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내가 결혼을 안 했으면 엄마도 안 힘들었을 텐데.
부모님 댁에 가자마자 어제 엄마가 말했던 육개장을 먹었다. 나는 엄마 음식 중에 육개장을 제일로 좋아했다. 엄마의 육개장은 부드러운 한우 양지살에 고사리, 토란대, 대파까지 잔뜩 넣어서 시원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사실 원래 내가 제일 좋아했던 육개장은 엄마의 육개장이 아니라 외할머니가 해준 육개장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중학생 때까지 엄마의 육개장은 그다지 맛이 없었다. 한창 사춘기였던 당시에는 저녁 메뉴가 육개장이면 반찬 투정하듯 툴툴거리기도 했다.
"아 오늘 육개장이야? 싫은데. 엄마 육개장은 맛 하나도 없어. 외할머니 육개장이 진짜 맛있는데."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육개장에서 외할머니의 맛이 났다. 아마도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뒤쯤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걸 엄마의 세월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부엌에서 시간을 보낸 만큼, 수만 번 뜨거운 불 앞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인 만큼 맛의 깊이가 더해진 거겠지. 처음부터 외할머니 레시피 그대로였어도 엄마 나이 마흔에는 할머니의 손맛이 아직 부족했다면 엄마 나이 예순에는 손맛이 더 진해졌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엄마가 그만큼 할머니 나이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겠지. 나는 대를 이어 할머니에서 엄마에게 전해진 그 육개장을 제일 좋아했다. 밖에서 사 먹는 건 다 순 엉터리라며 자식들 먹이겠다고 마당에서 직접 농사까지 짓는 엄마의 음식은 전 세계 1등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속 1등은 육개장, 밑반찬은 꽈리고추찜이었다.
집 같지도 않은 집에 혼자 사느라 살림살이가 없다. 신혼살림으로 마련한 모든 가재도구들은 뜯어보지도 못하고 외국에서 행방불명됐다. 그걸 남편에게 돈으로 돌려받는다고 해도 내가 신나서 다시 쇼핑할 리도 없다. 뭐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침이야 원래 두유나 요구르트 하나만 먹고 점심이나 저녁은 회사에서 먹으니깐 냉장고엔 물과 강아지 간식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 밥이 무척 그리웠다. 하필 그제 내가 심각한 악몽을 꿨다고 동생이 다 말하는 바람에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로만 준비해 놨다. "여기 식탁에 있는 거 다 아빠가 농사지은 거야. 니네 아빠 진짜 멋있지?" 아빠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배운 적도 없는 농사를 취미로 시작했고, 이제 은퇴도 해서 제법 농부처럼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엄마의 육개장에는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또 엄마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사랑이 담겨있었다. 거기다가 초보 농부 아빠의 피와 땀 같은 정성까지 들어가 있으니 눈물 날 것 같은 맛이었다. 아 갑자기 뜨거운 걸 먹어서 콧물 나오네, 식탁에서 눈물 흘릴 수는 없어서 괜히 코를 푸는 척하면서 눈물도 같이 훔쳤다.
강아지를 부모님 댁에 데리고 간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엄마는 원래 개를 무서워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강아지는 워낙 작고 어린 데다가 순해서 그런지 엄마도 그런 녀석을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강아지는 이 집의 실세인 엄마를 알아보고 더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나는 그동안 훈련시킨 개인기를 다 보여준다면서 우리 애 천재인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봐봐. 앉아! 손! 코! 옳지. 오구오구 내 새끼. 엄마 봐봐, 진짜 똑똑하고 귀엽지. 얘 천재야 천재. 그치?" 엄마는 그런 강아지를 한참 동안 귀엽게 쳐다보다가 혼잣말로 '강아지를 키울 게 아니라 아기를 키워야 하는데' 하고 속상하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엄마도 뒤돌아서 눈물 삼키듯 한 말이라서 나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 말을 들으면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질 사람은 나라는 걸 엄마도 알고 있었다. 상처받은 마음은 내 귀에 도청 장치라도 달았나. 나는 엄마에게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자격지심처럼 나 혼자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써댔다. 정신과를 다녀서 진짜 미친년이라도 된 건가. 순식간에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예민하게 발작 버튼이 눌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느새 내가 남편처럼 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 정말 트라우마가 심각하구나 싶었다.
"엄마 방금 나 다 들었어. 애라고? 지금 애 얘기가 왜 나와?! 그럼 내가 뭐 애 딸린 홀아비랑 급하게 재혼이라도 해서 남의 집 애라도 데려다가 키울까? 아니면 뭐 오빠를 다시 만나서 애부터 가져? 도대체 나한테 애가 왜 필요한데?!"
엄마한테 집에 가져가게 육개장을 좀 싸달라고 했다. 엄마는 요즘 과일값이 너무 비싸다면서 니 돈 주고 사 먹지 말고 엄마한테 말하라고 딸기에 토마토에 바나나에 천혜향까지 잔뜩 담았다.
"나 혼자서 이거 다 못 먹어. 썩어서 버리면 아깝잖아. 다 빼. 육개장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안 가져갈래."
"아냐 버려도 돼. 썩으면 버려. 한 입이라도 먹어. 비타민 씨는 있어? 집 주소 좀 카톡에 적어줘. 엄마가 과일 좀 주문해서 자주 보내줄게. 먹는 건 다 좋은 걸로 먹어야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과일은 비싼 걸로 먹어야 돼."
아빠는 밤이 늦었다고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사실 아빠는 밤이 늦지 않아도 맨날 데려다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고 낮이고 어딜 가든 날 데려다줬다. 엄마는 아빠 혼자 운전하면 돌아오는 길에 심심하다며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차에 따라 탔다. 엄마는 아직 내가 지내는 곳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아빠는 두 번이나 오는 동안 엄마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 엄마는? 엄마는 오기 싫대.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오기 싫었는지 나는 모른다. 따로 묻지 않았다. 아빠도 더 말해주지 않았다.
차 안에서 아빠 엄마 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다녀와서 피곤한 내 강아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쿨쿨 잤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안내해 줄 때쯤 엄마가 갑자기 밝은 척 말을 꺼냈다.
"어머 여기가 다 재개발된 거야? 옛날 아파트 대단지 싹 밀고 재개발해서 이렇게 바뀌었구나. 완전 딴 세상 됐네. 단지 깔끔해서 강아지 산책 하긴 좋겠다. 근데 산책시킬 시간은 있니? 맨날 야근만 해가지고. 회사 다닌 뒤에 표정이 더 어두워진 것 같아서 걱정이야."
그런데 아빠 차가 주차장을 들어갈 때 엄마가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런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에 우리 딸 혼자 지내서 어떡하니."
주차장까지 들어온 김에 냉장고에 짐을 다 넣어주고 간다며 엘리베이터에 다 같이 탔다.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와본 내 집에 들어와서는 이렇게 좁은 집에 사람 온기가 하나도 없다며 울었다. 냉장고는 왜 이렇게 텅텅 비어있는 거냐며 화를 냈다. 아빠는 혼자 살기 괜찮은데 왜 쓸데없이 우냐며 엄마를 타박했다. 이럴 거면 빨리 집에 가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가기 싫다고 버티면서 오히려 소파에 앉았다.
"아 우리 이제 왔는데 오자마자 가면 어떡해! 강아지한테도 적응할 시간을 좀 줘야지. 당신은 왜 바로 가자고 해? 좀 더 앉아있다가 가. 자기가 운전기사도 아닌데 좀 쉬었다 가야지. 밤길 운전하고 와서 바로 또 운전하면 우리 나이에 위험해."
결국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까지 우리 셋은 어정쩡하게 싸구려 소파에 앉아서 괜히 한참 동안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엄마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와 딸의 사이는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럽다가도 또 아주 멀어질까 봐 무섭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영화에 집중하는 듯이 전지현은 늙지도 않고 너무 예쁘다고 감탄을 했지만 또 가끔씩 속상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울 것 같은 눈동자를 비치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건지 집을 보는 건지 갑자기 집안이 너무 허전하고 썰렁하다고, 엄마가 그림을 하나 사 줄 테니 벽에 걸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영화를 보는 척 곁눈질로 계속 엄마 눈치만 살폈다. 우리 엄마 얼굴에 주름이 더 많아졌네.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다. 아들같이 듬직한 사위 얻었다고 좋아했던 우리 엄마도 피해자다. 허허실실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했던 남편의 그 가증스러움이 역겹다. 이 모든 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 스스로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엄마 아빠를 배웅해 주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길동이는 정말 연락 없니?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 혼자서 먹고살 돈은 있어? 월급 그거 얼마 벌지도 않잖아. 너 너무 힘들어 보여. 그렇게 애쓰면서 일하지 마. 회사 그냥 그만둬. 엄마가 용돈 줄까?"
"아냐 괜찮아. 엄마, 우울증 되게 좋더라. 돈이 잘 모여.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어서 나 금방 부자 될 것 같아. 사람들도 안 만나니깐 나가서 돈 쓸 일도 없어."
차라리 거짓말을 했어야 됐나. 엄마한테 용돈 좀 달라고 옛날처럼 능청스럽게 손내밀 걸 그랬나. 내가 순간적으로 뱉은 말 때문에 엄마가 오늘밤 잠을 설칠까 봐 후회스럽다. 결혼하지 말걸. 엄마 옆에 평생 붙어있을걸. 그럼 나도 엄마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홍길동과 그의 가족을 저주하고 싶다. 나는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악한 마음먹어서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벌 받는다면 차라리 그때 가서 벌을 달게 받더라도 지금은 간절히 저주하고 싶다.
집에 도착한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니 옆에서 자고 갈걸 그랬어.'
나는 엄마 말을 듣고 또 울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우는 것도 지겹고 지친다. 제발 그만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