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웰컴 드링크
"콜라 있어?"
내가 매일같이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은 우리 동네 폐지 아저씨다. 아저씨는 발달장애가 있고, 부모님이 하시는 폐지 일을 언젠가부터 쫓아 나왔다. 아저씨의 아빠는 파파 할아버지인데, 아저씨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딴짓을 자주 하니까 매번 화를 내고 때리고 욕을 했다. 그런 아저씨를 동네 할머니들은 가끔 음료도 주고 용돈도 쥐여주면서 마음으로 다독였다.
아저씨는 처음엔 뒷골목 구석에서 폐지를 가져오는 부모님을 기다렸다. 1년이 지났을까. 어느새 본인이 앞장서 리어카를 끌고 동네 대장 마냥 씩씩하게 폐지를 수거했다. 아저씨는 매번 나한테 "콜라 있어?"라고 물었다. 난 내가 안 먹는 처분 곤란한 배달 콜라를 하나씩 줬는데, 인간적으로 아저씨는 콜라를 너무 마셨다. "그러다 이빨 다 빠져!!" 하고 잔소리를 하면, "안 먹어!!" 하고 빽 소리와 함께 삐져서 가버렸다. 그런 아저씨를 위해 캔커피나 두유를 늘 박스로 쌓아뒀다. 처음엔 내가 먹던 무첨가 두유를 줬는데, 진짜 싫어해서 캔커피나 달달한 두유로 바꿨다.
어느 날 앞니가 다 빠져 온 아저씨를 마주했다. "병원 갔다 왔어." 라고 앞니 빠진 입을 휘이 벌리고 보여주는 꼴이 꼭 '나 씩씩하지?!'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난 칭찬 대신 "거봐!! 내가 뭐랬어. 이빨 다 빠지다고 했지?!!" 하며 혼꾸녕을 냈다. 코로나가 왔고, 정말 솔직히, 난 아저씨가 오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두유고 커피고 뭐도 두지 않고 매번 "없어!!" 하고 매몰차게 답하면, 아저씨는 늘 씨발씨발 하면서 가버렸다. 그럼 또 마음에 걸렸는지 한참 후에 와서 "오늘 예뻐." 하고 간다. 밀당하는 거야 뭐야...
어느 더운 여름날, 겨울에 만들어 둔 딸기청으로 음료를 만들어 뒀다.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으로 청을 담그면 그 색이 일반 백설탕만큼 예쁘진 않다. 시커먼 음료를 보고 아저씨는 "안 먹어!!" 하고 가버렸다. 우쒸. 다음에 또 왔길래 "안 먹는다며!?" 했더니 "줘!!" 하길래 (진짜 더운 날이었다.) 시원한 딸기 에이드를 줬다. 다음날부터 "없어!"라고 해도 아저씨는 씨발씨발 하지 않고 "...없어? 내일 줘." 하고 간다. 10년 만의 변화였다. 바빴던 이번 여름, 그래서 유난히 손님이 뜸했던 기묘한 브런치의 냉장고에는 과일청이 잔뜩 쌓였고, 그 덕을 나의 절친 폐지 아저씨가 보고, 그 달달한 맛은 그의 마음까지, 그의 말까지 달달하게 만들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동네 길고양이랑도 놀아줘야 하고, 동네 폐지 아저씨 음료도 챙겨줘야 하고, 아저씨랑 밀당도 해야 하고... 내가 보통 바쁜 게 아니다. 그래도 예쁜 사람들 늘 웰컴하는 마음으로 만드는 기묘한 웰컴 드링크, 그 깊지만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맛을 공유한다.
<기묘한 웰컴 드링크>
재료: 기묘한 과일청(딸기청, 복숭아청, 사과청, 포도청, 청귤청, 레몬청 그 모든 청), 홍차/허브차, 탄산수, 생허브, 얼음
- 과일청 대신 과일잼 (#기묘한 자두잼 <#기묘한레시피_ep036>)을 써도 좋다.
(기묘한 과일잼은 시중에 판매되는 과일잼과 질감이 다르다.)
1. tea를 아주 진하게 우려낸다.
2. tea가 여전히 따뜻할 때 기묘한 과일청/과일잼을 더해 섞는다.
3. 생허브를 넣고 냉장고에서 차게 식힌다.
4. 마시기 직전에 탄산수와 얼음을 넣고 서브한다.
- 탄산이 싫다면 tea만 준비하여 탄산 없는 음료를 만든다.
- 추운 겨울이라면 홍차를 보통으로 우리고 거기에 과일청/과일잼을 더해 과일차로 낸다.
- 머리가 얼얼하게 찬 스무디로 먹고 싶다면... 그건 다음 레시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