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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 앞에서 아직도 애기다.

이혼은 부모 앞에서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든다.

by 은연주


바다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설 연휴가 짧은 데다가 미리 계획하지 않은 탓에 여행 준비를 못했다. 부모님은 당일치기로 가까운 강화도라도 가자고 했지만 내가 보고 싶은 바다는 그런 바다가 아니다. 나는 강릉의 뻥 뚫린 바다가 보고 싶다. 보통은 고성이나 삼척의 조용한 바다를 더 선호하지만, 남편과 캠핑 다녔던 추억 때문에 당분간 그쪽은 가면 안 될 것 같다. 가족들에게 바다는 조만간 나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대신 연휴 내내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고 드라마 '마인'을 몰아봤다. 한순간도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큰아빠네도 외할머니댁에도 가지 않았다. 이런 설날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매년 명절마다 친가 외가 다 모이는 보기 드문 가족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친척들끼리 여행을 가기도 했다. 커서는 나 혼자 여행 간다고 명절에 불참하기 바빴지만 나를 뺀 가족들은 여전히 꼬박꼬박 모였다. 직장인에게 명절은 그저 여행 가기 좋은 절호의 찬스, 황금연휴일 뿐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나 시집가면 명절에 내 마음대로 여행 다니지도 못할 텐데 지금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야지! 이렇게 여행 다니는 것도 다 한때야!" 큰소리 떵떵 치면서 여행 가던 '요즘 애들' 은연주였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이번 설날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내 곁을 지켜주는 게 미안했다. 이제 엄마 아빠도 나이 들어서 멀리 가는 거 힘들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차 타고 40분 거리인 큰아빠네가 먼 건 아닌데. 외할머니네는 아무리 막혀도 2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엄마 아빠도 친척들 앞에서 표정 관리 하기 어려웠을 거다. 아니 딸 시집보내자마자 웬 날벼락이래. 연주는 그래서 어쩌고 있대. 지금 이게 말이 되니? 친척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엄마 아빠도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아마 난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잠수를 택했다.




떡국을 3일 연속 먹으니 물렸다. "우리 저녁 외식하자. 내가 첫 월급 받은 걸로 밥 쏠게!" 시부모님께도 연휴 첫날 밥 사드리고 왔다고 말해서 엄마 아빠한테 칭찬을 받았다. 이제 우리 가족한테 밥을 살 차례였다. 하지만 엄마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도 외식을 싫어했지만 특히나 명절에 나가서 사 먹는 건 마치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하는 주부였다. 밖에서 사 먹는 건 순 엉터리라고 말하는 구식 엄마였다. 내가 감기라도 걸리면 밖에서 음식 사 먹고 돌아다니깐 아픈 거라고 나무라던 옛날 사람이었다. 엄마 손이 약손이라고, 엄마가 만든 음식은 보약이라고 말하는 지극정성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엄마를 설득하는 건 조금 어려웠다. 엄마는 습관적으로 명절에 나가서 사 먹으면 안 좋다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순간 내 눈치를 보고 멈췄다. 동생이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배고프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설날에 가족 외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식당까지 가는 10분 동안 차 안에는 어색함만이 맴돌았다.




구워주는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에 항정살 가브리살 골고루 시켰다. 엄마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우리 가족이 고깃집에서 외식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채식주의자 버금가는 엄마의 식탁은 항상 제철 나물이나 생선 위주였고 고기는 국에 풍덩 빠져있거나 갈비찜 아니면 보기 어려웠다. 우리가 고기 타령을 하면 구워주기는 했지만 엄마는 고기를 안 먹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할 때마다 고깃집은 선택지에 없었다.


-우리 가족끼리 이렇게 고깃집 오니깐 진짜 어색하다.

-그러니깐. 우린 외식 별로 안 하잖아. 메뉴도 중식 아님 양식 아니면 면 종류잖아.

-엄만 고기 냄새 배는 것도 싫고, 이렇게 술 마시는 분위기도 싫어.


나는 엄마가 많이 안 먹고 뚱하니 앉아있을 줄 알았다.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내 눈치를 살피며 고기를 많이 먹었다. 억지로 많이 먹는 게 티가 날 정도였다.




쿨하게 신용카드를 내밀고 자랑스럽게 계산을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족들이 내게 잘 먹었다, 배 터질 것 같다, 너무 많이 먹었다고 한 마디씩 건넸다. 모두 즐거운 척 연기를 했다. 차에 타자마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자격지심이 확 올라왔다. 엄마에게 괜히 짜증을 냈다. 동생은 내게 밥 맛있게 먹고 왜 갑자기 엄마한테 시비를 거냐며 저지했다.


"엄마 미안해. 다 내 자격지심 때문에 그래. 나도 외할머니 보고 싶어. 나도 이렇게 외식하기 싫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어."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눈물이 터지니깐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끅끅거리며 흐느꼈다. 내가 우니깐 여동생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아빠와 남동생만이 침묵을 지켰다. 내 옆에 앉아있던 엄마는 어깨를 토닥여주며 일부러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오버를 했다.


"괜찮아, 울지 마. 요즘 이혼 아무것도 아니야. 다들 이혼하더라. 세상이 바뀌었어. 너 잘못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깐 이혼도 니 잘못 아니야. 엄마는 괜찮아. 이혼 그게 뭐 어때서."


"오빠가 너무 미운데 오빠가 아프다니깐 미워하는 것도 힘들어.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어. 그게 너무 힘들어."


"그래 엄마도 그래서 참고 있잖아. 너도 조금만 더 참아.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내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했다. 내게 참으라는 말을 하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고 화를 참았을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마음에 내가 피멍을 심어준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슬퍼할수록 엄마를 더 슬프게 하는 것 같아서 그만 슬퍼하고 싶은데 8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도 슬퍼서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이 이렇게 아픈 건 줄 알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다. 다들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니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남이랑 같이 사는 게 힘들 거라고 각오했었다. 하지만 내 결혼은 허무하고 슬프기만 하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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