 2014

─ 폴 갈리코,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윌북, 2010

─ 샤를 페로, 『장화 신은 고양이』, 시공주니어, 2000

─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다산책방, 2015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2012(7쇄)

─ 위화, 『제7일』, 푸른숲, 2013

─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미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을유문화사, 2024

─ 알베르트 슈바이처, 『열정을 기억하라』, 좋은생각, 2006(2쇄)

─ 캐롤린 데이비스, 『고양이 가이드북』, 범우사, 2005

─ 애비게일 터커, 『거실의 사자』, 도서출판 마티, 2018

─ 데즈먼드 모리스, 『고양이는 예술이다』, 은행나무, 2018

─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우리 집 고양이의 행동 심리』, 다온북스, 2020

─ 샘 스톨,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고양이 100』, 보누스, 2010

─ 가바키 히로시, 『행복하고 싶다면 고양이와 함께 사세요』, 문학세계사, 2018

─ 야마모토 소우신, 『고양이의 속마음』, 고양이책방, 2018

─ 레슬리 오마라, 『고양이 카페 - 고양이에 관한 비밀스럽고 놀라운 진실』, 보누스, 2009

─ 스테판 게이츠, 『고양이 안내서』, 풀빛, 2023

─ 앨리슨 데이비스, 『연애보다 고양이』, 특별한서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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