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험에는 실패도 눈물도 포함된다. 그것들이 모여 자존감이 된다.
자존감은 선천적인 영역일까 후천적인 영역일까.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같은 엄마 배속에서 나온 나와 동생은 어린 시절 성격이 꽤 많이 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외향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는데 동생은 조용하고 신중한 편이었다. 엄마는 그런 동생을 답답해하기도 했고 언니처럼 왜 못하냐고 혼내기도 했다. 내가 그저 언니라는 이유로 정말 많이 혼났다면 동생은 대신 언니와 비교당하느라 혼났다. 그래서 동생은 스스로를 어린 시절에 자존감이 꽤 낮은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엄마가 맨날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데 너는 왜 그러냐고 비교하고 걱정하니깐 나는 어릴 때 내가 진짜 바보인 줄 알았어. 난 엄마말대로 증말 바본가부다, 그랬지.
하지만 동생은 동생만의 속도로 조용히 자기의 세계를 탐구했다. 나한테는 없는 똥고집 같은 게 있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어떻게든 했다. 동생은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면서 실패도 충분히 해보고 여러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동생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언니 우리는 그래도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지 않아서 덕분에 자존감이 높은 것 같아.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안 했잖아. 잘 안 풀리고 망해봐도 어차피 내 경험되는 거잖아. 그럼 뭐든 남는 거잖아. 보호랑 통제는 비슷한데 너무 다른 것 같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두산 전과, 동아 전과가 유행했다. 방학마다 서점에 가서 다음 학기 전과를 사고 예습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 전과를 들고 오는 걸 금지시켰다. 너희는 많이 틀려봐야 돼. 당장 중학교만 가도 경쟁할 건데 사실 틀리는 건 쪽팔린 게 아니야. 다 맞는 걸 목표로 하지 마. 앞으로 살면서 계속 오답을 고를 수도 있어. 그래도 그 선택이 왜 틀렸는지를 배우면 그건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더 대단한 거야. 담임 선생님 이름은 기억도 안 나지만 부산 사투리를 쓰고 눈썹이 짙었던 총각 선생님이 했던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존감을 잘 키워주는 환경에 있는 게 당연히 좋다. 그게 부모복이든 가정환경이든 학교든 또래집단이든 뭐든지 간에. 하지만 모두가 그런 어린 시절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어린 시절보다 더 중요한 건 커서 내가 선택하는 모든 순간들과 그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남편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원통한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슬픔에 겨워 하염없이 울고 있지만 괴물 같은 그를 사랑한 적 없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누칼협'처럼 누가 칼 들고 협박한 적도 없고 내가 스스로 선택했던 사랑이다. 비록 지지리도 운이 없어 그 사랑에 배신당했지만 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내 자존감은 깎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존재감이 되어 나를 뒤따라온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걸 경험하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음껏 후회한다면 나는 오직 깊어지고 단단해지리. 날카로운 칼의 심장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지 못하는 외롭고 불쌍한 한 사람과 깊고 험한 산속 가파른 계곡을 지나 우뚝 솟은 뾰족한 봉우리처럼 모두를 품어줄 수 있는 큰사람. 나는 둘 다 될 수 있고 둘 다 안 될 수도 있다. 그건 나에게 달린 선택이다.
깊은 해저 어딘가로 처박힌 것 같은 우울의 경험은 나를 그대로 물속에서 숨 막혀 죽어버리게 할 줄 알았다. 껍데기는 그대로지만 영혼은 이미 익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지금 아가미만 겨우 끔뻑거리며 다 죽어가는 뭍에 나온 물고기일 지도 모른다. 그럼 땅에 넘어진 물고기도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나서 물속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나는 물에서도 뭍에서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경험을 배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잖아. 뭐 세상에 그런 물고기가 다 있어? 응 여기 있어. 내가 그렇게 되려고 힘내고 있어.
그러니 내가 앞으로 무슨 경험을 하든, 이보다 더 큰 허무함이나 비통함을 겪거나 사람에 또 한 번 배신을 당하더라도 지금의 이 알량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아야지. 자존감 따위 마음껏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계속 부서져서 더 단단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어리석은 사람 말고 똥이든 된장이든 다 찍어먹어 보고 야 그거 내가 먹어봤더니 진짜 죽을 뻔했다 하하! 하고 웃으며 썰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서 온갖 경험을 이야기보따리로 풀어야지. 결국 이 생의 끄트머리쯤에는 언젠가 '이 책을 나의 불행한 전남편에게 바칩니다.'라고 그를 애도해야지. 그럼 지금 이 경험도 제법 훌륭한 이야기 소재인 거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인생의 비밀에 먼저 다가간 행운을 거머쥔 걸 수도 있다.