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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도 때가 있는 법

물론 제일 좋은 건 미안할 짓을 처음부터 하지 않는 거야.

by 은연주


오늘 볕이 좋아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두 시간 넘게 산책을 했다. 비록 따스한 봄햇살에 속아 매서운 바람과 미세먼지 나쁨을 착각했지만 말이다. 이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는 이 작은 털뭉치와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걷는 것은 오랜만에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원래 30분 정도만 산책하려고 했지만, 아직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는 호기심 가득한 친구는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나도 할 거 없는데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 봄이라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 중 혼자 산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강아지가 있으니깐 엄연히 따지면 혼자는 아니었다.


사람 나이로 6살짜리 어린아이라는 나의 강아지는 확실히 나잇값을 톡톡히 하는 중이라 에너지가 넘쳤다.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두 시간이나 산책했는데도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버팅기는 애를 거의 줍다시피 해서 강제로 데리고 들어왔다. 엄마가 싸준 육개장을 데워 먹을 기력도 없었다.


요가를 하루라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했던 내가 누에고치처럼 가만히 지낸 지 9개월. 이 봄이 지나면 곧 1주년이다. 결혼 1주년 대신 은연주 영혼 살해 1주기를 지내야 될 것 같다. 바깥세상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는데 나는 겨우 관뚜껑을 닫고 안에서 숨 참기라도 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 증거로 쓰레기가 된 체력, 박살이 난 면역력, 네댓 명의 친구와 가족 말고는 연락할 일 없이 조용한 휴대폰이 있다.




육개장은 냉장고에 그대로 들어있고 대신 치킨을 시켰다. 치킨을 앞에 두고 영화 어톤먼트를 틀었다. 10년 전에 어톤먼트를 처음 봤을 때는 '브라이오니 저 ㅆ년!' 이렇게 욕만 했는데 다시 봐도 브라이오니는 변함없이 ㅆ년이었지만 내 가슴은 더 먹먹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자의 자기 합리화는 얼마나 비겁하고 추악한지.


원작 소설의 작가는 2차 세계 대전에서 됭케르크 철수 작전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연합군의 질서 정연한 후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통째로 편집되었다. 브라이오니가 ㅆ년인 건 맞지만 그건 소설 속 장치일 뿐 세실리아와 로비, 젊은 연인은 그저 어두운 시대의 가슴 아픈 희생양이기도 하다. 영화 속 브라이오니처럼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해서 그들을 행복하게 소설 속에 박제하는 걸로 정말 속죄가 될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러니 미안할 짓을 계속하는 거겠지.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때가 있는 법. 다 지나고 나서, 상관없는 사람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한다고 그게 속죄되리라 생각하는 건 큰 오만일 것이다. 용서는 판사나 하나님한테 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먼저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리 못 박아두자면 나는 그를 용서할 만큼 큰 그릇이 못된다.


나는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도) 그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다. 재결합 따위는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고, 그저 그가 나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생각에 그런 일은 아마 99% 없을 것 같다고. 그 정도로 자기 아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신 어머니의 마음도 지옥일 것이다. 솔직히 사과받고 싶은 마음은 내 아집이고 욕심이지만 그를 사랑했던 내 진심에 대한 최소한의 목숨값이다.




잘못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그런 건 다 개소리다. 뚫린 입이라 말은 쉽고 뱉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0. 완전 제로. 며칠 전 그의 카카오톡 과거 프로필 사진에 나랑 있던 옛날 사진이 내려갔다. 참 재밌는 사람이다. 한참 뒤에 있는 옛날 사진 내릴 시간에 나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 이혼 얘기부터 돈 얘기 할 거 참 많은데.


나이 마흔 먹고 회피하면 다 해결되는 인생은 도대체 어떤 인생인 걸까.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난 이제 두 번 다시 사랑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남자를 믿느니 그 시간에 유기견 봉사나 한 번 더 가는 게 맞다고. 그러니 성인으로서 문제 해결 능력 없는 이 남자와 그가 원하는 대로 이혼을 일부러 안 해주고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조용히 괴롭힐까 생각도 해봤다.


지금 이렇게 사는데 내가 법적으로 기혼이든 미혼이든 솔직히 크게 상관없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우울증이 완전히 나아도 재혼할 생각 따위 전혀 없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났다가 인생 이만큼 꼬이고 데었으면 충분하다.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이나 허전함은 연애가 아니라 탄수화물이나 털뭉치로 해결하면 된다.




그러니깐 내 삶에 이혼녀 타이틀을 얻는다고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도 없고 득일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가 어디 가서 또 다른 여자를 속이면서 연애를 하든 나중에 늙고 아파서 병원을 가든 나는 법적으로 니 배우자란다. 메롱 약 오르지~' 이런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그건 내 인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서 하루빨리 홍길동이라는 지옥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니 대체 누구 좋으라고? 지는 미안함조차 느끼지 못하는데 싶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처럼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면서도 여전히 놀랍다. 미안하다는 말을 죽어도 못한다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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