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을 한다. 의식을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지만 의식을 못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을 의식하게 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3개월 동안 나는 정신분석에 좀 빠져있었다. 심리학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을 때면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기에,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해석들이 많아, 어느 정도 읽다가 덮게 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심리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인간의 이상한 행동의 많은 부분들을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하는데, 그런 해석들이 참신하고 재밌게 다가왔다. (이것 역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기도..)
거기다 정신분석은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는 이분법적인 개념이 없다. 무의식이 일단 그런 개념이 없다고 설명을 하면서, 이런 개념들은 문화가, 사회가, 통념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의식적으로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라는 인식이 덮어 씌워지며 무의식과 상충을 일으키고,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석이 가능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데, 사회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읽었던 책들을 좀 정리해 보자면, 처음 읽은 책은 칼융 심리학파를 따르는 제임스 홀리스가 쓴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였고, 그 뒤로 칼융학파? 의 책들을 몇 권 보다가 (무의식의 유혹,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내면 아이의 상처 치료하기,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갑자기 나르시시즘과 가스라이팅에 관한 궁금증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가스라이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로빈스턴이라는 정신분석가이자 심리치료사, 상당히 재밌음)와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의 책을 읽었다.
그러는 중에 칼융은 사람은 태어나서 마흔 정도까지는 태어난 사회에서 일원으로 주어진 일들을 하느라 정신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하고 욕망하다가 내가 누구지?라고 처음으로 질문을 하는 시기가 마흔 정도라고 했고, 그때 사춘기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를 겪는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것들이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에 여성소설들을 집중해서 읽기도 했다. 읽은 소설들로는, 서있는 여자, 현남오빠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그러다 자크라캉이라는 정신과의사이며 정신분석가인 사람이 한 말인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저 말에 빠져서 자크라캉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들로는, 여자의 심리코드 (상당히 재밌게 읽음), 애도의 기술,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이 책도 정말 재밌게 읽음). 였다.
중간중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혼자와 함께 사이, 나는 월급날 비트코인을 산다.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뭔 말인지 어려워서 읽다가 말음),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역시 읽다가 말음), 그림자 (읽다가 말음),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 (읽다가 말음), 마침내, 고유한 나를 만나다.(읽다가 말음) 등등의 책들이 더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을 정리해 보면 내 생각들이 얼마나 이리 튀고 저리 튀는지가 보인다. 최근엔 그래도 꽤나 큰 줄기를 가지고 책을 골랐기 때문에, 정신분석이라는 큰 흐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중간중간 옆길로 새는 경우도 많았고, 옆길로 샜다 거기서 재미를 느끼면 그곳에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
누구나 그런 건지, 내가 특히 그런 건지, 요즘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을 때가 종종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 이유를 찾기 위해 무의식에서 이유를 찾아보려 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설명이 딱 되지도 않고,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막 바뀌지도 않는다. 그저 의식하기 시작했지만, 이 의식 (awareness)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란 건 막연히 알 것 같다.
모든 행동은 의미가 있고, 설명이 가능하다고 정신분석에선 말한다. 반복해서 하는 행동들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하고 있는 그 행동들을 내가 왜 하는지를 이쪽저쪽에서 다방면으로 바라보라 한다.
복잡하게 꼬인 실들을 풀어야 할 때 힘을 주어서 잡아당기면 더 풀기 힘들게 꼬여버리지만, 한가닥을 찾아 끝에서부터 하나하나 돼 집어가다 보면, 다른 실과 혹은 자기 자신끼리 꼬여서 매듭이 생긴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단단하게 매듭이 지어져 안 풀릴 것 같은 부분도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기면 풀린다. 복잡하게 꼬인 것이 많을수록 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천천히 하다 보면 어느 날엔 다 풀게 된다.
또 이런 시선도 있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다루기 때문에, 무의식은 역시 무의식이라고.. 무의식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두 가지 설명 모두 가능하다 생각한다. 꼬인 실타래를 풀듯 하나하나 풀다 보면 풀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풀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임의로 가위로 잘라버리고 새로 붙이고는 풀었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이라면 무의식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지 않았을까?
어느 것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 모든 시간은 헛되지 않기에.. 그리고 또 헛되면 어떠리? 재밌게 즐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