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혼은 팀플이고 내 팀원은 자격미달이다.

프리 라이더 남편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잠수를 탔다.

by 은연주



요즘 회사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은 대부분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혼자 할 수 없는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협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지, 일의 진척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는지 속도와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5-6명씩 팀플을 하는 교양 수업에서는 항상 거의 모든 조마다 한 명씩 폭탄이 있었다. 누구는 리더십이 있고 누구는 시키는 일만 조금 하고 싶어 하고 누구는 그것조차도 하기 싫어서 불평만 한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나는 리더도 아닌데 총대를 메고 동시에 두 개의 프로젝트를 끌고 가고 있다. 한 개는 내가 주도적으로 깊게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다른 한 개가 말썽이라 둘 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꼴이 날까 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을 어떤 관점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일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나는 그게 무슨 일이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기쁨을 찾고 의미부여를 하는 편이다. 내게 일은 자아실현이다. 그래서 일을 누가 시켜야 하는 노동으로만 생각하는 사람과는 영 함께 일하는 게 힘들다. 나는 일을 하고 싶지 누구를 채찍질하거나 끌고 가거나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 상대방의 가치관이 칼퇴든 워라밸이든 취미 생활이든 연애든 나와 상관없고 존중한다.


나는 단지 사람도 각자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서로의 파장을 + 플러스로 최대한 이끌고 싶을 뿐이다. - 마이너스 파장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함께하면 피곤하다. 일은 그 에너지 파장의 과정과 결과물일 뿐,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다. 나도 일찍 퇴근하고 싶고, 노는 거 좋아하고, 여행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각자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있든 간에 적어도 팀플에서는 팀에 해를 끼치는 게 가장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다 보니 더 여실히 드러난다. 결혼도 팀플이고 부부는 동료라는 것이. 나는 최악의 팀원과 결혼이라는 팀플을 해버렸다. 한 명만 끌고 가는 결혼생활은 없다. 남녀 칠 세 부동석 따위는 고루한 유물이라고 배운 요즘 세대에게 부부 사이는 절대 갑을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리 검사지에는 권위적이며 남녀를 위아래로 생각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싫다고 난리 쳐놓은 엄마 심부름을 감히 내가 대신 해서 발작버튼이 눌린 걸까. 감히 나 따위가. 자기가 왕이고 자기 말이 곧 법인 세상에서 내가 대들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3년을 만났는데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돌변하더니 그대로 이렇게 사라진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조급하게 고른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월급쟁이들 신세가 다 똑같다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일의 의미는 모두 다르다. 그럼 결혼도 팀플이면 도대체 남편이 생각하는 결혼은 무엇이었을까. 경영학 전공인 남편이 대학생 때 팀플을 안 해봤을 리 없을 텐데 그는 그때마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우리 정말 잘 살아보자며 혼인신고를 하고 바로 다음날 내 팀원은 잠수를 타버렸다.


이혼도 결혼이라는 팀플의 일부라면 나는 이혼 또한 남편 없이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이 웃기고 애석하다. 무능하고 자격미달인 내 팀원은 역시 절대 하나만 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유령이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모든 걸 나 혼자 끝내야 하는 원맨쇼. 평생 일복이 많아서 백수로 굶어 죽는 일은 없다더니, 나는 결혼도 혼자 하고 이혼도 혼자 척척 처리해야 하는 능력치 만렙이다. 회사일도 지치고 개인사는 더 지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긍정적이고 멋진 나 만세 만세 만만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