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있잖아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꾼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악몽 꿨다며. 보약 한 첩 지어줄게. 내일 집에 올 거지. 엄마가 너 온다고 육개장 한 솥 끓여놨어.
어제 동생이 우리 집에서 잤다. 내 침대에서 같이 잤다. 엄마랑 전화 끊고 금방 동생한테 연락이 왔다. 언니 괜찮아? 언니 어젯밤에 잘 때 엄청 힘들어했는데 무슨 꿈꿨는지 기억나?
무슨 소리야. 나 기억 하나도 안 나. 내가 뭐 어쨌는데?
언니가 자다가 갑자기 아아악! 씨발! 하고 비명 지르는 거야. 진짜 크게 소리 질렀어. 그러더니 막 엄청 슬프게 흐느끼길래 내가 놀라서 언니! 언니! 하면서 깨웠어. 그랬더니 언니가 내 손을 뿌리치더라. 그래서 더 안 깨우고 조금 더 기다려봤어. 조금 있다가 다시 막 끙끙 앓는 소리 내길래 내가 언니, 언니 잠깐 일어나 봐, 언니. 하고 계속 깨웠어. 근데 안 깨더라고. 언니 진짜 기억 안 나? 나 언니 악몽 꾸는 거 처음 봤어. 오늘 밤엔 강아지 껴안고 같이 자.
아직도 매일밤 약을 먹고 잠든다. 피곤해서 약을 하루라도 깜빡한 날에는 밤새 세네 번씩 계속 깬다.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 이렇게 정신이 망가져도 나는 도통 불면증에 걸리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 대고 눈 감으면 바로 잠든다. 대신 잠자는 내내 고통스럽다. 생각이 없어서 뒤통수만 대면 바로 잠드는 건 나만 아는 작은 자랑거리였는데. 이제는 바로 잠드는 그 자랑이 조금 싫고 무섭다. 어차피 밤새도록 긴 악몽일 거니깐.
대부분 내가 꾸는 악몽은 배신당해서 심장이 찢기는 것처럼 괴로운 꿈이다. 하지만 어젯밤 꿈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내가 소리 지르고 쌍시옷 욕까지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누구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잔 게 9개월 만이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한 달 반동안 남편과 한 지붕 아래 각방을 쓰며 혼자 잤다. 나는 다시 혼자 자는 게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넓은 침대를 혼자 쓰는 것도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무도 내가 자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내가 어떻게 자는지 나도 몰랐던 거였다.
이 글을 쓰다가 까먹고 있었던 꿈이 얼핏 생각났다. 시댁에서 보상금 명목으로 내게 집을 사줬다. 어떤 외국에 있는 제법 근사한 주택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다들 어떻게 그걸 알고, 주변 친척들이며 지인들이 집 좋다고 구경하러 놀러 와서는 뭐 훔쳐갈 게 없나 집을 뒤지는 꿈이었다. 내가 초대하지도 않았고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성큼성큼 들어와서 여기저기 온 집안을 마구 헤집어놨다.
그리고 장면이 다시 새롭게 바뀌었다. 뉴저지에 가본 적도 없는데 생뚱맞게 배경이 뉴저지였다. 꿈에서 우리는 아직 함께였다. 나는 오빠가 잠깐 일을 하는 사이에 혼자 자전거 타고 이 근처를 둘러보겠다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어떤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오 저기 예쁘다. CASH ONLY네. 지금 현금 없는데. 어차피 혼자 가면 재미없으니깐 다시 현금 가지러 갈 겸 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남편에게 달려가다가 트럭에 치였다. 내 자전거는 쓰러져서 바퀴만 굴러가고 나는 어떻게 된 건지 그 뒤로 기억이 없다.
오빠 있지,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꾼대. 꿈에서 쌍욕을 하고 흐느끼면서 운대. 나는 내가 딱 오빠를 사랑했던 만큼 오빠를 용서할 수 없어. 오빠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불행했으면 좋겠어. 지금보다 조금 더 지옥에 살았으면 좋겠어. 오래오래 영원히. 딱 내가 사랑했던 그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